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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룸] 북적북적 164 : 아흔일곱 번의 봄 여름 가을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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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에서 김을 매는데 젊은 여자가 보건소에서 나왔다면서 치매 조사를 하고 갔다. 나 사는 동네 아냐고 해서 강원도 양양군 서면 송천리라 했더니 올해 무슨 년이냐고 물어서 2014년이라고 대답했다. 오래 살다보니 별일이 다 있다."

이 일기를 쓴 이의 이름은 이옥남. 1922년에 태어났습니다. 아흔 일곱 번의 봄 여름 가을… 그리고 이제, 아흔 일곱 번째 겨울을 맞고 계십니다.

<아흔 일곱 번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은 송천에 사시는 이옥남 할머니가 "시부모와 남편 살아있을 때는 글자 읽을 줄 안다는 걸 티내지도 못했는데, 그분들 돌아가시고 나서 글씨 연습을 하고 싶어 도라지 판 돈으로 공책을 사서" 1987년 이후 30년 동안 줄곧 써온 일기 가운데 일부를 발췌해 엮은 책입니다.

"2003년 3월 24일. 앞밭에서 나생이를 캐 가지고 또 쑥도 되려서 좀 보태고 달래도 좀 캐고 고둘빼기 좀 캐고. 그래 네 가지를 봄나물을 해 가지고 아침 7시 차로 장에 가서 큰맘먹고 팔려고 땅에다 신문을 깔고 몇 무덕이를 만들어 놨는데 장사꾼 여자가 오더니 하는 말이 저기서 형님 오는 것을 보고 뭘 가져왔나 하고 빨리 왔다고 무조건 오더니 한 무덕이에 얼마냐고 물어서 천 원이라 하니 덮어놓고 다 주서 담고는 만 원 주고 더 안 주네. 그러니 내가 앉어 팔면 만오천 원은 만들 수 있는데 이제는 나이 많으니 시장에 앉아 있기도 챙피하고. 그래서 에이 그만 집에 와서 일하고 또 내가 덜 받으면 장사꾼 여자가 좀 이문이 남겠지 하고 그냥 주고 여덟 시 차로 집에 와서 일을 많이 했다."

희한하게 마음을 떠나지 않는 이 책을, 제가 낭독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많이 걱정됐지만 그래도 읽어보았습니다.

이옥남 할머니는 한평생 농사를 지으셨죠. 고향과 지금 사시는 곳을 벗어나 본 적도 별로 없으신 것 같습니다. 당연하게도, 할머니의 일상을 써내려간 일기에는 언뜻 비슷비슷하게 들리는 이야기가 반복됩니다. 꾸밈도 없고, 사투리나 틀린 맞춤법 같은 것도 부러 꽤 살린 느낌이 들게 편집됐습니다.

그런데 천천히 읽고 있으면, 할머니의 아흔 일곱 해가, 그 시간들이, 점점 제 앞에서 부풀어오르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일기 문학'이라는 것, 사람이 일기를 쓴다는 것에 대해서 오랜만에 새삼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모든 사람의 인생은 한 권의 책이다, 펼치는 페이지마다 모두 붉다'는 구절을 예전에 한 친구가 들려준 적이 있습니다. (어디서 나오는 구절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 말이 마음 깊숙한 곳으로부터 떠오르더라고요.

"2007년 3월 24일. 오늘은 나 불보는 차례인데 비가 온다. 비가 오는데 뭔 불이 타랴. 일부러 싸놔도 안 타겠지. 그래도 맡은 책임이 있는데 집 안에 들어앉아 있을 수도 없고 책임대로 하느라 마을 회관에 갔다. 마을 회관에 갔더니 젊은 사람들한테 꾸지람만 들었다. 비 오는데 누가 불 싸놓는다냐고, 이런 날은 불 봐야 일당도 안 나와요 한다. 도로 내가 미안해서 부끄럽고 내가 왜 갔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책임 때문에 왔지 무슨 일당 때문에 왔나."

이 일기에는 유독 반복되는 문장이 두 개 있습니다. "사는 게 왜 이렇게 힘이 드는지." 그리고 "자식이란 게 뭔지."

흔히 얘기하는 상투적 구절이라고 하면, 딱히 반박할 말은 없습니다. 하지만, 할머니의 일기를 읽어내려가다 보면, 그 두 구절이 얼마나 깊고 절실하게, 참으로 공감할 수 밖에 없는 새로운 언어로 다가오는지 아마 느끼실 겁니다.

"2006년 5월 19일 흐림. 아래 밭에 콩을 심었다. 콩을 심는데 바로 머리맡에 소나무가 있는데 소나무 가지에 뻐꾹새가 앉아서 운다. 쳐다봤더니 가만히 앉아서 우는 줄 알았더니 몸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힘들게 운다. 일하는 것만 힘든 줄 알았더니 우는 것도 쉬운 게 아니구나. 그렇게 힘들게 우는 것을 보면서 사람이고 짐승이고 사는 것이 다 저렇게 힘이 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힘들게 운다고 누가 먹을 양식이라도 주는 것도 아닌데 먹는 것은 뭣을 먹고 사는지. 몸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힘들게 우느라고 고생하는 것을 보니 내 마음이 아프다. 뭣을 먹는 것을 알면 먹을 양식이라도 주고 싶구나."

이옥남 할머니는 평생 해오신 것처럼 뻐꾸기와 소쩍새를 벗삼아 강낭콩 심고, 깨 심고, 하루도 쉬지 않으십니다. 이제 동네 노인들 중에도 농사를 짓는 사람이 거의 없어, 하루도 쉬지 않는 할머니를 흉보는 분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어찌나 사람이 드문드문 다니는 동네냐면, 밭으로 가는 길에 풀이 워낙 자라서 조금씩 풀을 베 주면서 가야 할 정도로 몇몇 길은 사실상 더 이상 길이라고 할 수도 없이 방치된 폐허가 된 곳이 적잖은 마을인 걸로 보입니다.

자식들은 대부분 외지로 떠나고, 막내아들은 중국이란 먼 나라까지 가서 할머니는 더욱 애가 타시고, 남매며 친구들은 치매에 걸리거나 돌아갑니다. 외롭고 쓸쓸하고 화가 나고, '자식들이 멀리 살아서 사람들이 나를 무시하나' 분한 일을 당하고 일기장에 털어놓는 날도 있습니다. 요즘만 쓸쓸하고 외로운 것이 아닙니다. 일기에 조금씩 드러나는 이옥남 할머니의 삶은 대체로 답답할 정도로 아프고 힘겨웠습니다.

하지만, 농사짓는 것은 "나이들어 숨이 너무 차 힘들어서 그렇지 재미있"습니다. 마음이 부산해도 일을 하고, 마음이 쓸쓸해도 일을 하고, 눕고 싶은 날도, 몸이 아픈 날도 일을 하면서 이렇게 성실히 하지 않으면 "율(쓸개) 빠진 삶이지" 하고 또 일어나 일을 하고 밤에는 일기를 씁니다. 조금이라도 수확해서, 이제는 좀 부끄럽다 하시면서도 성실하게 장에 내다 팝니다. 그리고 외지에서 바삐 살다가 찾아오는 자식 손자들과 거둔 걸 나누어 드시고, 그런 날은 "내가 세상에서 제일인 것처럼" 행복합니다.

시골 장에서 보이곤 하는, 커다란 고무바구니에 나물채소를 가득 싣고 팔러나오신 할머니들… 그 분들이 이옥남 할머니입니다. 모든 할머니들의 인생은 어찌도 이처럼 꽉 찬 책들인지요.

"2004년 6월 20일 비. 아침에 바깥을 내다보니 비가 그쳤기에 아래 밭에 가서 깨 모종을 뽑았다. 심을려고 부즈러니 몇 고랑을 심는데 또 비가 와서 못 심고 집에 왔다. 와서 젖은 옷을 벗어 널고 방에 앉아서 <작은책> 유월호 책을 읽다보니 이동영 씨와 그의 아내 최문선 씨 두 내외분 글이 아주 뜻깊다. 두 분이 마음이 맞은 것 같고 금실 좋은 것 같아서 한편 부럽다. 나도 없는 집에 시집 와서 굶는 것을 생활로 삼고 살면서 시부모님한테 학대 받고 살았지. 남편은 집자리 안 붙고 불인 청진으로 평안남북도로 돈 벌러 간다고 가서는 돈 안 벌고 그냥 바람만 피고 집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고 그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다녔지. 시어머님이 가라고 머리끄대이를 내끌어도 친정아버지가 무서워 못 가고 그냥 거기 붙어서 살아온 것이 이때까지 살아왔다. 꿈같이 살아온 것이 벌써 나이가 팔십셋이 되었구나. 그러나 지금은 자식들이 멀리 살지만 다 착해서 행복하다."

"2009년 2월 14일 흐림. 오늘은 마을 회관에 갔다가 집에 일찌감치 왔다. 손주가 영화 보러 가자 해서 손주 차 타고 손주 가는 대로 따라갔다. 가서는 닭갈비를 맛있게 먹고는 영화를 보는데 재미있으면서도 마음이 아팠다. 소도 나이 많고 두 노친네가 나이가 많은 기 그 농사짓느라고 고생이다. 그 바깥노인은 아픈 다리를 긁고 다니느라 고생이고 소도 늙어서 걸음을 겨우 발을 옮겨놓는 것을 보니 마음이 아프다. 그래도 그 소 우차를 타고 길을 다니면서 농사일하고 밭 갈고 논살머가지고 모 심고 김맨다. 또 곳초 농사도 짓는 기 그래도 곳초 농사가 잘 되어서 빨간 곳초를 많이 따서 말리는 것이 참 대견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일 년 내내 고생하고 농사라고 지어 봐도 그렇게 곳초를 탐시럽게 못 따고 아무리 애써 곳초를 심고 가꿔 봐도 그 노인네처럼 곳초를 이쁘게 못 키우고 늘 애만 썼지. 곳초 한 번 그렇게 늠늠한 걸 못 따고 해마다 곳초는 심지만 왜 그리 안 되는지 억지로 못하겠네. 오늘 영화를 보면서 나 살아완 생각이 나서 맘속으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영화 : 워낭 소리 / 논살머가지고 : 써레질이나 논에 들어가 발로 밟으며 논바닥을 고르는 일.)"


이옥남 할머니의 일기는 할머니의 외손자, 탁동철 교사에 의해 세상으로 나왔습니다. 영화 '워낭 소리'는 할머니도 좋아하실까 싶어 데려가 주는, 일기에 유독 자주 등장하는 다정한 '손주' 분입니다.

책 말미에는 이옥남 할머니가 직접 쓰신 에필로그와 -이 에필로그가 놀라울 만큼 걸작입니다. 할머니의 일기문학 30년이 농축된 느낌이에요.- 탁동철 선생님이 할머니를 소개하는 글이 나란히 실려 있습니다.

탁 선생님의 글을 읽으며 눈물이 많이 났습니다. 이옥남 할머니는 이렇게 훌륭한 손자가 있어 아흔 일곱 해를 담은 서른 해의 일기가 아름다운 책이 돼서 나왔는데, 아흔 세번째 해를 나고 계신 우리 할머니에게 나는 뭘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새삼 들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다정한 손주'이기는 커녕, 가끔 무심한 자식들에 대한 어쩔 수 없는 섭섭함이 묻어나는 할머니의 일기 곳곳에서 저도 뜨끔한 대목만 자꾸 눈에 띄었습니다. 특히, "전화를 받고 오랜만이다 하니까 왜 전화할 때마다 오랜만이라 한다고 도로 나를 원망한다"는 할머니의 막내아드님 멘트를 저도 똑같이 한 적이 있더라고요. "원망한다." 바로 뒤에 이옥남 할머니는 담담하게 "자식이란 무엇인지 늘 궁금하니까 늘 기다려진다."고 짧게 한 구절만 덧붙이셨습니다.

우리 할머니도 이옥남 할머니처럼 애틋하고 특별한 분입니다. 우리 할머니, 탁동철 교사의 할머니… 들어주시는 모든 분들의 할머니들이 그러하시겠지요.

괜한 걱정인지 모르나, 책에 발췌돼 실린 이옥남 할머니의 일기들 중에서 최근 몇 년 간의 일기들은 유독 점점 짧아지고 있는 것 같아서 그것도 마음에 걸립니다. 아흔 일곱 번째 겨울에도, 그리고 그 이후에도 건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아흔 세 번째 겨울을 맞고 계신 저의 외할머니, 하순금. 몇 년 째 자리에서 전혀 일어나지 못하시면서도 기억은 또렷하기만 하고 "움직이지 못하는데 살찌면 안 된다"며 엄격한 다이어트를 지금도 하고 계신, 이런저런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으실 때면 여전히 '요즘 사람'인 저보다 번득이는 재치가 넘치는 입담을 자랑하는, 가끔 할머니 휴대폰으로 전화가 와서 받아보면 뚝뚝 끊어지길래 할머니가 번번이 뭘 잘못 누르셔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그게 아니라 제 목소리가 듣고 싶을 때면 걸었다가 바쁜데 전화한 것 같아서 "여보세요"가 들리면 끊곤 하셨다던 우리 할머니도 이 겨울 이후 언제까지나 건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옥남 할머니, 하순금 할머니, 그리고 들어주시는 모든 분들의 할머니들이 좀더 오래 우리 곁에 계셔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출판사 양철북의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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