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北 삭간몰 기지 논란…그들의 숨은 의도는?

김태훈 국방전문기자 oneway@sbs.co.kr

작성 2018.11.14 11:20 수정 2018.11.14 11:48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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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낯선 지명 삭간몰이 어제(13일) 하루 종일 회자됐습니다. 서울에서 북서쪽으로 130km 떨어진 황해북도 황주군의 지명입니다. 스커드 미사일 기지가 있는 곳입니다. 미사일 기지야 북한에서 새삼스러운 곳도 아닌데 삭간몰이 큰 논란을 불러왔습니다.

화근은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산하 '평행을 넘어서'라는 대북 전문 연구그룹이 내놓은 "북한이 삭간몰 기지를 비롯한 13개 미사일 기지를 미공개(Undeclared)했다"는 내용의 보고서입니다. 미국 언론들은 CSIS의 보고서를 인용하며 북한이 또 무슨 약속을 어긴 양 호들갑이었습니다. 신속하게 정리한다며 브리핑에 나선 청와대 김의겸 대변인이 오해 사기 딱 좋은 말들을 하는 바람에 사태는 커졌습니다.

CSIS의 보고서에는 오류와 의도가 숨겨져 있었습니다. 김의겸 대변인의 브리핑도 마찬가지였습니다. CSIS의 의도, 혹시 그 뒤에 똬리를 틀고 있을지 모를 미국의 의도를 찾아내는 게 중요했는데 청와대의 부적절한 대처에 본질은 사라졌습니다.

● 공공연한 비밀, 북한 미사일 기지들
[취재파일] 北 삭간몰 기지 논란…그들의 숨은 의도는?북한 핵미사일 기지들은 북한 전역에 폭넓게 흩어져 있습니다. 남한을 타격할 수 있는 중단거리 스커드는 북한 남부지방에 3곳이 있습니다. CSIS가 밝힌 삭간몰이 제일 서쪽에 있는 스커드 기지이고 동쪽으로 2곳 더 있습니다. 이른바 스커드 벨트입니다. 사거리가 상대적으로 짧으니 남쪽에 배치했습니다.

북한 동해안을 따라서는 제일 북쪽 상남리를 시작으로 역시 미사일 기지 3곳이 벨트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원래는 중거리 무수단 벨트였는데 무수단이 사실상 도태되면서 화성-12형 벨트가 됐습니다. 괌 포위 사격 위협을 했던 미사일을 운용하는 기지들입니다.

북한 중북부 지방에는 동서로 비스듬히 노동 벨트가 형성돼 있습니다. 신오리 등 역시 3개 기지가 포진해 있습니다. 그 위쪽, 북중 완충지대에는 대륙간탄도미사일 ICBM 기지 3곳이 있습니다. ICBM 벨트입니다. ICBM 기지는 북한 중부 내륙에 1곳 더 있습니다.

한미 군 당국이 정밀 감시하고 있는 북한의 핵심적인 미사일 기지들입니다. 모두 합치면 13곳입니다. CSIS가 정확히 확인했다고 밝힌 북한 미사일 기지 숫자와 똑같습니다. CSIS는 "정체가 불분명한 기지들을 합치면 20곳에 육박한다"고도 했습니다. 맞습니다. KN-02 단거리 미사일과 미사일 종류 불상의 기지를 더하면 20곳에 달하는 것으로 한미 군 당국은 파악하고 있습니다.

CSIS 보고서에 나오는 13개 기지는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미공개 시설도 아닙니다. 북한이 꽁꽁 숨기고 싶은 시설이지만, 현재까지는 어디에 신고할 의무가 없습니다. 그래서 "북한이 미사일 기지를 폐기하겠다고 약속한 적이 없고, 그런 의무 조항을 담은 협정을 맺은 적도 없다"는 김의겸 대변인의 말은 뉘앙스가 이상해서 그렇지, 맞는 지적입니다. 이 부분에서 CSIS의 보고서는 틀렸습니다.

하지만 김의겸 대변인의 말은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는 듯 들릴 소지가 분명히 있었습니다. 특히 "북한이 미사일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큰 속임수를 쓰고 있다"고 보도한 뉴욕타임스 기사를 겨냥해서 "북한은 기만한 적 없다"고 말해 논란에 더 큰 불을 지폈습니다.

김의겸 대변인의 발언 중 팩트가 틀린 부분도 있습니다. "삭간몰 기지는 핵 시설과 직접 연계돼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는데 삭간몰 기지는 분명한 핵 시설입니다. 스커드 미사일은 오래전에 완성된 핵미사일입니다. 북한 비핵화 절차가 시작되면 다른 12개 기지와 더불어 폐기 1순위입니다.

김의겸 대변인은 "삭간몰 기지는 단거리용"이라고 했는데 앞서 언급했듯이 삭간몰 기지는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중·단거리 스커드 미사일용입니다.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KN-02는 삭간몰 기지에는 없습니다.

김의겸 대변인은 어제 이런 말도 했습니다. "북미 대화를 비롯해서 협상과 대화의 필요성을 부각시켜주는 사실관계라고 생각합니다." 이 말과 함께 "북한의 미사일 기지를 면밀히 감시하고 있다"는 언급만 했으면 딱 좋았을 텐데 너무 나갔습니다.

● CSIS 보고서의 의도는?

CSIS 보고서를 작성한 인물은 조지프 버뮤데즈 연구원입니다. 북한 전문 사이트 38노스에서 북한 위성 사진을 전문적으로 분석해왔습니다. 미국 국방정보국(DIA) 출신입니다. 우리 군보다 북한 미사일 정보를 훨씬 많이 보유하고 있는 기관에서 북한 미사일 정보를 담당했었습니다.

그는 일찍이 북한의 미사일 기지를 속속들이 꿰뚫고 있었습니다. 13개 기지의 실체, 그리고 애매하다고 표현한 나머지 6~7개 기지의 속살을 낱낱이 알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새롭고 놀라운 발견인 양 보고서를 냈습니다.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버뮤데즈 연구원은 북한 미사일 기지가 '미공개됐다'는 표현이 잘못됐다는 점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공개는 북미 비핵화 협상이 완전 타결되고 비핵화 절차가 본격적으로 진행될 때 할 일입니다. 지금은 공개, 미공개를 거론할 때가 아닙니다. CSIS 보고서 중 '미사일 기지가 미공개됐다'는 표현에서 대북 압박 여론을 조성하려는 의도가 뚜렷하게 묻어납니다.

버뮤데즈 연구원이 이미 확보한 정보에 추가적으로 삭간몰에 대한 최신 정보가 더해져 CSIS 보고서가 작성됐을 것으로 전문가들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신종우 한국국방안보포럼 책임분석관은 "CSIS 같은 권위 있는 연구기관도 민간 연구소이기 때문에 상업위성 분석만으로는 보고서에 나온 것처럼 기지의 상세 내용을 파악할 수 없다"며 "미국 정보당국의 조력(助力)이 있었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미국 언론들은 CSIS 보고서를 북한을 비판하는 소재로 삼고 있습니다. 미국의 야당인 민주당은 "2차 북미 정상회담을 개최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미 행정부 안에서도 대북 압박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CSIS 보고서가 중간선거 이후 미국의 대북 정책 방향타 역할을 하는 모양새입니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은 누구편 들고, 누구 비난하는 자생적 남남갈등이 아니라 미국의 숨은 의도 읽기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