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촬영을 불허하는 전시회도 많지만, 이 전시회에서는 마음껏 촬영할 수 있었습니다. 친숙한 이미지들을 활용한 거대한 설치미술 작품들 앞에서 많은 관람객이 '예쁘다' '멋지다'를 연발하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저도 재미있게 봤습니다. 제프 쿤스는 제가 좋아하는 작가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가 어떻게 잘 팔리는 작가가 됐는지 짐작해 볼 수 있는 전시였습니다.
전시회에 같이 갔던 제 딸(당시 초등학생이었습니다)은 쿤스의 '풍선 개' 앞에서 예쁘다고 감탄하며 사진을 찍다가, 갑자기 '메이드 인 헤븐' 작품들을 보고 당황한 듯했습니다. 미술관 입장할 때 일부 작품은 어린이들에게 적합하지 않다는 얘기를 듣기는 했지만, 저도 직접 보기 전에는 이런 작품일 줄 상상도 못 했습니다. '메이드 인 헤븐' 전시 구역을 확실히 구분해 통제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저로서는 다소 난처한 상황이 됐던 거죠.
쿤스와 치치올리나의 결혼생활은 3년이 안 되어 끝났고, 이혼한 두 사람은 아들의 양육권을 두고 소송까지 벌이게 됩니다. 쿤스는 치치올리나와 다투면서 '메이드 인 헤븐' 작품 상당수를 부숴버렸다고 하네요. '메이드 인 헤븐' 연작은 쿤스를 세계적인 유명인사로 만들어줬지만, 포르노그래피라는 악평도 쏟아졌습니다.
쿤스는 한동안 미술계에서 '왕따' 취급을 받았고, 그래서였는지 1992년 독일 카셀에서 열린 '도큐멘타 9' 전시에 초청받지 못했습니다. 카셀 도큐멘타는 카셀에서 5년에 한 번씩 열리는 유명 현대미술 전시회인데요, 쿤스는 대신 도큐멘타에 참석했던 딜러로부터 카셀 외곽에 전시할 다른 작품을 의뢰받고서 유럽의 정원 문화에서 영감을 받았다며 '강아지'라는 작품을 내놓았습니다. 스테인레스 스틸의 구조물에 각양각색의 생화 수만 송이를 더해 높이 13m에 이르는, 초대형 강아지 모양의 조각입니다.
쿤스의 작품들은 한국에서도, 대규모 전시는 아닐지라도,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신세계 백화점 본점에는 하트 모양 초콜릿을 반짝거리는 포장지로 싼 듯한 모습의 대형 조각 '성심(Sacred Heart)'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신세계는 제프 쿤스의 작품 이미지를 활용한 상품을 내놓으며 '아트 마케팅'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리움도 비슷한 경향의 '리본 묶은 매끄러운 달걀'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쿤스는 따라서 전통적인 예술가상보다는 비즈니스맨에 가깝다는 느낌이 들고, 상업성 논란도 끊이지 않습니다. 2011년 내한 당시 조선일보와 했던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을 '수집가를 사로잡는 데 뛰어난 마케터'로 보는 평가에 대해 불쾌감을 드러내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다른 예술가들보다 상대의 필요(needs)를 더 잘 읽긴 해요. 월스트리트에서 일한 적이 있고 아홉 살 때부터 용돈을 벌기 위해 집집이 다니며 장난감과 캔디를 팔았죠. 거기서 사람과 교류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예술이란 결국 사람과 소통하고 교류하는 것이잖아요? 저는 제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뿐입니다." (2011년 7월 1일 조선일보 인터뷰 인용)
대중과 소통하고 교류하기 위해 친숙한 이미지를 차용하는 쿤스의 작품은 종종 표절과 패러디의 경계에서 줄타기를 합니다. 하지만 이번 표절 판결로 쿤스가 크게 타격을 받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쿤스는 '겨울 사건' 표절로 17만 달러를 배상해야 하지만, 사실 '겨울 사건' 작품으로 번 돈에 비하면 얼마 안 됩니다. '겨울 사건' 에디션 하나가 지난 2007년 크리스티에서 무려 430만 달러에 팔려나갔다고 하니까요.
표절과 상업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제프 쿤스가 많은 수집가와 대중의 사랑을 받는 작가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지금 현대미술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작가이기도 하고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