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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V] "합법적 면죄부인가? 사법정의의 장애물인가"…'심신미약 감형' 끝나지 않은 그림자

정윤식 기자 jys@sbs.co.kr

작성 2018.11.14 17:18 수정 2018.11.14 17:20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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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신미약 감경'. 심신 장애로 인해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자의 행위는 형을 감경한다.

숱한 범죄 사건에서 들어온 이 말. 범죄로부터 피해자를 지키고 보호해야 할 법이 누군가에게는 조롱과 멸시 그리고 증오의 대상이 돼 버렸습니다.

범죄 피해자와 유가족들의 가슴에 피멍이 들게 한 심신미약 감경이 다시 한 번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조두순 출소까지 만 2년밖에 남지 않은 2018년 지금 우리나라의 법은 국민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 걸까요.

대한민국은 국민에게 과연 얼마나 안전한 나라일까요.

■ "이번에도 심신미약이라고?"…피해자 두번 울리는 '심신미약 감경'의 역사

서울 강서구 PC방에서 일어난 아르바이트생 살인 사건의 충격이 가시지 않은 지난 10월 12일. 이번엔 금천구의 한 오피스텔에서 한 여성이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간호조무사로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피해자. 살인범은 다름 아닌 그녀의 남자친구였습니다.

[119 구급대원 : "저희 도착 당시에는 환자 분이 바닥에 누워 있는 상태로 의식, 호흡, 맥박이 없으셨고요. 심정지 환자라는 것을 인지하고 병원으로 이송했습니다."]

피해자는 가장 안전해야 할 자기 집에서 남자친구에게 살해당했습니다. 다투다가 홧김에 범행했다는 게 경찰 조사 결과였습니다.

[피해자 아버지 : "침대 위에서 이런 식으로 목을 졸랐답니다. 그래서 여기까지 내려왔대요. 내려오면서까지 목을 졸랐답니다. 그러니까 목뼈가 부러졌겠죠."]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너무나 공격적인 행동. 딸을 잃은 아버지의 마음을 한 번 더 짓밟은 건 가해자가 정신 감정을 받기 위해 치료감호소로 보내졌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군에서도 정신적인 문제로 3개월 만에 의병 제대를 했던 가해자. 그러나 가해자와 알고 지내던 딸의 친구들은 다른 이야기를 했습니다.

[피해자 친구 : "동갑이고 하니까 같이 만나서 술도 먹고 되게 재미있게 얘기도 많이 했던 애고요. 저희랑 되게 잘 어울렸어요."]

조현병 같은 정신 질환이 있는지 술을 마셨는지 안 마셨는지. 가해자의 범죄 당시 상태가 우리는 왜 궁금해지는 걸까요.

숱한 범죄 피의자들이 그동안 심신미약을 이유로 마땅한 죗값을 치르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금천구 살인 사건의 피해 가족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피해자 아버지 : "평소에는 약도 안 먹었답니다. 정신병이라는 건 약을 안 먹으면 자기가 혼자서 할 수 있는 인지능력이 떨어진다고 알고 있거든요. 그런데 의가사 제대를 한 날부터 사건 당일까지 약을 안 먹었답니다."]

2016년 5월 서울 강남역. 공용화장실에서 처음 보는 20대 여성을 무참히 살해한 36살 김 모 씨.

남자 6명을 지나쳐 보낸 뒤 여성이 들어오자마자 살해한 강남역 살인범은 검찰이 구형한 무기징역이 아닌 징역 30년형을 받았습니다.

범행 장소와 방법까지 미리 준비하고 계획했지만 재판부는 심신미약을 이유로 감형을 결정했습니다.

[손수호 / 변호사 : "범행 후에 강남에 그 CCTV가 많이 있는데요. 전혀 개의치 않고 대로를 활보했어요. 그리고 또 그 다음 날 이제 살해 과정에서 자신의 옷에 묻은 피를 지우지도 않고 게다가 범행 도구인 식칼을 가지고 자신의 일터로 출근했거든요. 이런 평범하지 않은 행동을 볼 때 이건 행위 당시에도 '심신미약 상태에 있었을 것이다'"]

■ 분노를 일으켰던 조두순의 심신미약 인정과 감형…출소일까지 이제 2년

강남역 살인사건보다 1년 앞선 2015년. 32살 박 모 씨는 부산의 새벽 거리를 걷다가 20대 남자들과 마주쳤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집단 폭행이 가해졌고 얼굴과 머리를 여러 차례 걷어차인 박 씨는 두개골이 함몰되는 등 크게 다쳤고 여드레 뒤 안타깝게도 숨을 거뒀습니다.

그런데 가해자들에게 내려진 판결은 징역 3년이었습니다. 이번에도 심신미약이었습니다.

[박 모 씨 / 폭행 사망 피해자 유가족 : "'초범에 심신미약 상태' 뭐 이렇게 음주 후 죽을 줄 모르고 때렸다는 게 거의 중점적으로 나오더라고요. 말도 안 되죠. 어떻게 사람이 사람을 때렸는데 두개골이 부서질 정도면 그게 죽을 줄 모르고 때렸겠습니까. 몇 번을 강조하고 이야기를 했는데도 판결문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으니까 저희도 참담하죠."]

3년이 지난 지금, 가해자들은 교도소를 나와 사회로 돌아왔습니다. 가족을 억울하게 잃고도 무기력하게 지켜봐야만 했던 가족들.

어느 날 받은 문자 메시지는 아직 아물지도 않은 상처를 또 한 번 헤집었습니다.

[박 모 씨 / 폭행 사망 피해자 유가족 : "문자가 왔었어요. (가해자들이) 출소를 하면 그렇게 알려주는 시스템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괜히 신청했다고 생각했어요. 괜히 아무 생각 없이 잊고 살았는데 그거 받으니까 똑같이 해주고 싶더라고요. 나도 그냥 술 먹고 하면 되겠나 싶을 정도로요."]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피의자 김성수가 우울증 치료 전력으로 정신감정을 받는다는 소식이 들리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은 심신미약 감경을 반대하는 글로 들끓었습니다.

이번만큼은 절대 안 된다는 강한 반대의 목소리. 국민적인 분노를 끓어오르게 한 배경에는 지난 2008년 일어난 조두순 사건이 있습니다.

당시 8살이던 여자 어린이에게 평생 치유될 수 없는 피해를 준 조두순. 검찰은 조두순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했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2009년 9월 30일 SBS 8뉴스 : "법원은 조 씨가 범행을 부인하는 데다 피해자의 회복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 등 죄가 중해 무기징역에 해당하지만 만취상태였던 점을 감안해 징역 12년을 선고한다고 밝혔습니다."]

조두순은 심지어 징역 12년 선고가 너무 과하다며 항소했습니다.

국민적 공분과 법과의 거리는 멀게 느껴졌습니다.

■ 심신미약 판정에 들끓은 국민들의 분노…법이 바뀌고 있다고 하지만

조두순 사건을 계기로 성폭력특례법이 강화돼 술을 마시고 저지른 성범죄의 경우 감경 규정이 적용되지 않을 수 있게 됐지만 이후에도 흉악 범죄 가해자들이 심신미약을 주장하는 사례는 끊이지 않았습니다.

2011년 4월 경기도 수원에서 일어난 중국인 불법체류자 오원춘 사건. 절박했던 피해자의 신고를 112 상황실 경찰관이 묵살하면서 20대 여성이 끝내 숨졌던 이날 오원춘은 자신이 술을 마신 뒤 외로움을 느껴 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해 사람들을 경악케 했습니다.

법원은 그러나 심신미약을 인정하지 않고 무기징역을 선고했습니다.

15살 된 딸의 친구를 숨지게 한 '어금니 아빠' 이영학. 부인이 죽은 뒤 계속 약에 취해 있었고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번에도 심신미약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심신미약에 따른 감형은 정상적인 의사결정 능력과 사물 변별 능력이 없는 상태, 즉 자신의 행위를 본인도 이해하지 못하고 저지른 범죄는 고의적인 의도를 갖고 저지른 죄와 다르게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 본래 취지입니다.

지난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심신미약을 주장해 인정받은 경우는 5명 가운데 1명 정도로 20% 수준입니다.

최근 국회에서는 심신미약 감경과 관련한 법을 바꾸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지금의 법은 피의자의 심신장애가 인정되면 판사가 반드시 형을 줄이거나 처벌하지 않아야 하는데 이 의무조항을 없애자는 겁니다.

심신미약이 인정돼도 무조건 감형하지 않고 죄의 무게에 따라 법관이 판단하게 하자는 겁니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수년 동안 들끓은 국민의 분노가 이제라도 법을 바꾸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조두순 사건 같은 절대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범죄를 제대로 막지 못한 우리 사회가 겪는 뒤늦은 홍역일까요.

■ 조두순 출소까지 남은 시간은 2년…우리 사회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 것인가

조두순의 출소는 2년 뒤인 2020년 12월로 다가왔습니다.

피해자는 지금 괜찮은 걸까요?

[신의진 교수 / 조두순 사건 피해자 주치의 : "국민 청원도 있었죠 청와대에. 못 나오게 해달라고. 그런데 그건 이미 법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안 된다고는 했지만 그런 일들이 나오면서 정말 '혹시 길을 가다가 마주쳐서 나를 알아보고 해코지를 하면 어떻게 하나'하는 비이성적인 불안을 피해자가 호소한다고 합니다."]

세상 밖으로 나올 조두순을 지금의 사법체계로는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것에서부터 우리 사회는 피해자에게 여전히 죄를 짓고 있는지 모릅니다.

[이미경 /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 "모든 범죄의 피해자들은 '가해자가 온당한 처벌을 받는 것' 이것이 그분들의 치유에 저는 첫걸음이 되는 거라고 보거든요."]

스무 살 생일날 남자친구에게 살해당한 딸의 아버지. 장례 뒤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피해자 아버지 : "딸. 친구들이 생일 선물로 너 갖고 싶은 목걸이였는데 전해주지 못했다고 오늘에서야 이렇게 전해주네. 미안하다. 지켜주지 못해서 아빠가 정말 미안하다. 사랑한다. 언제까지나"]

피해자들의 가족들이 하늘나라로 보낸 기약 없는 약속들. 무거운 무게를 짊어져야 할 사람은 피해자의 가족들만은 아닐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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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V] '조두순 출소까지 2년,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