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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억새와 춤을?…명성산(鳴聲山)을 오르다 ①

[라이프] 억새와 춤을?…명성산(鳴聲山)을 오르다 ①
▲ 등룡폭포(登龍瀑布)에서 비상하는 용은 다름 아닌 단풍이었다.
 
<낙엽(落葉)>
 
떠나야 할 때는
미련 없이 떠나야 한다.
 
무어라 아쉬움이야 없으랴마는
그 아쉬움마저도 욕심인 걸,
이제는 알아야 한다.
 
버리고
내려놓으며
빈 몸으로
 
툭~
 
몸을 허공에 놓아두면 될 일이다.
 
그저
스러지고 스러져
무념(無念)의 고요함으로
겨울 언 땅 속으로
하염없이 스며들면 될 일이다.
 
다가올 봄조차도 기약하지 않는
텅 빈 허허로움으로
안으로 안으로만 침잠하며
한때는 푸르디푸른 나뭇잎이었다는 사실마저도
잊은 채로
흘러가면 될 일이다.
 
이제는,
몇 번의 계절이 지나는 동안에도
끝끝내 놓지 않았던
꼭 쥔 손을,
놓아야 한다.
 
낙하(落下)의 흔들림 속에서
바라본 하늘은,
적요(寂寥)의 청정(淸淨)한 가을빛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深淵)
떨어짐이 차라리 승천(昇天)이었음을
떠나고서야 깨닫는다.
 
이별의 비장함을 꿈꾸었던
세속(世俗)의 마음마저
우스워지는 찰나의 순간이었던 것을...
 
그저
떠나갈 뿐이다.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훌쩍
스러지면 될 일이었다. 
명성산 2
떠나야 할 때는 미련 없이 떠나야 한다.
가끔은 무언가를 써야한다는 강박에 시달릴 때, 자기 표절(논문이 아니니 이해하시라~)은 유효한 방법이다. 위의 자작시 <낙엽>도 그러하다. 예전에 어느 글에선가 소개했지만, 또 들이밀게 된다. 서서히 굳어져가는 머리에 과거보다 나은 글을 보여주지 못하는 스스로의 부족함이 늘 애석할 따름이다. 
계곡을 따라 계절이 흐르고 있었다.
● 단풍이 전하는 명성산의 슬픔
 
그렇게 가야 할 때를 알고 가는 그들은, 억새로 유명한 명성산을 오르는 동안에도 휘황한 색색의 모습으로 생(生)의 마지막을 불사르고 있었다. 성미 급한 그들 중 일부는 낙엽이라는 또 다른 존재가 되어 길 위에서 스러지고, 또 더러는 계곡을 따라 흘러가고 있었다.
 
만추(晩秋)라는 계절의 배가 이끄는 대로 산은, 나무들은 그들의 다음 삶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일까. 산 가득 느린 곡조의 구슬픈 비가(悲歌)가 흐르고 있었다. 계곡물소리였는지... 바람소리였는지... 어쩌면 이루마(Yiruma)의 피아노 연주곡의 피아노음처럼 똑똑 무언가 떨궈지는 소리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울음산의 단풍은 잔뜩 충혈된 낯빛으로 불타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아마도 명성산이 ’울음산‘이어서였을 것이다. 명성산(鳴聲山, 923m)은 궁예(弓裔)의 한이 서린 산이다. 그래서 이름마저도 슬프다.
 
그 슬픈 사연인즉슨, 태봉의 왕이었던 궁예(弓裔)가 반란을 일으킨 왕건(王建)에게 패하면서 이곳 명성산에 이르러 자신의 시대가 저물었음을 통감하고 목 놓아 울었다고 한다. 그러자 산천초목도 같이 슬피 울었다는 전설이 깃든 곳이 이곳 명성산이다. 
명성산 5
가을볕 때문이었는지 산이 높아질수록, 그들은 발랄했고,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있음이 분명했다.
산을 오르자, 궁예의 피맺힌 원한이 스며들었음인가. 단풍은 잔뜩 충혈된 낯빛으로 함초롬히 물들어 있었다. 그렇게 산은, 그 산의 나무들은, 그리고 그 산을 아는 사람들은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궁예를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어느 순간, 산과 계곡과 단풍의 무리는 더 이상 무겁지도, 슬프지도 않았다. 가을볕 때문이었는지, 흥겨운 동행이 있어서인지 산이 높아질수록 그들은 발랄했고, 또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있음이 분명했다. 하기야 한 두 해 겪은 일도 아닌데, 언제까지고 그러고 있을 수만도 없는 일이 아니던가. 
명성산 6
산은 억새보다도 계곡이, 단풍이 먼저 여행자의 발걸음을 붙든다.
● 명성산에는 억새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억새의 군무(群舞)에 취해보리라 다짐하며 오른 산이건만, 산은 억새보다도 계곡이, 단풍이 먼저 여행자의 발걸음을 붙든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풍경에, 그들의 유혹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계곡과 단풍은 그야말로 아름다운 짝꿍이었다. 물이 있었기에 단풍은 더욱 단풍다워질 수 있었고, 계곡의 물은 단풍을 담았기에 기품이 있었다. 관포지교(管鮑之交), 수어지교(水魚之交)...를 능가하는 ’풍수지교(楓水之交)‘였다. 그들은 서로가 같은 곳에 머물렀지만, 구속하지 않았고, 상대를 돋보이게 함으로써 자신이 더욱 빛나는 법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명성산 7
폭포와 단풍은 상대를 돋보이게 함으로써 자신이 더욱 빛나는 법을 알고 있었다.
등룡폭포(登龍瀑布)에 이르자, 비상하는 용은 다름 아닌 단풍이었다.
 
폭포와 단풍은 서로의 공간을 침범하지 않으면서, 희고 푸른 바탕의 그와 빨갛고 노오란 그는 환상의 배색으로 색의 짜임새란 이런 것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설사 물속에 잠기어도 단풍의 색은 바래지지 않았고, 물 역시 자신의 색으로 붉고 노란 그의 색을 침범하지 않았다. 
자연은, 언제나 인간 삶의 가장 크고 좋은 도량이자 스승이다.
다른 존재에 대해 이해하고 존중할 때, 그 순간 서로가 빛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자연이라는 대상은 늘 공존의 울타리 안에서 상생의 길을 걸어가고 있었고, 명성산의 폭포와 단풍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존재에 대한 이해와 인정은 ‘열린 마음’이라야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자연은, 언제나 인간 삶의 가장 크고 넓은 도량이자 스승이라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된다. 
자연이라는 대상은 늘 공존의 울타리 안에서 상생의 길을 걸어가고 있었고, 폭포와 단풍도 마찬가지였다.
● ‘열려야’ 마음을 얻는다.
 
‘열린 마음’이란 ‘세상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수용하는 관용과 그 관용의 마음을 지켜내기 위한 인내심을 키워가는 과정’이라 할 것이다. 그를 위해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고, 세상의 다양한 생각과 그 ‘다름’을 인정해 가는 과정이며, 그런 이유로 자신의 시각 안에서만 판단하려는 충동을 가라앉히려고 노력하는 모든 것이 바로 열린 마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산으로 가는 그들에게 단풍은 산이 베푸는 선물이다.
하지만 우리는 상대를 이해하고 인정할 때라야 자신 역시 존중받을 수 있다는 뻔한 사실을, 얼마나 자주 잊고 살아가고 있던가. 어쩌면 ‘안다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인지도 모른다. 아는 것은 실천할 때라야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더욱 두터워지는 고루함으로 인해 ‘꼰대’의 반열로 들어서는 내가 나 스스로에게 던지는 충언이자, 경고이기도 하다. ‘열려야’ 멀리 볼 수 있고, 과거로의 회귀를 막아낼 수 있는 것이다. 언감생심 ‘어른’이 되고자 하지는 않지만, ‘꼰대’가 돼서는 안 될 일이다. 
명성산 11
산이 높아질수록, 억새가 아는 체를 한다.
● 억새의 바다에 빠지다
 
계곡과 단풍에 묶여있던 발걸음을 억지로 떼어내 산을, 다시 오른다.
 
역시나 명성산은 억새의 낙원이었던가. 이정표는 아직도 억새밭까지는 1km남짓 남았다고 알려주고 있었지만, 가는 길 가장자리에서는 성긴 억새밭의 억새들이 가는 손을 흔들며 행인을 억세게(?) 반기고 있었다. 
빛을 안은 억새꽃들에 눈이 부시다.
극적인 풍경의 변화다. 명성산은 1,000m가 되지 않는, 어쩌면 높지도 낮지도 않은 산이건만 어느 즈음에 이르러 풍경의 변화는 극적이었다. 키 큰 나무들은 모두다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작은 나무들과 억새들만이 산을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정상이 머지않았음을 감지한 발걸음이 허위허위 마지막 힘을 내기 시작한다. 그렇게 닿은 산 정상 부근... 억새밭이다. 
명성산 14
명성산의 억새는 바람이 이끄는 대로, 그렇게 흐르고 있었다.
가슴이 뻥 뚫리는 시원함이 있다. 그야말로 억새의 호수였고, 또 바다였다.
 
바람에 물결이 일 듯, 억새가 만들어내는 하얀 파도의 너울은 등성이를 타고 산 위로 솟구쳐 오르다, 이내 쏴아아~ 계곡으로 내처 달린다. 명성산의 그 억새가 바람이 이끄는 대로, 그렇게 넘실대며 흐르고 있었다. 물 맑은 호수에서 노닐던 선녀가 승천하듯, 그렇게 억새의 너울은 산 정상을 향해 달음박질치다 어느새 하늘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저기서 터지는 탄성... 사람들은 억새의 바다에 몸을 던져 넣고 있었다.
 
<2편에서 계속> 
바람에 물결이 일 듯, 억새가 만들어내는 하얀 파도의 너울은 등성이를 타고 산 위로 솟구쳐 오른다.
● 명성산 가는 길
 
<버스>
- 의정부역에서 138-6번 좌석버스 (산정호수 – 의정부역)
포천시내버스 10번, 10-1번 (산정호수 상동주차장 - 영북면사무소)
 
<자가용>
산정호수 상동주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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