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이 가해자로 지목된 성범죄 사건에서 나온 유죄 판결을 놓고 사법 절차가 '유죄추정' 방식으로 이뤄졌다며 규탄하는 측과 가해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 자체가 2차 가해라는 측의 집회가 27일 동시에 열렸습니다.
이날 서울 종로구 지하철 4호선 혜화역 일대 마로니에 공원 인근에는 각각 다른 주장을 하는 단체들이 나란히 자리해 집회를 열었습니다.
1번 출구 쪽에는 '남성과 함께 하는 페미니즘'(남함페)이라는 단체가, 2번 출구에는 '당신의 가족과 당신의 삶을 지키기 위하여'(당당위)라는 단체가 자리잡았습니다.
이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은 것은 지난달 5일 나온 부산지법 동부지원의 성추행 사건 판결입니다.
곰탕집에서 여성을 성추행한 혐의로 한 남성이 징역 6개월을 선고받자 일각에서 누명을 쓴 것이라는 비판이 일었고, 급기야 '무죄 추정이 아닌 유죄추정의 원칙이 작동했다'는 목소리까지 나왔습니다.
당당위 측은 "(성추행 사건에 연루되면) 한순간에 가정, 경력, 직장까지 잃어버릴 수 있다"며 "세상에 이런 일이 있는지 몰랐다. 억울한 사례를 들어보면 내가 살던 세상은 아름다운 세상이었구나, 거기서 순식간에 떨어질 수 있다고 느낀다"고 분개했습니다.
이름을 밝히지 않고 단상에 선 당당위의 한 여성 운영진은 "일부 언론은 우리 시위가 남성을 위한 것이라고 포장하고 우리가 성 갈등 유발 단체라고 한다"며 "보시는 바와 같이 저는 여자고 이 시위는 모든 여성에게 열려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우리는 한 성(性)의 편만 들지 않으며 남자든 여자든 억울하고 힘든 사람의 편을 들 뿐"이라며 "곰탕집 판결은 판단 기준이 법이므로 어쩔 수 없다면 낡은 법을 고쳐나가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맞서는 남함페는 이런 접근이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라고 주장했습니다.
남함페 측은 "곰탕집 사건을 두고 인터넷에는 오직 가해자 입장만 대변하는 글이 수없이 공유되며 피해자에 대한 허위사실이 유포돼 2차 가해가 양산됐다"며 "남성들은 침묵을 지키고 방관했다"고 비판했습니다.
이어 "당당위는 성추행 장면이 폐쇄회로(CC)TV에 잡히지 않았으므로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한다"며 "이는 정황증거와 직접증거 사이 위계가 존재하지 않는 한국 형사소송법의 자유심증주의를 몰라서 일어난 일"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정황증거가 있는 만큼 넉넉히 유죄를 인정할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남함페는 그러면서 "당당위의 주장은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만을 의심하지 않고서는 가능하지 않다"며 "가해자 진술에는 의혹을 제기하지 않으면서 피해자 진술만 문제시하는 것은 성범죄 피해자들이 겪어온 2차 피해"라고 강조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