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27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한 것은 또다시 '제 식구 감싸기'식 결론을 내지 않겠느냐는 법조계의 대체적 예상과는 엇갈리는 결정으로 해석됩니다.
그간 법원은 검찰 압수수색 영장의 90% 안팎을 기각하면서 '직권남용 혐의가 성립하는지 의문'이라는 식의 무죄 심증을 내비쳐왔습니다.
'방탄법원'이라는 비판 여론이 들끓어도, 대통령이 대법원장을 만나 직접 협조를 요청해도 별다른 변화는 감지되지 않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날 법원이 임 전 차장의 구속 사유로 "범죄사실 중 상당한 부분에 대해 소명이 있다"고 밝힌 것은 주목할만한 대목으로 평가됩니다.
검찰이 넉 달여간 파헤친 30개 안팎의 '사법 농단' 의혹에 대해 사법부가 스스로 '실체가 있다'고 인정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검찰 관계자는 "범죄사실이 소명됐다는 말은 사실관계가 아닌 범죄혐의가 인정된다는 것"이라며 "법원이 '구속이 될 만큼 죄가 된다'고 본 만큼 진실규명이나 책임자 처벌에 중요한 진전의 의미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간 견고하게 유지하던 법원의 '영장 빗장'이 열린 것은 임 전 차장의 진술이 몇몇 후배 판사들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상황 등이 고려됐을 거란 추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검찰은 각종 사법 거래 의혹에 연루된 80명 안팎의 전·현직 판사를 소환 조사하며 상당수로부터 "임 전 차장의 지시를 받았다"는 증언을 확보했습니다.
그러나 임 전 차장은 일부 사실을 부인하거나 "해당 판사가 '오버'해서 한 일"이라며 책임을 떠넘기는 듯한 모습도 보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임 전 차장과 전·현직 판사들의 진술 신빙성을 가려야 하는 법원으로서는 전·현직 판사들의 진술이 더 믿을 수 있다고 판단한 셈입니다.
이런 판단을 두고 법원이 조직에 상대적으로 여파가 적은 방향으로 결론을 내린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임 전 차장은 지난해부터 3차례에 걸친 법원 자체조사에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의 '최종 책임자'로 지목된 바 있습니다.
사건 관련자 중 유독 그의 자택·사무실만 지난 7월 일찌감치 압수수색 영장이 발부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임 전 차장의 혐의를 인정해도 법원으로서는 '종전까지의 판단을 스스로 뒤집었다'는 부담이 상대적으로 덜하다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다만, 일각에서는 임 전 차장의 구속이 일종의 '꼬리 자르기'가 될 수도 있다는 의심을 품습니다.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하는 국회와 내년까지 수사를 이어갈 채비를 하는 검찰 앞에 법원 내부에서도 의혹 전반에 깊숙이 관여한 임 전 차장의 법적 책임을 인정하되, 그 이상으로 사태가 번지는 것은 차단하려는 뜻이 있는 게 아니냐는 것입니다.
사법 농단 의혹을 바라보는 법원의 시각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는지는 결국 임 전 차장의 상급자인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한 수사 경과를 봐야 하는 게 아니냐는 예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법조계에서는 양승태 대법원 체제에서 '대법관 0순위'로 꼽히던 임 전 차장이 구속 이후 심경 변화가 있을지 주목합니다.
그의 입이 어느 쪽을 향하느냐에 따라 '윗선' 수사가 급물살을 탈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난 7월 압수수색 당시에도 임 전 차장은 법원이 자신에 대해서만 영장을 발부한 데 상당한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