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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와일드 캣 사건' 무죄…그들의 명예는?

최윤희 전 합참의장
2015년 10월 7일, 최윤희 당시 합참의장과 전화통화를 하게 됐습니다. 방산비리 합수단이 1차 해상작전헬기 도입 비리 사건의 수뇌로 최윤희 전 의장을 상정하고 수사를 벌이고 있을 때였습니다. 최 전 의장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습니다. "오늘 전역하면 검찰이 바로 수사에 나설 것 같은데, 자신 있습니까?"

최 전 의장의 당시 대답은 이랬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지금까지도 버텼고 앞으로도 자신 있습니다. 나를 믿어도 실망하지 않을 겁니다." 그로부터 만 3년이 흘렀습니다. 최 전 의장은 허위 시험성적서 작성을 지시한 방산비리 혐의로 얼마간 옥살이를 한 끝에 어제(25일) 대법원 상고심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습니다. 최 전 의장은 해군참모총장으로 재직하던 2012년 와일드캣(AW-159)이 해군의 작전요구성능을 충족하는 것처럼 허위 시험평가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실무진에 지시한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법원은 "최 전 의장은 시험평가 결과서를 결재하지 않았고 그 구체적인 내용을 보고 받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습니다. 정홍용 전 국방과학연구소 ADD 소장도 무죄, 그 밖의 군인 2명, KIDA 연구원, 홍보업체 대표도 모두 무죄 판결받았습니다.

이번 판결로 미뤄보면 아직 판결 기일이 잡히지 않은 예비역 5명도 무죄 선고를 받을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박근혜 정부 시절 방산비리 '광풍'의 상징과도 같은 사건에 연루된 군인들이 무죄로 풀려나거나 석방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때 합수단의 주력이었던 검사와 감사원 감사관들은 지금도 검찰청, 감사원을 지키고 있지만 최 전 의장을 비롯한 군인들은 명예를, 세월을, 재산을 잃었습니다.

● 와일드 캣 사건의 시작
해군 해상작전헬기 와일드 캣
해군의 해상작전헬기 작전요구성능 ROC는 디핑소나를 장착한 상태에서 최대 항속시간 2시간 40분입니다. 와일드 캣은 이 ROC를 넉넉히 통과했습니다. 물론 성능은 대형 해상작전헬기 시호크가 더 뛰어납니다. 하지만 당시 예산은 6천억원도 안됐고 최소 도입 대수는 8대였습니다. 시호크는 이른바 '그림의 떡'이었습니다.

그런데 와일드 캣을 떨어뜨리려던 세력들은 가격은 도외시한 채 와일드 캣과 시호크의 성능을 단순 비교했습니다. 해상작전헬기의 실체도 없는 제 3의 헬기가 등장하기도 했는데 3개 기종 중 와일드 캣의 성능이 제일 못하다는 자료가 나돌기도 했습니다. 대잠 작전 시간이 와일드 캣 38분, 시호크 3시간 20분, 실체 없는 제 3의 헬기 2시간 19분이라는 주장입니다. 누가 이런 자료를 작성했는지, 유포했는지 업계에선 공공연한 비밀이었습니다.

압권은 시험평가 방법 비틀기였습니다. 음파를 탐지하는 디핑소나 대신 모래주머니를 헬기에 싣고 성능을 엉터리로 평가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실은 모래주머니가 아니라 돌덩어리, 나무토막으로 시험평가해도 무방합니다. 디핑소나를 싣고 충분히 오래 비행하는지, 디핑소나를 제 속도로 바다에 넣었다 건질 수 있는지 평가하는데 굳이 값비싼 디핑소나로 시험할 필요가 없습니다.

합수단은 모래주머니 대체 시험에 시험평가 시험성적 위조 혐의를 적용했습니다. 군인들은 줄줄이 구속됐고, 와일드 캣은 ROC에도 못 미치고 시험평가도 황당하게 실시한 헬기라는 오명을 뒤집어 썼습니다. 지금도 인터넷 검색을 해보면 '모래주머니 와일드 캣' 기사가 숱하게 보입니다. 

● 끊이지 않는 와일드 캣 떨어뜨리기 시도
역대 최대 규모로 출범했던 방산비리 합수단
와일드 캣은 ROC를 가볍게 충족해 영국 현지에서 우리 해군의 수락검사를 통과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1차분 와일드 캣 4대가 2016년 6월 13일 김해공항을 통해 들어왔습니다. 이때 비정한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습니다.와일드 캣 도입을 널리 알려야 할 방사청이 김해공항에 도착한 와일드 캣의 영상은커녕 사진 한 장 공개하지 않은 겁니다.

방사청은 합수단이 두려웠던 모양입니다. "당신들은 군인이고, 감옥에 있는 동료는 전우나 마찬가지인데 이렇게 비겁할 수는 없다"는 항의를 받고 나서야 방사청은 사진 몇 장을 공개했습니다.

현재는 1차분 8대가 모두 들어왔고 해군에 인도됐습니다. 그런데 올해까지도 와일드 캣에 대한 공격은 계속됐습니다. "와일드 캣은 비리 헬기인데도 업체는 지체상금 수백억 원을 면제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할 정도로 파렴치하다"는 내용이 정치인들을 통해 퍼져나갔습니다. 지체상금이란 납기를 못 맞췄을 때 정부가 업체로부터 받아내는 일종의 범칙금입니다.

와일드 캣 납기가 늦춰진 가장 큰 이유는 방산비리 수사로 도입 절차가 멈췄기 때문입니다. 정부 잘못이지 업체 잘못이 아닙니다. 군의 한 고위 관계자는 "최윤희 의장 수사가 실패했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와일드 캣에 흠집을 내서 최소한의 수사 체면이라도 세우려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최윤희 전 의장과 정홍용 전 소장 등 6인 당사자 뿐 아니라 그 가족들에게 지난 3년은 가혹한 시간이었을 겁니다. 버텼더니 오늘을 맞기는 했습니다. 그 뿐입니다. 그들이 잃은 명예, 세월을 되돌릴 방법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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