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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신기루처럼 사라진 평창 신화…한국 썰매의 미래는?

[취재파일] 신기루처럼 사라진 평창 신화…한국 썰매의 미래는?

훈련장 없고…외국 코치 떠나고…후원 끊기고

최희진 기자 chnovel@sbs.co.kr

작성 2018.10.26 09:57 수정 2018.10.27 18:57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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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신기루처럼 사라진 평창 신화…한국 썰매의 미래는?
지난 2월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스켈레톤 윤성빈의 금메달과 봅슬레이 4인승팀의 은메달이라는 쾌거를 이뤘던 한국 썰매가 올림픽이 끝나자마자 커다란 시련에 직면했습니다. 평창 신화로 장밋빛 미래를 꿈꿨던 선수들은 암울한 현실에 처했습니다.
스켈레톤 윤성빈, 인터뷰 스켈레톤 금메달리스트 윤성빈 봅슬레이 4인승팀 은메달
▶ 시즌 코 앞인데…'썰매 대표팀', 훈련장 없어 '울상'
봅슬레이 대표팀 미디어데이 "올 시즌 목표에 대해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시즌과 비교해 팀의 준비 상황이 50%에 불과합니다."

다음 달 2018-2019 새 시즌 개막을 앞두고 이용 봅슬레이-스켈레톤 대표팀 총감독의 푸념 섞인 말입니다. 대표팀은 시즌 개막이 코앞에 다가왔는데 국내에서 아직까지 주행 훈련을 한 번도 못했습니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치른 올림픽 슬라이딩센터가 있지만 정부와 강원도가 사후 활용 방안을 여태껏 정하지 못해 폐쇄됐기 때문입니다. 지난해에는 9월 말부터 슬라이딩센터에서 주행 훈련을 시작해 평창 올림픽의 쾌거를 이뤘습니다. 슬라이딩센터가 완공된 2016년에도 10월 초부터 트랙 위를 달렸습니다. 하지만 올 해는 선수들이 썰매를 한 번도 타보지 못하고 새 시즌을 맞이하기 위해 지난 24일 출국했습니다. 출국 전 가진 기자회견에서 스켈레톤 윤성빈과 봅슬레이 원윤종, 서영우, 김동현, 전정린 등 평창의 주역들은 걱정과 불안감이 가득한 모습이었습니다.

"지난해에는 충분히 훈련했기 때문에 자신감이 있었지만, 올해는 훈련 환경이 뒷받침되지 않다보니까 자신 있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아쉬울 뿐입니다." - 윤성빈

"국내에서 주행 훈련을 하지 못하고 출국을 해야 하니까 자신감도 떨어지고 불안합니다." - 원윤종

"올림픽이 끝나고 아직까지 얼음 위에서 한 번도 훈련을 못하고 호흡도 못 맞추다 보니까 선수들 간에 확신이 없고 불안합니다." - 서영우

"10년전으로 다시 돌아간 것 같아서 걱정됩니다." - 김동현


"정부 지원이 줄어들어 지난 7월 캐나다 전지훈련도 절반 밖에 못 갔습니다." - 전정린

강원도 평창군 슬라이딩 센터 ● 최신식 평창 슬라이딩센터는 '그림의 떡'

지난 2016년 10월 완공된 평창 슬라이딩센터는 전 세계 16개 트랙 가운데 가장 최근 지어진 것으로, 최신식 시설을 갖추고 있습니다. 여름에도 얼음 위에서 훈련할 수 있는 아이스 스타트 훈련장과 전 세계 트랙 가운데 유일하게 선수들이 경기 전 몸을 풀 수 있는 전용 육상 트랙까지 갖췄습니다. 지난해 3월 올림픽 테스트이벤트로 열린 봅슬레이-스켈레톤 월드컵과 올해 평창 올림픽에 출전했던 세계 각국 선수들도 평창 슬라이딩센터의 시설에 크게 만족감을 나타냈습니다. 우리 대표 선수들은 지난해 8월 아이스 스타트 훈련장에서 스타트 기술을 집중적으로 가다듬었고, 9월 말부터 본 트랙에서 주행 훈련을 해서 실전 감각을 끌어올린 뒤 10월 말 시즌 준비를 위해 출국했습니다.

이렇게 평창 슬라이딩센터의 시설을 십분 활용해 충실히 준비했기에 올림픽에서의 쾌거가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올림픽이 끝나자마자 슬라이딩센터는 곧바로 문을 닫았습니다. 1년에 14억 원(강원도 추산)인 운영비를 정부와 강원도가 얼마씩 분담할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콘크리트 트랙 위에 얼음을 얼리고 얼음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냉각 장치를 가동하고, 전문 아이스메이커들이 지속적으로 관리를 해야 하는데 여기에 비용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현재 슬라이딩센터의 트랙은 얼음을 얼리지 않고 콘크리트 상태로 방치되어 있습니다. 정부는 이달 초 한국개발연구원(KDI)에 평창 슬라이딩센터의 사후 활용 방안과 관련해 연구 용역을 맡겼는데, 내년이 되어야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입니다. 눈앞에 최신식 경기장이 있는데도 사용하지 못하는 선수들은 애만 태우고 있습니다. 고육지책으로 슬라이딩센터가 완공되기 전에 훈련했던 스타트 훈련장의 고무 트랙 위에서 바퀴 달린 썰매를 타고 이번 시즌을 준비했습니다. 다시 과거로 돌아간 것입니다.

피에르 루더스 전 봅슬레이 대표팀 주행 코치(맨 오른쪽) (사진=연합뉴스) ● '특급 도우미' 외국인 코치들은 떠나고

올림픽이 끝난 후 정부의 예산 지원이 10억 원에서 2억 원으로 대폭 감소하면서 평창 신화에 기여했던 특급 외국인 코치들도 하나 둘씩 떠났습니다. '우승 제조기'로 불렸던 봅슬레이 대표팀의 캐나다 출신 피에르 루더스 주행 코치와 썰매 날 관리에 일가견이 있는 장비 전문가 파비오 쉬즈(스위스) 엔지니어는 모두 중국 대표팀으로 옮겼습니다.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유치한 중국이 우리처럼 썰매 종목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 평창 올림픽에서 능력이 검증된 우리 대표팀의 외국인 지도자들을 데려간 것입니다.

● 현대자동차 썰매 제작도 중단

지난 2014년부터 대표팀의 봅슬레이를 제작했던 현대자동차도 후원 계약이 끝나 더 이상 썰매를 제작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연구 개발 단계부터 선수들이 참여해 체형에 맞는 맞춤형 썰매를 제작했는데 이를 중단한 것입니다. 썰매 종목은 첨단 기술의 경연장이기도한데 현대차의 썰매 제작 중단으로 장비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이용 감독은 외국 같은 경우 2년마다 봅슬레이를 업그레이드하는데, 우리 봅슬레이는 3년 이상이 지나 노후화됐다고 말했습니다. 장비의 열세가 결국 100분의 1초를 다투는 기록 경쟁에서도 불리하게 작용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습니다.

영광의 시간은 잠시. 다시 시련에 직면한 봅슬레이-스켈레톤 대표팀은 24일 캐나다로 전지 훈련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11월 북아메리카컵, 12월부터 월드컵 1-8차 대회, 내년 2월 세계선수권까지 잇따라 대회에 출전합니다. 평창 올림픽을 준비하던 지난해와 비교해 달라도 너무 다른 현실에 처한 한국 썰매가 과연 이번 시즌에 어떤 성적표를 받아들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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