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DF X 김동식] 정의형

D포럼, 김동식 작가 신작 단독 연재

SBS 뉴스

작성 2018.10.24 14:14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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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SDF X 김동식] 정의형
※ SBS 보도본부는 지식나눔 사회공헌 프로젝트인 "SBS D 포럼(SDF)"의 연중 프로젝트 중 하나로, 김동식 작가와의 단독 단편소설 연재를 진행합니다.

SDF2018의 올해 주제는 "새로운 상식-개인이 바꾸는 세상".김동식 작가 본인이 이 주제에 부합하는 인물인 동시에 작품을 통해서도 같은 주제를 고민해온만큼, SDF는 11월 1일 오프라인 포럼 전까지 SBS 사이트를 통해 작품 10편을 소개할 예정입니다.

가을 추수를 끝낸 논밭에 우주선이 내려앉았다. 처음 맞이한 외계인의 존재에 인류는 난리가 났지만, 그들은 단지 휴가 중이었다.

[지구 기준으로 일주일만 머물다 가겠습니다.]

엄청난 과학력을 가진 외계인이 어설픈 작전을 펼칠 리도 없으니, 정부의 태도는 경계보다는 교류였다. 정부에서 당장 그들을 청와대로 초청했고, 그들은 이틀 만에 우주선을 청와대 앞으로 옮겼다. 한데, 대통령과의 만찬을 앞두고 외계인 측이 노발대발 화를 냈다.

[이런 절도범을 봤나!]

외계인들은 한 남자를 현장검거 했다.

[저희 우주선은 360도 모든 상황을 CCTV처럼 촬영합니다. 무단침입과 엠블럼을 뜯어간 절도죄까지 모든 죄가 명백합니다! 즉결심판하겠습니다. 징역 3년입니다!]

인류는 당황했다. 정부 관계자는 무례를 범해서 죄송하다며, 당장 그 남자를 교도소로 보내겠다고 했다. 하지만 외계인이 말한 즉결심판이란, 본인들이 내리는 것이었다.

구경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외계인이 그 남자에게 광선총을 쐈다.

"헉!"

구경하던 모두가 깜짝 놀랐지만, 피가 튀진 않았다. SF 영화처럼 소멸하는 일도 없었고, 남자는 그대로였다. 단 하나, 한쪽 귓불에 별 모양 반점이 생겼을 뿐이다. 외계인이 무엇을 한 것일까? 그들의 판결문은 이러했다.

[무단침입과 절도죄로 현장 검거, 징역 3년입니다. 당신은 앞으로 3년간 정의로워질 겁니다.]

"???"

정부 관계자가 상황을 묻자, 외계인이 친절하게 대답해주었다.

[교도소요? 아하! 저희 별에는 교도소란 게 없습니다. 저희 별에서의 징역은 정의형입니다. 죄의 경중에 따라 몇 년에서 무기징역까지, 강제로 정의로워지죠. 네네, 저희 별의 교화 방식은 그렇습니다.]

효과는 바로 알 수 있었다. 절도범 남자는 정의로움에 치를 떨며 자책했다.

"죄송합니다! 해선 안 될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앞으로는 정직하게 살겠습니다! 그리고, 알려드릴 게 있습니다. 저는 A 기업의 의뢰를 받고 행동한 것입니다. 그들은 외계인의 물건을 어떻게든 확보하기 위해 저를 사주하였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고 했습니다."

절도범 남자의 고발로 A 기업의 관계자들도 정의 광선을 맞았다. 정의로워진 관계자들은 본인의 모든 죄와 알고 있던 자사의 비리를 모조리 자백했다. 물론 거기까지는 외계인의 처벌범위가 아니었지만, A기업은 대대적인 경찰 수사를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작은 절도를 시도했던 A 기업은 졸지에 회사가 다 뒤집어져 버렸다.

이 사건은 인류에게 큰 충격이었다.

"정말로 선진 시스템입니다! 완벽한 교화에다가 범죄의 뿌리까지 뽑을 수 있다니! 인류의 교도소 시스템이 부끄러울 정도입니다. 만약 저런 시스템이 가능하다면 교도소 내 인권 문제, 교도소 운영유지비 문제, 노동 인구 손실 문제까지 모조리 해결될 겁니다!"

사람들의 호응에 외계인이 화답했다.

[원하신다면 '정의의 구'를 하나 드리죠. 광선을 쏘아내는 총 제작이야 인류의 기술로도 충분할 테니까, 원천인 정의의 구만 있으면 대량생산이 가능할 겁니다.]

외계인은 정의의 구를 선물로 남기고 지구를 떠났다. 사용은 인류의 선택이었지만, 이미 여론은 대세 흐름을 탔다. 이 선진 시스템을 우리도 적용하자는 외침이 많았다.

"우리의 이 구닥다리 징역 시스템을 당장 고칩시다! 모든 형을 정의형으로 바꾸고, 교도소를 없애버립시다!"

물론 반대 의견도 많았다.

"징역이 사라지면 범죄자들이 죄를 짓고도 멀쩡히 돌아다닌다는 건데, 그럼 피해자들의 분노는 누가 달래줍니까?! 교도소는 사회격리라는 징벌적 요소도 있는 겁니다!"

"아무리 정의가 좋다지만, 사람의 인성을 강제로 바꾸는 게 오히려 더 인권침해 아닙니까? 강제로 정신을 조작하다니, 너무 끔찍합니다!"

그러나 대세를 이길 순 없었다.

"교도소의 목적은 징벌이 아니라 교화 및 갱생입니다! 교화를 통해 재범을 막는 게 가장 큰 목적이란 말입니다. 징역을 살고 나온 범죄자들의 재범률이 얼마나 높은지 아십니까? 그들이 만약 정의로워진다면 재범은 사라질 겁니다. 게다가 그들을 향한 사회의 시선도 지금과는 완전히 달라져, 그들이 자포자기하지 않고 제대로 된 인생을 살 수 있게 해줄 겁니다. 교도소는 정말 문제점이 많은 시설입니다. 유지관리비의 문제는 둘째치고, 교도소가 오히려 범죄자를 만드는 소굴이 될 수 있습니다. 교도소가 왜 학교라 불립니까? 범죄자들끼리 인맥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범죄자를 몰아넣으면 결국 더한 범죄의 연쇄가 일어날 뿐입니다."

"사람의 인성을 강제로 바꾸는 건 끔찍하다고 할 수 있죠.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처벌이라는 측면으로, 징역과 교환비가 맞는 것 아닙니까?"

흐름에 휩쓸린 국가 하나가 정의형을 시행했다.

가장 먼저, 교도소 해체라는 상징성을 위해 모든 교도소의 범죄자들이 정의 광선을 맞고 풀려났다. 효과는 놀라웠다. 자신의 들키지 않은 죄를 자백해서 형량을 늘리는 경우도 있었고, 알고 있는 범죄를 신고하여 처벌받지 못한 죄인들을 줄줄이 엮어내기도 했다. 게다가 뜻밖의 효과도 있었는데, '정의로워진 이가 법적으로 거짓말을 할 리 없다'는 사실 때문에 억울하게 누명을 쓴 이들의 무죄가 드러난 것이다. 인류가 꿈에 그리던, 무고한 피해자가 없는 법이 가능해졌다.

사람들의 호응을 일으킨 건 이런 것들만이 아니었다. 사회로 풀려난 재소자들의 정의로움이 무척 만족스러웠다. 정의를 위해 나서는 이가 없는 삭막한 요즘 세상에서, 그들의 존재는 귀했다.

누군가 길에 쓰레기를 버릴 때 버럭할 수 있는 사람, 무단 횡단을 야단칠 수 있는 사람, 지하철 성추행범을 제압하고 증언해줄 수 있는 사람, 담배 피우는 학생을 계도할 수 있는 사람, 그들이 바로 재소자들이었다. 심지어 그들의 험악한 인상 덕분에 효과도 탁월했다. 또한 그들은 가장 믿을 수 있는 직원이다. 사장이 돈 통을 맡기고 자리를 떠날 수 있는 직원 말이다. 예전에는 교도소 출신의 취업이 힘들었다면, 지금은 정말 쉬웠다. 취업이 힘들어 다시 범죄의 유혹에 넘어가던 악순환이 사라지며 진정한 갱생이 이루어졌다.

교도소의 성공적인 해체를 시작으로 모든 범죄의 징역이 정의형으로 대체되었다. 그즈음 정의 광선을 통한 연쇄 고발 효과는 기득권의 중심부까지 뻗어갔다. 유명 대기업의 회장과 정치인까지 정의광선을 맞게 되자, 엄청난 부정부패와 비리들이 드러났다. 국민들은 상상도 못 했을 정도로 충격적인 내용이었지만, 그래도 앞으로는 사라질 것들이라며 달랬다. 물론, 분노한 국민들은 부당한 모든 기득권이 정의광선을 피하지 못하게 요구하고 압박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도 통하지 않았다. 뇌물을 받았던 이들도 모조리 폭로 당하는 중이다. 정의형 하나를 도입하는 것만으로 국가가 진통했다. 지금은 아프지만, 크게 성장할 수 있는 개혁통 말이다.

이렇듯 좋은 효과만 있을 것 같은 정의형의 단점은 명확했다. 피해자의 분노다.

"음주운전으로 내 아들을 죽인 저 새끼가 멀쩡히 돌아다니는 게 말이나 됩니까?! 호프집에서 술을 마시고,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고!"

"날 추행한 그 자식이 지금 식당에서 고기를 구워 먹고 있다고요!"

"학교폭력으로 한쪽 시력을 잃었죠. 정의로워진 그놈의 사과가 진심이라는 건 알지만, 이렇게 용서하고 싶지 않다고요! 그놈도 나만큼 괴로웠으면 좋겠다고요!"

범죄 피해자들은 징벌이 없는 법을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피해 당사자가 아닌 대다수는 정의형을 옹호했다.

"엄벌주의는 구시대적인 방식입니다. 세계적으로 엄벌주의 국가보다 교화주의 국가의 재범률이 말도 안 되게 낮습니다."

"모면하기 위한 거짓말이 아니라 진짜로 반성하고 있지 않습니까? 심정은 이해하지만,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고수하면 세상에는 장님만 남습니다."

"범죄자에게도 인권은 있습니다. 인간이 인간의 신체를 구속할 권리는 없습니다."

"이 험한 세상에서 정의롭게 살아야 한다는 것도 어쩌면 처벌이지 않겠습니까?"

학자들은 사람들이 정의형을 옹호하는 가장 큰 이유로, 그만큼 사람들이 정의에 목말라있었음을 들었다.

"돈 많다고 처벌을 피해가지 않고, 내부신고자가 불안해할 필요 없고, 정의를 말했을 때 '너 잘났어' , '병신' 소리 듣지 않는 세상. 그것을 원하는 겁니다."

사람들이 바라던 대로 정의가 범람했다. 대량 양산된 정의총의 사용이 가벼웠기 때문에 더 그랬다.

"글쎄요. 혐의를 부인하고 계시는데, 아니라면 정의총이 증명해줄 겁니다. 복잡하게 경찰서 왔다 갔다 하시는 것보다 현장에서 그렇게 하시는 게 가장 간단하지 않겠습니까? 형량 1일짜리로 쏴드리겠습니다."

그러면 대부분의 사람은 수긍할 수밖에 없으니, 범죄자 검거와 처벌이 거의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정의형 인간이 늘어날수록 극단적으로 범죄율이 낮아졌다. 결과가 말을 해주니, 사람들은 정의형과 복역자들을 대환영했다. 다만, 시간이 지날수록 드러날 수밖에 없는 문제점이 하나 있었다.

"김군아, 너 정의형 징역이 얼마나 남았지? 정의 효과가 끝난 뒤에도 널 계속 써야 할지가...글쎄다."

"오빠. 오빠가 좋은 사람인 건 알지만, 오빠 정의형이 끝나면 솔직히 내 마음이 어떨지 모르겠어."

어딜 가나 환영받던 복역자들의 유일한 단점은 바로, 징역 만기였다. 지금이야 정의총 효과로 100% 믿을 수 있지만, 징역이 만기 되면 다시 범죄자의 인성으로 돌아갈 것이 아닌가?

실제로 정의형 복역자들이 만기를 겪고 다시 범죄를 저지르는 일이 잦았다. 욕망 때문이 아니라,

"제가 평생 살면서 그런 믿음과 대우를 받아본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다시 정의형을 당해야만 합니다!"

"도둑질을 해서 죄송합니다. 근데 여자친구가 이러지 않으면 헤어지겠다고 해서...그래선 안 됐는데 참 죄송합니다."

이렇다 보니 만기가 만기가 아닌 상황이 많았다. 만성적인 정의형 복역자들이 늘어나자, 일반인들의 처지가 우스워졌다.

"아오! 정의형 복역자한테 밀려서 면접을 몇 번이나 떨어지는 거야?!"

"미안하네만, 그 직책은 역시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맡겨야하지 않겠나?"

"네 남자친구 또 나이트 갔다가 걸렸다며? 남자친구 감으로는 정의형 복역자가 최고야. 절대 바람 안 피우고, 도박 같은 허튼짓도 안 한다니까?"

"아유~ 201호네 아들은 어린 나이에 정의형 복역 중이라네요 글쎄. 술 담배도 안 하고 어찌나 부모님 말씀을 잘 듣는지~ "

정의형 복역은 가장 훌륭한 스펙이었고, 일부러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이 생겼다. 또 양산된 정의총이 암암리에 돌아다니기 시작하자, 아예 죄 없이 정의총을 맞는 방법도 생겼다.

"정의총 불법 사용의 죄로 정의형 처벌을 받으면 되는 것 아닌가?"

눈 가리고 아웅 식이었지만, 정의형 복역자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몇 년이 지났을 때, 전 국민의 대다수가 정의형 복역자가 되어 있었다. 그 나라는 세상에서 가장 부정부패가 없었고, 가장 범죄가 없었고, 가장 치안이 좋았고, 가장 자살률이 낮았고, 가장 관광객이 많이 왔고, 가장 거리가 깨끗했고, 가장 국민 만족도가 높았고, 가장…

이 나라에서 소수의 누군가들에게는 너무나도 큰 의문이 하나 있었다.

"사람의 본성을 강제로 조절하다니 정말 끔찍한 나라다. 궁금한 것은, 그런데 왜 이 정의로운 사람들이 이 정의롭지 않은 사태에는 반응하지 않는가? 외계인이 애초에 그렇게 만든 것인가, 내가 틀린 것인가."

웹소설 정의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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