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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종료 일주일 후 돌연 1등?…'콩쿠르' 병역특례 실태

<앵커>

공정, 바로 공평하고 올바르다는 뜻입니다. 오늘(23일) 저희는 이 공정이라는 단어가 지금 우리 사회에 얼마나 시급하고 또 절실한지를 짚어보려고 합니다. 특히 가뜩이나 힘든 우리 젊은이들을 더 힘 빠지게 만드는 병역과 취업 과정에서의 공정하지 못한 사례들을 차례대로 전해드리겠습니다. 먼저 어제에 이어서 국제 무용 콩쿠르에서 상을 받아 병역 특례를 받은 한 사람의 이야기부터 해보겠습니다.

박재현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34년 전통의 헬싱키 국제 발레 콩쿠르.

4년마다 개최되는 이 콩쿠르는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데 역시 상위 입상한 2명까지 국내에서 병역 특례를 받습니다.

2016년 이 대회 남성 무용수 부문에서는 1등 없이 2, 3등만 선정됐습니다.

그런데 콩쿠르가 다 끝나고 1주일이 지난 시점에 대회 주최 측이 홈페이지에 공지를 올리고 한국무용협회에 메일 한 통을 보냈습니다.

남성 무용수 부문에서 떨어진 B 씨가 1등이 됐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두 사람이 함께 공연하는 '파드되'에서 1등을 했다는 건데, 파드되는 결선 진출자를 뽑기 위한 예선 과정의 종목이었습니다.

[前 무용과 교수 : 원칙적으로 따지면 그때 상황으로 보면 안 되는 거예요. 그 룰로 보면 안 되는 건데, 뒤에 만들어서 한 건 맞는 거죠. 원칙적으로 따지면 문제의 소지가 충분히 있죠.]

B 씨에게 전달된 상장에는 심사위원 7명 전원의 서명이 담긴 다른 상장과는 달리 심사위원장의 서명만 있었습니다.

[다른 무용수 : 순위가 바뀔 수 있다는 게 사실 말이 안 돼요. 국제콩쿠르 인터네셔널인데 어떻게 이렇게 결과가 나올 수 있을까. 이 주도권을 가질 수 있는 권력 있는 사람이 과연 누굴까.]

오늘 국감에서는 B 씨가 증인으로 출석했습니다.

[하태경 의원/국회 국방위 (바른미래당) : 1등은 8천 유로 상금이라고 돼 있더라고요. 본인은 상금 얼마 받았어요?]

[B 씨 : 1천 유로 받았습니다.]

1천 유로는 1등의 8분의 1, 번외 장려상과 같은 수준이었습니다.

당시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 측에 질의서를 보냈는데 주최 측은 "B 씨가 1등이 맞고, 심사 과정은 심사위원장의 판단이라 알 수 없다"는 형식적인 답을 보내왔습니다.

탄츠 콩쿠르 사건 때 만들어진 문체부는 국제 대회 심사 결과를 검증할 권한이 없다는 판례 때문에 문체부는 더는 조사하지 못했고 B 씨는 병역 특례를 받았습니다.

(영상편집 : 우기정, VJ : 김종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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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이 내용 취재한 박재현 기자 나와 있습니다.

박 기자, 먼저 일단 대회가 다 끝난 다음에 갑자기 1등으로 된다는 게 세계 유명 콩쿠르에서 가능한 일인지 이 부분이 가장 이해가 안 돼요. 어떻게 이게 가능한가요.

<기자>

짬짜미가 있었던 거 아닌가 싶습니다.

한국 남성 무용수에게 병역 특례를 받을 수 있도록 뒤를 봐주고, 또 그걸 알아도 모른 체 하고 있다는 게 제가 만난 무용계 인사들의 전언입니다.

<앵커>

서로 다 알면서도 병역 특례를 위해 쉬쉬했다는 건데, 그러면 정말 이렇게 은밀한 관행이 있는 건지 박재현 기자가 직접 무용계 사람들을 만나서 취재한 내용을 보고 다시 이야기 이어가겠습니다.

<기자>

한국 남성 무용수가 콩쿠르에서 1, 2위에 입상하면 병역 면제를 받는다는 사실은 외국 무용계 인사들에게도 알려져 있다고 합니다.

때문에 부탁을 하면 들어준다고 한 무용계 인사는 증언합니다.

[무용계 인사 : '나(외국 심사위원)한테 피해 안 주잖아. 그리고 너희 코리안이 나 초대하잖아 한국에. 그럼 나 한번 초대할 때마다 1천만 원 벌어서 갈 수 있는 거니까. 없을 순 없지 내 제자면 내가 이끌어줘야….']

국내에서 개최된 콩쿠르에서 돈을 주면 1등을 시켜주겠다는 제안을 받았다는 증언도 있습니다.

[무용과 학생 : 그날 밤에 저희 선생님이 오셔서 '돈 주면 상 탈 수 있다' 그렇게 심사위원한테 연락이 왔대요. '1등 받기로 한 애가 갑자기 연락이 안 돼서 이렇게 됐다.']

하지만 무용계 인사 대부분은 취재진과 접촉하는 걸 극도로 경계했습니다.

한 다리 건너면 누군지 아는 게 무용계 현실이라서 의혹이나 문제 제기를 한 게 알려지면 불이익을 받게 될 거기 때문에 입을 닫게 된다는 겁니다.

[무용수 : (폭로하면) 왕따 당할 걸요. (무용계 일에) 아예 끼워주지도 말라고 그럴걸요. 돈을 못 버니까, 밥을 못 먹고 사니까.]

이런 태도는 외국 인사라고 다르지 않았습니다.

2014년 탄츠 콩쿠르에서 "1등을 심사하지 않았다"고 털어놨던 심사위원조차 SBS가 보낸 질의서에 "도울 수 없다"고 답했습니다.

[前 콩쿠르 심사위원 : 스캔들이 돼버리면 자기네들 초청 다시 안 할까 봐서… 우리 발레도 (심사위원) 풀이 딱 있습니다. 아마 대답 안 해줄 겁니다.]

짬짜미와 침묵의 고리가 끊기지 않으면 병역 특례에 대한 의혹과 불신은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영상편집 : 최진화, VJ : 김종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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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Q. '예술계 병역 특례' 규모는?

[박재현 기자 : 네, 예술계 병역특례는 무용과 클래식 음악, 국악 분야에서 국제대회 수상을 하면 사실상 병역 면제 혜택을 주는 겁니다. 그런데 잘 알려진 체육 분야와는 달리 예술 분야는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받고, 어떤 규모로 어떻게 혜택을 받게 되는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체육에서 병역특례를 받으려면 올림픽 3위 이상, 아시안게임 1위를 수상해야 하는데, 예술 분야는 유네스코에 등재된 48개 콩쿠르에서 2등 이상을 받으면 됩니다. 그래서 이번 아시안게임은 아직 병무청에서 확정이 안 돼서 빼고 세보면 2015년부터 올해 7월 말까지 체육에서 병역특례를 받은 사람은 총 18명입니다. 그런데 예술 분야는 그것의 4배 정도 되는 75명이나 됩니다. 그중에서도 무용 분야가 37명, 절반가량 됩니다.]

Q. '예술계 병역 특례' 공정성 확보하려면?

[박재현 기자 : 예술 분야 콩쿠르는 대부분 관객 없이 10여 명의 심사위원들만 참여해 순위를 결정하게 되는데 아무래도 '예술성'이라는 게 주관적인 영역이다 보니까 공정성 시비가 많이 발생합니다. 그렇다 해도 적어도 어제오늘 저희가 보도한 사례들은 아주 심각한 사례들인데요, 한국 정부가 적정성을 검증할 권한이 없다는 게 가장 큰 제도적인 허점입니다. 오늘 병무청 국감에서 저희가 보도한 사례들에 대해서 정부가 진상 조사를 하기로 했는데, 이런 과정을 통해서 대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어떤 제도적인 보완책을 찾을 수 있을지 모색해 봐야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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