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참전 노병, 당신들을 잊지 않겠습니다

김태훈 국방전문기자 oneway@sbs.co.kr

작성 2018.10.21 10:07 수정 2018.10.21 10:38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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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참전 노병, 당신들을 잊지 않겠습니다…미 육군협회 AUSA의 지상무기 전시회가 지난 10일까지 사흘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렸습니다. 미국 최대의 지상무기 전시회입니다. 몇몇 한국 방위산업체들도 참가해서 국산 무기 판매에 힘을 쏟았습니다.

미국 육군뿐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 육군의 무기 도입 책임자들이 방문하는 자리이니 방위산업체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수출 기회였습니다. 그런데 한화는 자사의 부스 벽면에 K-9 자주포도 '비호 복합'(표적거리에 따라 포와 유도탄을 선택해 발사할 수 있는 복합대공화기)도 아닌 노인들의 사진을 걸었습니다. 미군들의 현재 모습을 찍은 사진입니다. 사진은 정성껏 액자에 담아 노병들에게 전달했습니다.

미 육군의 마음을 움직여 국산 무기를 팔려는 마케팅적 의도가 없다고는 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사진 속 한국전 참전 노병들의 표정에서는 자긍심, 행복, 감사함이 물씬 묻어났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그분들을 알았고 경의를 표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한국전 참전 노병 존 패트릭 베이커 씨존 패트릭 베이커 씨입니다. 대한민국을 지켜냈다는 데 자부심을 느낀다며 한국전 때 입었던 군복을 지금까지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습니다. 사진도 그 군복을 입고 찍었습니다. 포병으로 참전했는데 포를 얼마나 많이 쐈던지 전쟁 이후에 청력을 잃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근 50년 만에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사진을 촬영한 현효제 사진작가에게 "옛날에는 한강에 다리가 하나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다리도 빌딩도 많아졌다", "대한민국을 다시 보니 내 역할이 비록 작았지만 그럼에도 스스로 자랑스럽다", "이렇게 사진을 찍어주니 영웅이 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전 참전 노병 살바토레 스칼라토 씨예비역 대령 윌리엄 웨버 씨입니다. 눈빛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공수부대 중대장으로 한국전에 참전했습니다. 그때 전투 중에 다친 오른팔과 오른쪽 다리는 절단했습니다. 웨버 씨는 "아주 추운 겨울에 부상을 당해서 출혈이 천천히 됐으니 망정이지 목숨을 잃을 뻔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팔과 다리를 잃었지만 재활 치료를 받고 다시 원직으로 복귀한 불굴의 군인입니다. 미군 역사상 남북 전쟁 이후 최초의 기록입니다. 워싱턴 포토맥 공원에 조성된 한국전 참전 기념공원에는 웨버 대령의 정신을 기려 그를 모티브로 한 조형물이 있습니다.
한국전 참전 노병 살바토레 스칼라토 씨살바토레 스칼라토 씨입니다. 미 해병대 출신입니다. 사진작가에게 뜻밖에도 오래된 태극기를 펼쳐 보여줬습니다. 함께 전투한 한국인 해병대 전우들로부터 헤어질 때 고맙다며 선물로 받았습니다. 빛바랜 태극기에는 한국 해병들이 고이 적은 몇 자의 글도 보입니다. 한미 해병대의 굳건한 우정을 상징하는 태극기입니다.
한국전 참전 노병 살바토레 스칼라토 씨살바토레 씨도 보훈처 초청을 받아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보훈처 주관 행사에서 한국의 해병대 노병들과 억세게 악수를 하는데 그 장면을 어떤 여고생이 촬영을 하더랍니다. 그 일을 까맣게 잊고 뉴욕 집으로 돌아갔는데 그 여고생이 살바토레 씨와 한국 노병들의 재회를 테마로 그린 멋진 그림 한 장이 배달됐습니다. 굳게 잡은 두 손… 그는 "나를 단순히 한 명의 미국인이 아니라 미국을 대표하는 상징으로 표현했다", "그림을 보면 한국전에 참전한 미군들에게 보내는 진심 어린 감사와 한미동맹의 우정을 진하게 느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화는 이번 AUSA 엑스포를 맞아 한국전 참전 노병 100명의 사진을 촬영해서 액자에 담아 노병들에게 일일이 전달했습니다. 180만 명에 달하는 한국전 참전 미군을 기억하겠다는 뜻으로 이 프로젝트를 '리멤버 180'이라고 명명했습니다. 노병들 사진을 찍는 현효제 작가를 지원해서 앞으로도 꾸준히 미국 각지의 노병들을 사진에 담을 계획이라고 합니다. 고마운 일이고, 고마운 노병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