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사태는 역설적으로 공정위가 그만큼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음을 새삼 보여줬다. '경제 검찰', '재계의 저승사자'라는 별칭에 걸맞게 공정위는 기업 규제에 관한 한 독보적인 권한을 행사해왔다. 공정위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등 12개 법률에 근거해 고발·과징금·시정명령 등 다양한 제재를 기업에 가할 수 있다. 특히 공정위가 기업으로부터 거둔 과징금은 지난해 정부의 전체 과징금 수입 1조 3,440억 원 가운데 86%에 해당할 정도로 비중이 크다. 과징금이 공정위의 대표적인 '칼'로 인식되는 이유다.
SBS 데이터저널리즘팀 [마부작침]은 공정위의 대표 제재수단인 과징금에 주목했다. 지난 2004년 이후 최근까지 공정위가 전원회의에서 의결한, 경제적 파급효과가 큰 사건 의결서 438건을 전수 분석했다. 어느 기업이, 어떤 위반행위로, 얼마의 과징금을, 얼마나 자주 부과 받았는지, 이들의 대리인은 누구인지, 그리고 이런 결정을 내린 공정위원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분석했다. 무엇보다 공정위의 '과징금 할인'이 어떤 절차를 통해 이뤄지는지도 알아봤다. [마부작침]은 공정위가 과징금을, 기관 이름처럼 공정(公正)하게 부과하고 있는지 따져봤다. 특히 '과징금 결정'이라는 공정(公定)이 어떤 문제를 내포하고 있는지 들여다봤다. 4편의 기사를 통해 묻는다. '공정'이란 무엇인가?
● 공정위 과징금, 한 마디로 '반값'
지난 2004년 4월, 공정위는 '과징금 산정의 객관성과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에 따라 과징금 부과 체계를 전면 개편했다. 위반행위에 대한 관련매출액 등을 기준으로 삼아 ① 기본과징금(최초 산정기준)을 정하고, ② 1차로 위반행위의 기간, 횟수에 따라 과징금 규모를 조정하며, ③ 2차로 고의나 과실 등 행위적 요소 등에 따라 과징금 규모를 또 조정하고, ④ 마지막 3차로 현실적 부담능력 등을 감안해 최종 부과과징금을 결정하기로 바꾼 것이다. 기본과징금을 산정한 뒤 모두 3번의 조정을 거치는 이 체계는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 14년 간 과징금 총액 8조 5,166억 원…'53.1% 할인'의 비밀
현행 과징금 부과체계가 마련된 2004년 4월 1일 이후 2018년 6월까지 공정위가 전원회의에서 부과한 과징금 총액은 모두 8조 5,166억 원이다. (※ 438개 의결서, 의결일 기준)
과징금 계산의 기준인 기준액에는 관련매출액, 위반액(지원액), 예산액 등이 있다. 관련매출액은 해당 기업 등이 부당한 공동행위나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행위, 불공정 거래행위 등 위반행위를 저질렀을 때 그로 인해 영향을 받은 매출액을 말한다. 부당한 공동행위(담합)로 특정상품 가격을 여러 기업이 동시에 같은 금액만큼 올렸다면 해당 기간 이 상품의 매출액이 관련매출액으로 계산되는 식이다. 위반행위가 입찰이나 계약과 관련되면 계약금액이 기준이 된다. 부당하게 계열사 채무보증을 지원하거나, 순환출자 등 위반 금액이 특정될 때는 위반액(지원액), 사업자단체가 금지행위를 했을 때는 예산액이 기준액이 된다. 그렇다면 14년 간 과징금 기준액은 얼마였을까? 630조 3,839억 원인 것으로 집계됐다.
좀 더 알기 쉽게 말하자면, 14년 간 적발된 위반행위와 관련해 기업들이 부당하게 올린 매출의 합계를 630조 원으로 보면 된다는 얘기다. 공정위의 부과과징금은 위반행위로 인한 부당이득을 환수한다는 의미가 있는데, 이 기준액 모두를 부당이득이라고만 볼 수 없기 때문에 각 위반행위에 따라 부과기준율을 정해뒀다. 가장 부과기준율이 높은 '부당한 공동행위'(담합)의 경우, 다시 중대성 정도에 따라 나눴을 때 '매우 중대한 위반행위'에 해당하면 최대 10%가 부과기준율이다. 즉, 기준액의 10%까지를 과징금으로 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일괄 10%로 과징금을 산정했다면 630조 원의 10%인 63조 원이 기본과징금이 됐을 거란 얘기다. 하지만, 실제론 이보다 훨씬 적은 비율이 적용됐고, 따라서 과징금 부과체계의 첫 단계, 기본과징금(최초 산정기준)의 14년간 총액은 18조 1,586억 원으로 나타났다. 기준액의 2.9%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위에서 살펴봤듯 위반횟수와 기간을 따져 1차 조정한다. 1차 조정 결과의 14년 총액은 18조 5,716억 원, 앞 단계보다 4,130억 원 늘어났다. 다음은 2차 조정, 위반행위를 주도했거나 공정위 조사를 거부, 방해했거나, 고위 임원이 관여했거나, 같은 위반행위를 또 했거나 하면 과징금을 가액하고, 합의만 하고 실행하지 않았거나 단순 가담만 했거나 조사에 적극 협력했거나 자진 시정했거나 하면 반대로 감액한다. 그렇게 2차 조정 이후 총액은 15조 9,799억 원이다.
마지막 단계, 3차 조정은 어떨까. "위반사업자의 재정 사정, 현실적 부담능력, 위반행위에 시장에 미치는 효과, 위반행위로 취득한 이익의 규모 등에 비해 과징금이 과중할 경우 50%까지 감액하고, 상황에 따라서는 면제까지 가능하다"고 과징금 기준 고시는 규정하고 있다. 그래서 최종 부과과징금의 합계는 얼마일까? 8조 5,166억 원이다. 바로 앞 단계, 2차 조정 결과보다 무려 7조 4,633억 원이 줄어들었다. 기준액의 고작 1.4%에 불과하다. 처음 산정된 기본과징금과 비교하는 게 중요한데, 기본과징금에서 무려 53.1%가 할인됐다. 그래서 '반값 과징금'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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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나라의 과징금 부과율과 비교하면…
우리나라 공정위의 실제 과징금 부과율은 위에서 살펴봤듯 기준액의 1.4%에 불과하다. 외국의 사례는 담합, 독점에 대한 과징금이므로 공정한 비교를 위해 공정위 과징금 또한 부당한 공동행위(담합)에 부과된 것만 추려내봤다. 기준액 415조 1,690억 원, 기본과징금(최초 산정기준) 15조 2,133억 원, 부과과징금 6조 6,595억 원으로 부당한 공동행위에 대한 기본과징금 대비 실제 과징금 부과율은 1.6%인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EU 등과 비교하면 10분의 1 수준이다.
● 건설업계 사상 최대 과징금이라던 '호남 고속철 담합'
"3조 원대 국책사업 담합 적발" "건설업계 사상 최대 과징금"이라고 했지만...
공정위는 지난 2014년 주요 건설사 대부분이 가담한 3조 5,980억 원 규모의 담합을 적발했다. 호남 고속철도, KTX 건설공사 입찰에 건설사들이 함께 짜고 가격을 정해 나눠먹기 했다는 게 주된 내용이었다. 28개 건설사가 적발됐는데 총 4,355억 원의 '과징금 폭탄'이 부과됐다. (※ 13개 공구 입찰과 3개 공구 및 기지 공사 입찰 합계임.) 당시 건설업계에 부과된 과징금으로는 사상 최대였고, 공정위 출범 이래 두 번째로 큰 규모의 과징금이었다고 공정위는 설명했다.
이때 과징금을 부과 받았던 한 건설사의 사례를 추적해 보자. 한진중공업의 최종 부과 과징금은 206억 원이었다. (13개 공구 입찰 기준) 한진은 13개 공구 입찰에 참여해 1개는 자신의 몫으로 낙찰받았고, 12개에선 다른 건설사 낙찰에 '들러리'로 참여했다. 건설사들은 이렇게 공구별로 낙찰될 업체를 나눠먹듯이 정했고, 입찰이 무산되지 않도록 들러리 참여까지 미리 합의했다. 공정위는 한진의 경우 과징금 부과의 기준이 되는 관련 매출액(입찰의 경우 계약금액)이 2조 2,652억 원, 기준 고시에 따라 기본과징금(최초 산정기준)을 857억 원으로 계산했다.
7개 건설사는 기업회생절차 등을 이유로 과징금 전액을 면제받았고, 한진을 포함한 21개 건설사는 관련매출액을 기준으로 처음 산정한 과징금과 비교해 평균 71.4%를 할인받았다. 그럼에도 건설사들은 과징금 처분이 부당하다며 불복 소송을 냈고, 대법원은 공정위의 손을 들어줬다.
● 거듭된 지적에 개선하고 있다지만…
과징금 산정 절차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은 시민단체뿐만 아니라 정부기관에서도 여러 차례 나왔다. 2012년 국민권익위원회는 "감경 사유와 감경 사유별 감경률의 적정성과 타당성에 관해 전반적으로 재검토"할 것을 권고했다. 2013년 국정감사에서는 "기업 과징금 중 거의 절반을 감경해주는 등 과징금 부과기준 관련 규정의 자의적 해석 여지가 많도록 규정"돼 있다며 "경제여건과 재무상태 등을 고려한 감경을 과감하게 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감사원은 올해, 2018년에도 감사보고서를 내고 "반복해서 법을 위반하는 자에게 과징금을 감면하는 것은 부적정"하다며 개선을 권고했다. 구체적인 규정이 없어 집행도 일관되지 않다는 지적이었다. 2010년 이후로도 수 차례 거듭된 기관들의 공통된 지적은,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 과정이 구체적인 근거에 기반해 더 합리적, 객관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재량의 범위가 과도하게 크다는 말이기도 하다.
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김학휘 기자 (hwi@sbs.co.kr)
안혜민 기자·분석가(hyeminan@sbs.co.kr)
김그리나 디자이너·개발자(greena@sbs.co.kr)
인턴 : 윤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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