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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부작침] '공정'이란 무엇인가 ① - 백화점도 할인매장도 아닌데 '53% 폭탄세일

'공정위 과징금의 공정(公正)을 묻다

[마부작침] '공정'이란 무엇인가 ① - 백화점도 할인매장도 아닌데 '53% 폭탄세일
전직 위원장 3명, 전·현직 부위원장 3명, 전직 사무처장 등 6명. 지난 8월 16일, 검찰이 공정거래위원회 전·현직 고위 간부 12명을 기소했다. 이들은 곧 퇴직할 공정위 간부들을 채용하라고 대기업 등에 압력을 행사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정재찬 전 위원장 등 11명은 업무방해, 지철호 현 부위원장은 공직자윤리법 위반 혐의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의 압력을 받은 기업 16곳이 공정위 퇴직자 18명을 임원 대우로 채용했으며, 많게는 연봉 3억 5천만 원 등 모두 76억 원을 공정위 퇴직자들에게 임금으로 지급했다. 지난 1996년, 기업으로부터 수천만 원을 받아 챙긴 혐의로 국장 2명이 구속된 적이 있었고, 지난 2003년 이남기 전 공정위원장이, 자신이 다니던 사찰에 10억 원을 기부하도록 대기업에 강요한 혐의로 기소된 일이 있었지만, 전·현직 간부 12명이 무더기로 재판정에 서게 된 건, 공정위 38년 역사상 초유의 일이다. (이남기 전 위원장은 2006년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돼 징역 2년 6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이번 사태는 역설적으로 공정위가 그만큼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음을 새삼 보여줬다. '경제 검찰', '재계의 저승사자'라는 별칭에 걸맞게 공정위는 기업 규제에 관한 한 독보적인 권한을 행사해왔다. 공정위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등 12개 법률에 근거해 고발·과징금·시정명령 등 다양한 제재를 기업에 가할 수 있다. 특히 공정위가 기업으로부터 거둔 과징금은 지난해 정부의 전체 과징금 수입 1조 3,440억 원 가운데 86%에 해당할 정도로 비중이 크다. 과징금이 공정위의 대표적인 '칼'로 인식되는 이유다.

SBS 데이터저널리즘팀 [마부작침]은 공정위의 대표 제재수단인 과징금에 주목했다. 지난 2004년 이후 최근까지 공정위가 전원회의에서 의결한, 경제적 파급효과가 큰 사건 의결서 438건을 전수 분석했다. 어느 기업이, 어떤 위반행위로, 얼마의 과징금을, 얼마나 자주 부과 받았는지, 이들의 대리인은 누구인지, 그리고 이런 결정을 내린 공정위원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분석했다. 무엇보다 공정위의 '과징금 할인'이 어떤 절차를 통해 이뤄지는지도 알아봤다. [마부작침]은 공정위가 과징금을, 기관 이름처럼 공정(公正)하게 부과하고 있는지 따져봤다. 특히 '과징금 결정'이라는 공정(公定)이 어떤 문제를 내포하고 있는지 들여다봤다. 4편의 기사를 통해 묻는다. '공정'이란 무엇인가?

● 공정위 과징금, 한 마디로 '반값'

지난 2004년 4월, 공정위는 '과징금 산정의 객관성과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에 따라 과징금 부과 체계를 전면 개편했다. 위반행위에 대한 관련매출액 등을 기준으로 삼아 ① 기본과징금(최초 산정기준)을 정하고, ② 1차로 위반행위의 기간, 횟수에 따라 과징금 규모를 조정하며, ③ 2차로 고의나 과실 등 행위적 요소 등에 따라 과징금 규모를 또 조정하고, ④ 마지막 3차로 현실적 부담능력 등을 감안해 최종 부과과징금을 결정하기로 바꾼 것이다. 기본과징금을 산정한 뒤 모두 3번의 조정을 거치는 이 체계는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마부작침] 공정위
 이런 내역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자료는 공정위 전원회의의 과징금 사건 의결서다. [마부작침]은 전원회의 사건 의결서 465개 모두를 조사했다. 다만, 465개 가운데 27개는 사건 의결서에 1차와 2차 조정 과정이 적혀 있지 않았다. 따라서 현 체제가 수립된 2004년 이후 지난 14년 동안 이뤄진 과징금 조정의 진실을 담은 사건 의결서는 모두 438개다.  [마부작침]은 2004년 4월부터 2018년 6월까지 438개 의결서에 담긴 공정위 과징금의 비밀을 지금 공개한다.

● 14년 간 과징금 총액 8조 5,166억 원…'53.1% 할인'의 비밀

현행 과징금 부과체계가 마련된 2004년 4월 1일 이후 2018년 6월까지 공정위가 전원회의에서 부과한 과징금 총액은 모두 8조 5,166억 원이다. (※ 438개 의결서, 의결일 기준)

과징금 계산의 기준인 기준액에는 관련매출액, 위반액(지원액), 예산액 등이 있다. 관련매출액은 해당 기업 등이 부당한 공동행위나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행위, 불공정 거래행위 등 위반행위를 저질렀을 때 그로 인해 영향을 받은 매출액을 말한다. 부당한 공동행위(담합)로 특정상품 가격을 여러 기업이 동시에 같은 금액만큼 올렸다면 해당 기간 이 상품의 매출액이 관련매출액으로 계산되는 식이다. 위반행위가 입찰이나 계약과 관련되면 계약금액이 기준이 된다. 부당하게 계열사 채무보증을 지원하거나, 순환출자 등 위반 금액이 특정될 때는 위반액(지원액), 사업자단체가 금지행위를 했을 때는 예산액이 기준액이 된다. 그렇다면 14년 간 과징금 기준액은 얼마였을까? 630조 3,839억 원인 것으로 집계됐다.

좀 더 알기 쉽게 말하자면, 14년 간 적발된 위반행위와 관련해 기업들이 부당하게 올린 매출의 합계를 630조 원으로 보면 된다는 얘기다. 공정위의 부과과징금은 위반행위로 인한 부당이득을 환수한다는 의미가 있는데, 이 기준액 모두를 부당이득이라고만 볼 수 없기 때문에 각 위반행위에 따라 부과기준율을 정해뒀다. 가장 부과기준율이 높은 '부당한 공동행위'(담합)의 경우, 다시 중대성 정도에 따라 나눴을 때 '매우 중대한 위반행위'에 해당하면 최대 10%가 부과기준율이다. 즉, 기준액의 10%까지를 과징금으로 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초 기사의 기준액 원 넓이가 실제 비율과 다르게 표현된 오류가 있어서 바로잡습니다.(수정날짜 2019년 4월 1일)

만약 일괄 10%로 과징금을 산정했다면 630조 원의 10%인 63조 원이 기본과징금이 됐을 거란 얘기다. 하지만, 실제론 이보다 훨씬 적은 비율이 적용됐고, 따라서 과징금 부과체계의 첫 단계, 기본과징금(최초 산정기준)의 14년간 총액은 18조 1,586억 원으로 나타났다. 기준액의 2.9%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위에서 살펴봤듯 위반횟수와 기간을 따져 1차 조정한다. 1차 조정 결과의 14년 총액은 18조 5,716억 원, 앞 단계보다 4,130억 원 늘어났다. 다음은 2차 조정, 위반행위를 주도했거나 공정위 조사를 거부, 방해했거나, 고위 임원이 관여했거나, 같은 위반행위를 또 했거나 하면 과징금을 가액하고, 합의만 하고 실행하지 않았거나 단순 가담만 했거나 조사에 적극 협력했거나 자진 시정했거나 하면 반대로 감액한다. 그렇게 2차 조정 이후 총액은 15조 9,799억 원이다.

마지막 단계, 3차 조정은 어떨까. "위반사업자의 재정 사정, 현실적 부담능력, 위반행위에 시장에 미치는 효과, 위반행위로 취득한 이익의 규모 등에 비해 과징금이 과중할 경우 50%까지 감액하고, 상황에 따라서는 면제까지 가능하다"고 과징금 기준 고시는 규정하고 있다. 그래서 최종 부과과징금의 합계는 얼마일까? 8조 5,166억 원이다. 바로 앞 단계, 2차 조정 결과보다 무려 7조 4,633억 원이 줄어들었다. 기준액의 고작 1.4%에 불과하다. 처음 산정된 기본과징금과 비교하는 게 중요한데, 기본과징금에서 무려 53.1%가 할인됐다. 그래서 '반값 과징금'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마부작침] 공정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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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나라의 과징금 부과율과 비교하면…
[마부작침] 공정위
 공정위의 이런 과징금 부과는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어느 정도 수준일까. 성균관대 김일중 교수 연구팀은 지난 2017년 1월 발표한 [과징금 제도 운영 현황 및 개선방안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서 주요 선진국의 공정거래법상 기본과징금 산정기준에 대해 밝히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담합, 독점에 대한 기본과징금(혹은 벌금액)에 대해 미국은 기준액(관련매출액 등)의 최대 20%, EU와 영국은 30%를 산정 기준으로 삼고 있다. 한국이 공정거래법 제정 당시 참고한 일본의 경우엔 최대 10%로 한국과 같다. 보고서는 또 기준액과 대비해 실제로 부과한 과징금 비율도 살펴봤는데 인용한 해외 연구에 따르면 가중/감경 단계를 거치면서 미국은 실제로 관련매출액 대비 평균 15.7%를, EU는 14.1%를 실제 과징금으로 부과했다.

우리나라 공정위의 실제 과징금 부과율은 위에서 살펴봤듯 기준액의 1.4%에 불과하다. 외국의 사례는 담합, 독점에 대한 과징금이므로 공정한 비교를 위해 공정위 과징금 또한 부당한 공동행위(담합)에 부과된 것만 추려내봤다. 기준액 415조 1,690억 원, 기본과징금(최초 산정기준) 15조 2,133억 원, 부과과징금 6조 6,595억 원으로 부당한 공동행위에 대한 기본과징금 대비 실제 과징금 부과율은 1.6%인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EU 등과 비교하면 10분의 1 수준이다.

● 건설업계 사상 최대 과징금이라던 '호남 고속철 담합'

"3조 원대 국책사업 담합 적발" "건설업계 사상 최대 과징금"이라고 했지만...

공정위는 지난 2014년 주요 건설사 대부분이 가담한 3조 5,980억 원 규모의 담합을 적발했다. 호남 고속철도, KTX 건설공사 입찰에 건설사들이 함께 짜고 가격을 정해 나눠먹기 했다는 게 주된 내용이었다. 28개 건설사가 적발됐는데 총 4,355억 원의 '과징금 폭탄'이 부과됐다. (※ 13개 공구 입찰과 3개 공구 및 기지 공사 입찰 합계임.) 당시 건설업계에 부과된 과징금으로는 사상 최대였고, 공정위 출범 이래 두 번째로 큰 규모의 과징금이었다고 공정위는 설명했다.

이때 과징금을 부과 받았던 한 건설사의 사례를 추적해 보자. 한진중공업의 최종 부과 과징금은 206억 원이었다. (13개 공구 입찰 기준) 한진은 13개 공구 입찰에 참여해 1개는 자신의 몫으로 낙찰받았고, 12개에선 다른 건설사 낙찰에 '들러리'로 참여했다. 건설사들은 이렇게 공구별로 낙찰될 업체를 나눠먹듯이 정했고, 입찰이 무산되지 않도록 들러리 참여까지 미리 합의했다. 공정위는 한진의 경우 과징금 부과의 기준이 되는 관련 매출액(입찰의 경우 계약금액)이 2조 2,652억 원, 기준 고시에 따라 기본과징금(최초 산정기준)을 857억 원으로 계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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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왜 최종과징금은 4분의 1도 안 되는 206억 원이 됐을까. 한진은 과거 3년 간 법 위반횟수나 위반행위 기간에는 해당 사항이 없어 1차 조정에선 변화가 없었다. 2차 조정에서는 공정위 조사에 적극 협력했다며 20% 감경을 받아 과징금은 685억 원이 됐다. 마지막 3차 조정에서 한진은 과징금 산정의 기준인 관련매출액에서 낙찰금액보다 들러리로 참여한 탈락금액 비중이 크다며 들러리 관련매출액을 10%, 최근 3년간 당기순이익이 적자라며 50%를 또 감면받았다. 여기에 담합으로 인해 낙찰금액도 적을 수밖에 없다면서 10%를 또 깎았고, 최근 경기 악화로 건설시장이 크게 위축돼 있다면서 추가로 10%를 덜어줬다. 이런 3차 조정을 통해 한진중공업의 최종 부과과징금은 기본 과징금 857억 원에서 76.0%나 할인받은 206억 원이 된 것이다.

7개 건설사는 기업회생절차 등을 이유로 과징금 전액을 면제받았고, 한진을 포함한 21개 건설사는 관련매출액을 기준으로 처음 산정한 과징금과 비교해 평균 71.4%를 할인받았다. 그럼에도 건설사들은 과징금 처분이 부당하다며 불복 소송을 냈고, 대법원은 공정위의 손을 들어줬다.

● 거듭된 지적에 개선하고 있다지만…

과징금 산정 절차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은 시민단체뿐만 아니라 정부기관에서도 여러 차례 나왔다. 2012년 국민권익위원회는 "감경 사유와 감경 사유별 감경률의 적정성과 타당성에 관해 전반적으로 재검토"할 것을 권고했다. 2013년 국정감사에서는 "기업 과징금 중 거의 절반을 감경해주는 등 과징금 부과기준 관련 규정의 자의적 해석 여지가 많도록 규정"돼 있다며 "경제여건과 재무상태 등을 고려한 감경을 과감하게 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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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감사원은 "예외적인 감액 기준에 대하여 법률에 명확하게 근거를 규정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세부적인 감액 기준이나 방법, 감액률 적용기준 등을 합리적으로 제정, 운영"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감사원은 올해, 2018년에도 감사보고서를 내고 "반복해서 법을 위반하는 자에게 과징금을 감면하는 것은 부적정"하다며 개선을 권고했다. 구체적인 규정이 없어 집행도 일관되지 않다는 지적이었다. 2010년 이후로도 수 차례 거듭된 기관들의 공통된 지적은,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 과정이 구체적인 근거에 기반해 더 합리적, 객관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재량의 범위가 과도하게 크다는 말이기도 하다.

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김학휘 기자 (hwi@sbs.co.kr)
안혜민 기자·분석가(hyeminan@sbs.co.kr)
김그리나 디자이너·개발자(greena@sbs.co.kr)
인턴 : 윤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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