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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1천 원짜리 풍등에 수십억 원 '활활', 저유소 화재 재발 막으려면…

[리포트+] 1천 원짜리 풍등에 수십억 원 '활활', 저유소 화재 재발 막으려면…
지난 7일 오전 11시쯤 경기도 고양시 휘발유 탱크에서 폭발과 함께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불은 17시간 만인 8일 새벽 4시가 다 돼서야 꺼졌습니다. 불에 탄 휘발유는 260만 리터(ℓ), 돈으로는 수십억 원어치입니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이번 화재를 둘러싼 논란은 여전히 가라앉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화재의 원인인 '풍등'을 날린 스리랑카인에 대한 구속영장이 반려되자, 일각에서는 '무리한 수사를 벌인 게 아니냐'라는 지적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또 불이 났을 당시 대한송유관공사(이하 송유관공사)의 부실한 대응에 대한 비판도 이어지고 있는데요. 오늘 리포트+에서는 고양 저유소 화재를 둘러싼 논란을 짚어봤습니다.
[리포트+] 천 원짜리 풍등에 수십 억 원 '활활', 저유소 화재 재발 막으려면...
■ 연기 피어오르다 거대한 불길과 함께 폭발…진화에 17시간 걸린 이유는?

경찰은 어제(9일) 스리랑카인 A 씨에게 구속영장을 신청했습니다. 일부러 불을 지른 건 아니라고 해도 조심하지 않았고 또 화재 피해가 컸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앞서 경찰이 공개한 CCTV 영상에는 A 씨가 풍등을 날리는 모습이 담겼고, 바람을 타고 날아간 풍등이 바로 옆 유류 저장소 잔디밭에 떨어지는 모습도 잡혔습니다.
[리포트+] 천 원짜리 풍등에 수십 억 원 '활활', 저유소 화재 재발 막으려면...
풍등이 떨어진 휘발유 탱크 주변에서 연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한 건 오전 10시 36분. 그리고 정확히 18분이 지난 10시 54분 대형 폭발이 일어났습니다. 큰 불길은 8일 새벽 3시쯤에야 잡혔고 한 시간 뒤인 새벽 4시 무렵에야 불길이 사라졌습니다. 화재 진화까지 총 17시간이 소요된 겁니다.

당초 대한송유관공사 측은 어젯밤 11시면 불길을 잡을 수 있을 거라고 했습니다. 화재 진압이 예상보다 늦어진 건 탱크 안에 있던 휘발유를 빼내 다른 탱크로 옮기는 작업이 순탄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65만ℓ씩 휘발유를 빼낼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유증기로 인해 폭발 위험이 커진다고 판단한 송유관공사가 기름을 빼내는 속도를 늦췄고, 탱크 안에 있던 휘발유 440만ℓ 중 180만ℓ만 옮겨진 채 260만ℓ는 17시간에 걸쳐 타버린 겁니다.

■ "호기심에 불붙여 날렸는데" 화재 원인 된 풍등…막을 방법 없었나?

스리랑카인 A 씨는 "일하다 쉬는 시간에 주운 풍등을 호기심에 불을 붙여 날렸다"고 경찰에 진술한 상태인데요. A 씨가 주운 풍등은 화재가 발생하기 전날인 6일, 저유소에서 800m 정도 떨어진 초등학교에서 날아온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해당 초등학교에서는 화재 전날 아버지 캠프 행사를 진행했는데, 저녁에 풍등 80개를 날리는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그렇다면 유류 저장소 주변에서 풍등을 날린 행사 주최 측에는 문제가 없는 걸까요? 소방기본법 제12조에 따르면, 소방본부장이나 소방서장은 화재 예방상 위험하다고 인정되면 불장난, 모닥불, 흡연, 화기 취급, 풍등 등 소형 열기구 날리기 등을 금지 또는 제한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같은 금지사항을 어겼을 때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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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법령을 자세히 따져보면 '풍등을 날리지 말라고 한 상황에서 날리는 것'은 불법이지만, '풍등을 날리는 행위' 자체는 불법이 아닙니다. 게다가 풍등을 날릴 때 사전에 신고해야 한다는 의무 규정도 없습니다.

일각에서 풍등 날리기 등의 행사는 사전 신고제를 의무화하거나, 행사 자체를 금지하는 방향으로 법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실제로 미국, 영국, 태국 등에서는 산불의 원인이 되거나 야생동물이 잔여물을 먹을 수 있어 풍등 사용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습니다.

■ 불붙고 폭발까지 18분…송유관공사 대응 없었던 이유는?

이번 화재의 또 다른 논란은 송유관공사의 화재 대응에 있습니다. 폭발이 일어나기 전 18분 사이 탱크 주변에서 연기가 계속 올라왔지만, 당시 유류 저장소에서 근무하던 직원 6명 중 이 사실을 알아챈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2인 1조로 근무하는 통제실에는 사고 당일 1명만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통제실에는 45대의 CCTV 화면이 있었지만, 작은 격자 형태로 돼 보기 힘든 데다 전담해서 보는 사람은 없었다고 공사 측은 설명했습니다. 더구나 14개의 탱크가 있는 외부에 자동감지기는 2개뿐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런데 이마저도 화재용이 아닌 유증기 감지용으로 대형사고를 방지할 수 없었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경찰이 스리랑카인 A 씨에게 중대한 실화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신청하자, 비난 여론은 거세졌습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이번 화재는 관리부실이 더 큰 문제라며 "이번 화재는 개인의 책임이 아닌 시스템의 문제로 발생한 것이다", "스리랑카인에게 죄를 뒤집어씌우지 마라", "스리랑카 노동자를 구속하지 말아 주세요"라는 등의 청원이 올라와 있는 상태입니다.

검찰 측은 "수사 내용을 보강하라"며 경찰이 어제 신청한 구속영장을 반려했는데요. 이에 경찰 측이 오늘 오후 2시쯤 A 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재신청했으나 기각됐습니다. 경찰은 검찰의 결정에 "피의자에 대한 출국금지 등 조치를 한 뒤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를 계속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리포트+] 천 원짜리 풍등에 수십 억 원 '활활', 저유소 화재 재발 막으려면...
(취재: 원종진, 안상우 / 기획·구성: 송욱, 장아람 / 디자인: 감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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