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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서오남'을 아십니까?…미국 대법원은 '백아남'

[취재파일] '서오남'을 아십니까?…미국 대법원은 '백아남'
'서오남'을 아십니까. '서울대 법대 출신 50대 남성'이라는 뜻인데요. 우리나라 대법원이나 헌법재판소 인적 구성을 비판할 때 많이 나오는 얘기입니다. '그들만의 리그'라는 것이죠. 최근 임명제청된 대법관 후보자를 포함하면 현재 우리 대법원의 대법관 14명 중에 서울대 법대 출신이 9명, 남성은 11명입니다. 3명의 재판관이 현재 공석인 헌법재판소의 경우, 직전까지는 재판관 9명 중 7명이 서울대 법대 출신이었고 성별 구성도 7대 2로 남성이 많았습니다. (임명 당시 50대였다가 현재 60대가 된 경우를 고려해 연령은 여기서는 제외하겠습니다.)
선서하는 브렛 캐버노
● 캐버노 역시 '그들만의 리그'

우여곡절 끝에 브렛 캐버노(사진) 미 연방대법관이 취임했습니다. 고교 시절 성폭력 미수 의혹으로 혹독한 청문회 과정을 거쳐야만 했습니다. 캐버노의 성추문이 사실일 거라는 미국 내 여론이 40% 전후로 나타난 여론조사 결과도 많았는데요. 캐버노의 자질 문제와, 캐버노 임명을 강행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비판도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뉴욕타임스가 흥미로운 분석을 내놨습니다. '그들만의 리그'라는 관점에서 볼 때도 캐버노 임명은 비판받을 수밖에 없단 취지의 보도입니다.
그래픽 : 뉴욕타임스
1789년 미국 연방 대법원이 설립된 이래 지난 230년 동안 캐버노까지 모두 114명의 대법관이 임명됐습니다. 캐버노 임명은 아슬아슬했습니다. 100명으로 구성된 미 상원 인준 투표에서 50대 48, 단 2표 차이로 통과됐습니다. 상원 기록으로 보면, 지난 1881년 스탠리 매슈스 후보자가 1표 차이로 인준 통과한 이후 가장 적은 표차라고 합니다.
그래픽 : 뉴욕타임스
'그들만의 리그', 우리나라에선 '서오남'이라면 미국에선 '백아남'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미국 주류사회의 질서가 그대로 반영돼 있는데요.

우선 '백'입니다. 지난 230년 동안 114명의 대법관 중에 111명이 백인이었습니다. 캐버노까지 포함해서입니다. 이후 흑인 2명, 히스패닉 1명이 대법관이 됐습니다. 현재 미국 대법관 9명 중에서도 6명이 백인입니다.

유색인종이 대법관이 되는 데는 178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지난 1967년 '위대한 소수자'로 불렸던 서굿 마셜이 최초의 흑인 대법관이 됐고, 그의 후임으로 클래런스 토머스가 1991년 대법관이 된 뒤 현재까지 재임하고 있습니다. 히스패닉으로는 소니아 소토마요르가 2009년 처음으로 대법관이 됐습니다. 불과 10년 전 일입니다.
그래픽 : 뉴욕타임스
'백아남'의 두 번째 '아'는 우리나라 세 살배기들도 들어봤을 '아이비리그' 얘기입니다. 뉴욕타임스는 "대법관의 출신 학교는 훨씬 더 독점적"이라고 분석했습니다. 그러면서 "특히 최근 30여 년 동안 임명된 대법관들은 모조리 하버드, 콜럼비아, 예일 같은 아이비리그 로스쿨 출신"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물론 그중에 예일대 로스쿨 출신의 캐버노도 포함됩니다.
그래픽 : 뉴욕타임스
마지막 '남'은 쉽게 아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114명의 미국 대법관 중 남성은 110명, 여성은 4명이었습니다. 여성이 대법관이 된 건 192년이나 걸렸습니다. 유색인종이 대법관이 되는 것보다 더 오래 걸린 건데요. 지난 1981년 샌드라 데이 오코너가 만장일치로 미국의 첫 번째 여성 대법관이 됐습니다. 현재 미국 대법원에는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소니아 소토마요르, 엘리나 케이건 3명의 여성 대법관이 있는데, 모두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위한 진보적 판결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 '백아남' 캐버노 등장…미국 대법원 '우향우'

백인 아이비리그 로스쿨 출신 남성, 미국 주류 질서의 핵심으로 볼 수 있을 텐데요. 그런 '백아남'의 결정체인 캐버노의 임명으로 미국 대법원은 앞으로 '보수 성향'으로 중심 무게추가 기울 것으로 미국 언론들은 보고 있습니다.
미국 연방 대법원 대법관 9명의 지난해 단체 사진. 앤서니 케네디 대법관의 은퇴로 브렛 캐버노가 대법관에 임명됐다.
캐버노의 전임자인 앤서니 케네디 전 대법관은 1988년 취임 이후 '중도'를 표방하며 찬반 의견이 첨예하게 갈린 주요사안에서 대법원의 '균형추' 역할을 해 왔습니다. 케네디 대법관의 은퇴로 미 대법원은 존 로버츠 대법원장과 사무엘 알리토, 클래런스 토머스, 닐 고서치 대법관 등 보수 4명과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스티븐 브레이어, 소니아 소토마요르, 엘리나 케이건 대법관 등 진보 4명으로 양분됐습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의 엄청난 지원을 받은 캐버노가 등장한 겁니다. 보수 대 진보, 5대 4가 됐습니다.

'서오남'이나 '백아남'이라는 문제의식은, 사회 이념 지형의 다양성을 담아내야 할 최후의 보루가 대법원이기 때문일 겁니다. 게다가 임기가 6년으로 정해진 우리나라 대법관이나 헌법재판관과 달리, 미국 대법관은 종신제입니다. 본인이 사퇴하지 않는 한 평생 대법관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그의 남은 생애만큼, 길게는 한 세대 만큼 미국 사법 시스템의 이념 지도가 좌지우지됩니다.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가 자신의 임기 중 보수 성향 대법관 2명을 연달아 임명한 것은 그의 정치적 유산 중 가장 오래갈 것"이라고 했고, CNN은 "캐버노 임명으로 연방 대법원의 보수 우위가 한 세기 동안 지속되게 됐다"고 했습니다.
트럼프
하지만 캐버노 인준 통과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얼마나 득이 될지는 아직 모를 일입니다. 스스로가 '성추문 1등'인 트럼프 대통령이 성추문 의혹으로 엉망진창이 된 캐버노 대법관을 감싸고 돌았다는 비판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등을 돌린 여성과 젊은 층이 민주당을 찍기 위해 다음 달 6일 중간선거 투표장에 대거 등장할 거라는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는 겁니다. 캐버노 인준 강행이 미국 중간선거에 또 다른 변수가 될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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