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니무라 준 논란을 접한 한 일본 네티즌의 반응이다.
나홍진 감독의 영화 '곡성'(2016)으로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일본 배우 쿠니무라 준이 한국에 왔다가 곤란한 상황에 처했다.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 섹션의 심사위원 자격으로 기자회견에 참석한 쿠니무라 준이 자리와 상관없는 질문을 받고 소신 발언을 한 것이 빌미가 됐다.
5일 오전 부산 해운대구 신세계백화점 센터시티점 문화홀에서 열린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 심사위원 기자회견에 참석한 쿠니무라 준은 욱일기 관련 질문에 견해를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한 오마이뉴스 기자는 "현재 제주도에서 열릴 관함식에서 일본 해상자위대 군함이 전범기인 '욱일기'를 게양한다는 것에 대해 큰 비판을 받고 있는데 일본 배우로서의 입장을 듣고 싶다"는 질문을 던졌다.
쿠니무라 준은 "제가 이 문제에서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황이다. 실례가 안 된다면 자세히 설명해 달라"고 요청했다. 기자의 부연 설명을 전해 들은 쿠니무라 준은 차분히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더불어 "일본 정부는 비단 욱일기뿐만 아니라 보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여러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게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이 문제에 대해서는 배우로서가 아니라 개인으로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소신 발언을 덧붙였다.
우문현답이었다. 행사의 성격에 맞지 않는 질문이었지만 쿠니무라 준은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상식적인 답변이었다. 그러나 이 상황이 남긴 파장은 생각보다 컸다. 관련 소식이 일본에도 전해지며 극우 성향의 네티즌이 들끓었다.
정치적 견해에 대한 평가를 떠나 논란 자체를 안타까워하며 해당 질문을 던진 기자의 자질과 영화제 측의 진행 미숙을 비난하는 여론도 거셌다.
BIFF 측은 7일 쿠니무라 준의 욱일기 문답 논란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영화제 측은 "기자회견에서 다양한 문답이 오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나 심사위원으로 오신 게스트가 정신적 고통을 받는 일은 없어야 하기에 말씀을 드리려 한다"라며 "쿠니무라 준의 경우 민감한 한일 문제에 관한 질문으로 인해 여러 가지 오해와 억측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기자회견을 준비한 영화제의 입장에서 이런 문제가 발생하게 된 점 사과드리고자 합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영화제에서 정치적 의견이 오가는 것은 가능한 일이나 지나치게 민감한 문제에 대해서는 게스트를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라며 "수십 시간의 토론이 필요한 문제에 대해 기자회견의 짧은 문답은 그 의미를 전달하기 어렵습니다. 영화제는 앞으로 게스트가 불필요한 오해와 억측에 노출되지 않도록 유의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쿠니무라 준 역시 입장문을 발표했다. 쿠니무라 준은 "사람들은 모두 현재 일어나고 있는 갈등이나 고통 속에 살아가는 것보다 밝은 미래의 희망이나 따뜻한 과거의 추억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왜, 지금 이렇게 엄중한 상황이 되었는지, 그것을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이 강하게 있기 때문에, 전 세계에서 이렇게나 많은 영화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닐까요"라며 "영화제는 모두의 생각이나 의견이 섞이고 녹여져서 어느새 아름다운 결정체가 되어가는 장이 되기를 염원합니다"라고 전했다.
무엇보다 때와 상황에 맞는 질문이라는 게 있다. 쿠니무라 준은 질문 이슈와 관련된 영화로 부산을 온 것이 아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쿠니무라 준이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것은 '뉴커런츠' 섹션의 심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이날 기자회견은 올해 뉴커런츠의 경향과 특징, 그리고 심사기준을 묻고 답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우익과 좌익 친한과 반한 등을 확인하는 사상 검증의 자리가 아니었다. 게다가 왜 이런 질문을 배우에게 하는가. 이 질문이 향하고 답이 돌아와야 할 대상은 양국의 대통령과 총리, 국회의원 등 정치권의 주요 인사들이다.
비슷한 상황은 이날 오후에 열린 기자회견에서도 이어졌다. 갈라 프레젠테이션 초청작인 중국 영화 '초연'으로 부산을 찾은 배우들에게 미국 버라이어티 기자가 판빙빙의 탈세 의혹에 관한 생각을 물었다. 판빙빙은 관련 사건으로 중국 당국의 조사를 받은 후 행방이 묘연해져 해외 이주설, 파혼설, 납치설, 미국 정치 망명설, 수감설, 사형설 등의 구설에 휩싸였던 스타다.
바이바이허는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이에 기자는 다시 한번 "중국에서 활동하는 여배우들에게 굉장히 중요한 사건인데 왜 답을 하지 않느냐"고 촉구했다. 바이바이허는 "판빙빙 사건은 개인적인 사건이고 다른 사람의 일이라 대답하기 곤란하다"고 재차 설명했다.
함께 자리한 관금붕 감독은 "바이바이허가 말한 것처럼 다른 사람의 일이라 답하기 곤란하다. 더욱이 바이바이허를 제외한 다른 세 배우는 홍콩에서 주로 활동하고 중국 시스템을 정확히 알지 못하기에 답하기 더 곤란하다"고 대답하지 않는 것에 대한 양해를 부탁했다.
쿠니무라 준과 바이바이허는 정치적 견해를 자발적으로 밝힌 게 아니라 강요받은 것과 다름없다. 이들은 영화제를 찾은 손님이다. 원치 않은 질문을 받고, 그 질문에 대한 답으로 인해 정치적 희생양이 되어야 할 이유가 없다.
물론 이들에겐 대답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실제로 바이바이허는 답하지 않았고, 쿠니무라 준은 답했다. 하지만 답을 하지 않으면 도망쳤다는 인식을 주게 되며, 답한 이는 대답의 내용에 따라 일부의 공격을 받을 수 있다. 이런 상황에 놓이게 하는 것 자체가 이들을 궁지로 몰아넣는 것이다.
부산국제영화제는 2014년 영화 '다이빙벨'을 상영했다. 영화제 측은 상영을 하는데 어떤 정치적 입장도 고려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후 정권의 탄압을 받았고, 내·외적 시련과 겪으며 영화제의 위상이 흔들렸다. 일어나서는 안되는 응징에 영화인들은 분노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문화·예술 본연의 가치를 지킬 때 그 순수성과 자율성, 독립성이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엄밀히 말해 이번 논란에서 가장 큰 잘못을 한 이는 때와 상황에 맞지 않은 질문을 던진 기자다. 불가피한 상황이 벌어졌다면, 영화제 측은 배우가 곤란하지 않도록 보호했어야 했다. 이런 일이 영화제의 발전과 이미지에도 좋은 영향을 줄 리 없다. 일련의 상황이 몹시 유감스럽다.
(SBS funE 김지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