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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무명의 의병' 고 박동희 선생, 99년 만에 공적 인정

<앵커>

옥천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순국한 고 박동희 선생님이 99년 만에 독립유공자에 선정됐습니다. 그 과정에는 옥천군의 숨은 공로가 있었습니다.

김우준 기자입니다.

<기자>

일제강점기 이름 없었던 의병들을 주인공 내세워 큰 인기를 얻었던 드라마입니다.

하지만 현실에는 여전히 조명받지 못한 무명의 의병들이 많습니다.

고 박동희 선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린 나이에 옥천 청산면에서 3·1운동을 이끌다 일본 경찰에 잡혀 모진 고문을 당했습니다.

이곳에서 3·1운동을 주도했던 박동희 선생님은 결국 고문 후유증 이기지 못하고 23살에 어린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항일 운동 중에 순국했지만, 당시 기록이 사라졌다는 이유로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돌아가신 지 99년 만에 드디어 국가로부터 공적을 인정받았습니다.

그 뒤에는 옥천군의 숨은 노력이 있었습니다.

[박연호/박동희 선생 후손 : 두 번 (국가유공자 신청에) 도전했다가 떨어졌는데 세번째 도전할 때 전 천상면장님과 면직원들의 도움이 상당히 컸습니다.]

신한서 전 청산면장이 서고에서 발견한 범죄인명부가 박동희 선생의 공적을 증명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겁니다.

이후 신 씨는 국가보훈처에 직접 탄원서를 넣고 서명도 받으며 유가족과 함께 백방으로 뛰어다녔습니다.

그 과정에서 신 씨는 후손들이 직접 국가유공자를 증명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몸소 느꼈습니다.

[신한서/전 옥천군 청산면장 : (개인이) 자료도 없고 발견한다고 하더라도 옛날 한문으로 된 것을 해석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자료 모든 것을 갖고 있는 국가나 자체 단체에서 해준다면 상당히 효과가 있을 것···]

당시 박동희 선생과 운동을 같이 하다 순국했지만, 공적을 인정받지 못한 의병들만 5명.

그들의 넋을 위로해 주는 건 결국 국가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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