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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룸] 북적북적 157 : '어른은 어떻게 돼?'…너만의 방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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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전에 일본 땅에 도피성 유학을 떠난 한국인 청년이 일본 여자를 만나 결혼하고 이 직업 저 직업을 전전하다가 시간이 흘러 중년의 아재가 됐는데 어라? 식구가 네 명이나 늘었네? 돈도 잘 못 버는 것 같은데 이 아저씨 이제 어떡하지? 이번 생은 망해야 정상인데, 어? 잘 살고 있네?'라는 느낌으로 읽어주신다면 무지하게 감사하겠다."

명절 연휴에는, 원하든 원치 않든 가족에 대해 한 번씩 되돌아보게 됩니다. 명절 자체에 대해서도 의무감에 해야 하는 것과 적당히 포기하는 것 사이를 상황 따라 대개 줄타기하는데 가족도 좀 그렇습니다. 과거, 현재, 미래, 가족의 범위는 어디까지일지, 나의 가족은 또 어떻게 달라질지. 한해 한해 지나면서 어느새 나이가 들어 누가 봐도 어른이랄 나이가 됐지만 '나는 어른인 걸까' 물음은 여전합니다. 가족과 어른, 속세에 있는 한 어쩔 수 없이 가져갈 수밖에 없는 이 두 가지 화두에 대한 책을 마침 읽었습니다. 박철현 작가의 [어른은 어떻게 돼?]입니다.

이 책은, 맨 처음 읽은 프롤로그의 한 대목처럼 박 작가가 일본에 가서 일본인 여성과 결혼해 아이 4명을 낳고 키우며 사는 가족 이야기입니다. 어떤 생각이 먼저 드시나요. 와 애가 4명이야? 어떻게 키워? 일본은 물가도 비쌀 텐데 돈 잘 버나 보네, 내용 뻔하겠네 일본 사회가 이러저러한 장점이 있어서 애 4명이라도 잘 키우고 있다, 뭐 그런 내용 아냐? 등등. 자신의 육아 체험을 뭔가 대단한 내용이 있는 양 포장한 그런 책 아니야 하는 의심이 약간 있었습니다. 그런 책이 꽤 많이 나왔으니까요.

찬찬히 책을 살펴보니 좀 달랐습니다. [어른은 어떻게 돼?] 이 제목은 누가 누구에게 하는 질문일까요. 아이들이 부모에게? 아니면 아빠가 아이에게? 작가 소개를 읽으면 힌트가 있습니다.

"…나이로 치면 어른이다. 하지만 미우, 유나, 준, 시온 네 아이를 기르며 그들과 더불어, 지금 여기에서도 성장하고 있다고 느낀다.

첫째 딸 미우를 낳았을 때만 해도 "애가 애를 낳아서 어쩌려고 그러냐"라는 말도 들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아무도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여전히 모자람이 많지만 한 집안의 들보 정도의 역할은 하고 있는 것 같다. 아이였던 나를 그렇게 만들어준 아이들과 아내 미와코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제목처럼, 그렇게 우리는 함께 어른이 되어가는 중이다. 또한 그렇게 '한 사람의 몫'을 찾아가는 중이다. '그렇게'의 다양한 이야기를 책에 담았다."


이 책은 만남, 관계, 성장, 독립이라는 4부로 구성돼 있습니다. 인생이란 이런 단계가 무수히, 다양하게 반복되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네 명이나 낳고 키워도 문제없다는 걸 굳이 증명하거나 강변하려는 것은 아니다. 한국과 일본은 상황 자체가 아예 다르니까 그럴 수도 없다. 다만 육아라고는 하나도 모르는 20대, 철없는 한국인 아빠가 외국 땅에서 어쩌다가 아이를 넷이나 낳고 키워봤다는 것이 비슷한 처지의 한국 친구들에게 조금이나마 참고가 되었으면 좋겠다. 아이 키우는 데 정답이 어디 있겠나. 그냥 키우는 거지."

"아이들을 많이 키우다 보면 어른의 관점에서 생겨난 물음이 아이들이 생각하기에 만고 의미 없는 경우가 종종 있다. 반대로 아이가 어른은 생각지도 못하는 질문을 던진다."

"아빠 피곤한 건 잘 알겠어. 하지만 다른 사람들도 피곤해. 엄마 일 많은 건 아빠도 당연히 알 것이고, 미우도 소프트볼 때문에 매일같이 연습해서 피곤하고, 준은 저랬다간 나한테 맞고. 시온이는 아직 우리 룰에 해당사항 없고. 우리 모두 다 이유가 있어. 그리고 무엇보다 아빠는 나하고 약속을 했어. 앞으론 그러지 않겠다고. 그런데 약속을 어겼어. 지금 나는 아빠에게 어긴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거야. 고마운 줄 알아야지."

"일요일 같은 날 비 와서 밖에 나가 놀지 못하게 되면 나, 미우, 유나, 준이 주루룩 식탁에 앉아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 열몇 권을 쌓아놓고 독서 삼매경에 빠지기도 한다.

창밖에는 빗방울이 창문을 때린다. 아내는 막내 시온이와 다다미 방에서 낮잠을 즐기고 텔레비전은 꺼졌다. 조용한 정적이 흐르는 거실에 책장 넘기는 소리만 들린다. 그 고요한 침묵과 효과음은, 우리들에겐 일상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다른 이들이 본다면 이질적이면서도 신선하고, 또 아름다운 풍경일지도 모르겠다."

"벌써 초등학교 5학년이다. 그렇다면 웬만한 건 다 아는 나이다. 아이들이 어른들을 이용하기도 하는 때다. 또 어른들은 그걸 아예 모르거나, 혹은 알아도 귀찮아서 모른 척하기도 한다. 나는 그것이 싫었다. 언제나 꾸밈없이 솔직하게, 그들을 대등한 인격체로 접하려고 한다. 이런 삶의 방식이 맞는 것인지 아닌지 나도 아내도 모른다. 나중에 아이들이 나이를 먹고 18세가 지나면, 어렴풋이 알게 되겠지. 이미 되돌릴 수 없는 과거가 되어버리겠지만. 두렵지만 설레기도 하는, 그런 시간이 오늘도 유유하게 흐르고 있다."


이 책을 읽다 보니 어느새 미우, 유나, 준, 시온 4명의 아이들이 옆집에 사는 아이들처럼 친숙하게 느껴집니다. 아이를 낳으면 아이에게는 어른 역할과 노릇을 더 명확히 해야 할 때가 많을 텐데 어떻게 하는 게 잘 하는 것일까요. '어른은 이런 것'이고 '이렇게 돼야만 해'라는 게 있을까요. "어른은 어떻게 돼?"라는 물음에 "각자의 방향으로, 서로의 속도로, 나만의 방식으로… "라고 답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 출판사 어크로스로부터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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