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동석은 1년 전인 추석 연휴 신바람 나는 흥행 레이스를 펼쳤다. '범죄도시'는 이병헌, 김윤석, 박해일 등 초호화 출연진을 자랑하는 '남한산성'에 맞서 역주행 끝에 전국 687만 관객을 동원했다. 주연으로 나선 영화 중 최고의 흥행이었다.
본인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영화와 캐릭터를 만나 최고의 활약을 펼친 결과였다. 주가는 급상승했다. '범죄도시' 개봉 전 출연을 확정한 '부라더', '원더풀 고스트', '신과 함께-인과 연', '동네 사람들', '챔피언'을 포함해 '성난 황소', '나쁜 녀석들', '악인전' 등에도 캐스팅됐다.
지난 8월 개봉한 '신과함께-인과 연'은 전편 '신과함께-죄와 벌'에 이어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이 작품에서 마동석은 감초 조연 '성주신'으로 분했다. 그러나 마동석이 천만 영화를 이끌었다기보다는 등에 탔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마동석이 실베스터 스탤론이 주연한 추억의 영화 '오버 더 톱'(1987)에서 영감을 받아 출발했다는 '챔피언'은 주연 배우의 인기와 캐릭터에 기댄 안일한 기획 영화였다. 시나리오는 뻔했으며, 마동석의 연기는 자기 복제에 그쳤다. 마동석의 외모를 활용한 한심한 개그를 펼치다가 후반부에는 어색한 신파 연기로 관객의 감정샘을 건드리려 했다. 심지어 남다른 매력과 연기력으로 대부분의 출연작에서 반짝반짝 빛났던 한예리도 무기력하게 소비됐다.
게다가 이 영화는 스포츠 소재 영화의 핵심인 경기 장면의 긴장감과 스펙터클을 찾아볼 수 없었다. 손익분기점은 175만 명이었지만 112만 명을 모으는 데 그쳤다.
신작 '원더풀 고스트'도 기대에 못미치는 결과물이다. '원더풀 고스트'는 불의를 잘 참는 유도 관장에게 정의감에 불타는 열혈 고스트가 달라붙어 벌어지는 예측 불가 수사 작전을 그린 범죄 코미디 영화. 할리우드 영화 '사랑과 영혼'과 모티브가 유사하다. 내 눈에만 보이는 유령과 합심해 불의에 맞서고 범죄자를 소탕하는 정의로운 소시민을 내세운 차이를 뒀다.
'원더풀 고스트'의 순제작비는 15억 원이다. 표준계약서 도입으로 한국 상업영화의 평균 제작비는 50억을 훌쩍 넘어섰다. 제작비 15억 원은 저예산 중 저예산이다. 대신 광고홍보(P&A) 비용을 제작비 수준으로 투입해 영화 알리기에 나섰다. 총제작비는 30억 선, 손익분기점은 120만 명이다.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인 10월 26일 개봉해 16만 명의 관객을 모으는 데 성공했지만 27일과 28일에는 3만 명 대로 일일 관객 수가 추락했다.
이 영화를 홍보하는 홍보사는 개봉 전 '동시기 개봉작 중 예매율 1위'라는 홍보 문구를 보도자료에 삽입했다. 전체 예매율 순위는 일주일 앞서 개봉한 '안시성', '명당', '협상'에 이어 4위였다. 개봉 4일 차, 실 관람객의 평가는 예매율만큼이나 좋지 않다.
'원더풀 고스트'는 CGV 단독 개봉 중이다. 상업영화라도 상영관 확보가 원활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 단독 개봉을 선택하기도 한다. 한 멀티플렉스 체인의 상영관이라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함이다. 이는 배급 비용을 줄이는 경제적 효율성도 높일 수 있다. '원더풀 고스트'는 개봉 전 1+1 예매권 5천장을 푸는 이벤트를 마련하기도 했다.
'아트박스 사장'으로 특별 출연했던 '베테랑'을 필두로 '부산행'의 좀비 때려잡은 상남자 '상화', '범죄도시'의 강력반 형사 '마석도', '챔피언'의 팔씨름 유망주 '마크', '원더풀 고스트'의 유도 관장 '장수'까지 영화의 소재만 다를 뿐 마동석의 캐릭터는 대동소이하다. 이 말은 '단순·무식·따뜻 캐릭터' 하면 떠오르는 대표 배우가 됐다는 의미기도 하지만, 하나의 캐릭터만 연기해왔다는 의미기도 하다.
물론 모든 배우가 연기파를 지향하는 것도 아니고 지향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역할을 잘하는 것도 능력이다. 마동석은 지나치게 한 캐릭터만 복제하며 안주하고 있다. 관객들의 인기와 신뢰를 바탕으로 도전적인 선택을 해도 되는 타이밍이다. 그러나 마동석은 안전한 길만 추구하며 과하게 이미지를 소비하고 있다. 대신 다른 방향으로 영역을 확장 중이다.
마동석은 오래전부터 창작집단 '팀 고릴라'를 이끌어왔고, 주연으로 도약한 뒤 출연한 대부분 작품을 팀 고릴라와 함께해나가고 있다. 이미 개봉한 '챔피언', '원더풀 고스트', 개봉을 앞둔 '성난 황소' 등은 마동석의 아이디어로 출발해 팀 고릴라와 협업한 작품들이다. 이를 통해 신인 감독의 입봉이나 중고 감독의 복귀, 신인 작가 양성 등의 의미 있는 작업도 해나가고 있다. 이런 책임감 때문인지 마동석은 좋지 못한 시나리오와 뻔한 영화 속에서 구분도 안 되는 캐릭터를 재생산하고 있다.
충무로에서 활약하는 일급 배우들은 개인의 역량도 뛰어나지만, 그만큼 커리어 관리를 빈틈없이 한다. 작품 하나하나가 모여 전체 필모그래피의 수준을 높이고, 배우의 이름값도 견고히 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마동석은 인기의 정점을 찍은 후 커리어 관리가 좋지 못하다. 연기 스펙트럼을 넓히는 것이 아닌 다작하는 것에 의미를 둔 것처럼 보이는 행보다. 단순히 찍어내는 것에 의미를 둔다면 배우로서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작품 편수를 줄이더라도 좀 더 좋은 시나리오를 고르는 날카로운 선구안이 필요하다. 관객은 감독, 배우의 안목이나 전략을 넘어서는 냉정한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지금과 같은 행보를 계속해서 이어간다면 관객의 인내심은 한계에 도달할 지 모른다.
(SBS funE 김지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