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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수영 김혜진 폭행한 중국 선수 엄벌 난망

권종오 기자 kjo@sbs.co.kr

작성 2018.09.11 11:42 수정 2018.09.12 08:40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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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수영 여자 평형 100m 결승에서 역영하는 김혜진(흰색 수영모)
지난 8월 23일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대한민국 수영 국가대표 김혜진 선수가 연습을 하다 2014 인천아시안게임 4관왕 출신인 중국 선두어 선수에게 보복 폭행을 당해 큰 파문이 일었습니다. 선두어는 폭행 이후 김혜진에게 사과했지만 김혜진은 선두어가 스포츠맨십에 어긋나는 폭행을 했다고 판단해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고 처벌을 원한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다음 날인 8월 24일 대한체육회는 이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를 아시안게임을 주관하는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에 요청하고 폭행 사실이 확인될 경우, 향후 비슷한 사건의 재발 방지를 위하여 적법한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하지만 합당한 처벌을 원하는 김혜진 선수의 뜻은 이뤄지지 않게 될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선두어에 대한 엄벌이 사실상 어렵게 됐고 처벌이 내려진다해도 실효성이 없는 형식적인 솜방망이 징계에 그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입니다. 결정적인 이유는 OCA가 이 사건을 직접 조사하지 않는 대신 아시아수영연맹에게 조사를 요청한데서 비롯됩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아시아수영연맹 내부에서 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할 책임자는 중국인 위엔하오란 경기위원장입니다.

경기위원장이 중국인일 뿐만 아니라 경기위원 8명 가운데 2명은 홍콩과 마카오 사람이고 다른 2명도 사실상 화교 출신으로 '친중국계'입니다. 그러니까 경영 종목을 관장하는 9명 가운데 5명이 '중국인 또는 친중 인사'인 것입니다. 반면 아시아수영연맹 회장과 부회장, 사무총장 등 집행부와 각 분과위원회 위원장, 위원 등 수십 개의 요직에 한국인은 단 1명도 없습니다. 우리의 목소리가 반영될 여지가 원천적으로 없다는 뜻입니다.

중국의 영향력이 이처럼 막강한 상황에서 아시아수영연맹이 공정한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중국 선수에게 엄중한 징계를 내린다는 것은 한마디로 기대난망입니다. OCA도 마찬가지입니다. 국내 체육계에서는 "아시아에서 중국 스포츠가 차지하는 위상과 2022년 중국 항저우 아시안게임을 감안하면 아시아수영연맹이 중징계를 결정하지 못할 경우 OCA가 나서서 강력한 처벌을 내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내다보고 있습니다. 대한체육회의 한 관계자는 "아시아수영연맹이 선두어의 징계안을 올리면 OCA가 승인을 하는 형식으로 이 사건이 종결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습니다.
중국 수영 국가대표 선두어
그렇다고 중국 선수단이 선두어에게 자체 징계를 내릴 가능성도 희박합니다. 대한체육회가 처음부터 중국 선수단에게 선두어의 처벌을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중국 측에서 자발적으로 선두어를 징계할 이유는 거의 없습니다. 이런 분위기는 일찌감치 감지됐습니다. 김혜진 선수가 폭행당한 다음 날인 지난 8월 24일 저는 자카르타 겔로라 붕 카르노 수영장에서 중국 선수단과 중국 기자들을 대상으로 이 사건의 인지(認知) 여부를 취재했습니다. 중국 수영대표팀 코치들과 CCTV를 비롯한 중국 기자들은 한결같이 "선두어가 한국 선수를 폭행했다는 사실을 들은 적이 없다"고 부인했습니다. 선두어의 팀 동료이자 이번 아시안게임 수영 2관왕인 장위페이 한명만 "선두어가 한국 선수와 마찰을 빚었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폭행했다는 것은 잘 모른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대한체육회와 국내 체육계의 의견을 종합하면 선두어의 징계는 기껏해야 아시아수영연맹이 주관하는 국제대회 출전정지 3-6개월이나 그렇지 않으면 단순 경고에 그칠 것으로 예측됩니다. 지금부터 내년 상반기까지 아시아권에서 이렇다 할 대회가 없기 때문에 설사 징계가 내려진다해도 실효성이 거의 없는 셈입니다.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에게 황당한 폭행을 저지른 선두어가 사실상 '면죄부'를 받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김혜진은 자신보다 키가 13cm나 큰 181cm 장신 선두어의 발에 복부와 명치 부분을 2차례 가격당한 뒤 억울함과 아픔을 참고 곧바로 여자 평영 50m에 출전했지만 예선 탈락하고 말았습니다. 스포츠선수로서는 있을 수 없는 폭행을 저지른 선두어에 대한 합당한 처벌이 내려지지 않으면 김혜진을 두 번 울리는 것이 됩니다. 한국 선수를 보호하고 정당한 권리를 지키는 것은 대한체육회와 대한수영연맹의 당연한 의무입니다.

<다음은 8월 24일 대한체육회 공식 입장 전문>

8월 23일 일부 매체의 '수영대표 김혜진, 중국 선수에 보복 폭행당해' 관련 보도에 대해 당시 사건개요와 대한체육회의 조치사항을 알려드립니다.

-23일 오전 자카르타 겔로라 붕 카르노 수영장에서 훈련하던 중 김혜진 선수가 뒤 따르던 중국의 선둬(Duo Shen) 선수의 가슴 부위를 의도치 않게 발로 차게 되었음. 김혜진 선수는 즉각 선둬 선수에게 사과를 하였으나, 선둬 선수는 레인 끝까지 쫓아와 손으로 김혜진 선수의 발목을 잡아 내리고 물속에서 김혜진 선수의 배를 발로 두 차례 가격함.

-김혜진 선수는 바로 훈련장에서 나와 우리 대표팀 코치와 함께 선둬 선수에게 지속적인 사과를 요청하였고 중국대표팀에 대해 정식으로 항의하겠다는 의사를 밝힘.

-이후 중국 대표팀 코치가 선둬 선수와 함께 대한민국 선수단(선수촌)을 방문하여 직접 사과의 뜻을 밝힘. 대한체육회와 우리 대표팀 코치는 김혜진 선수의 의견을 반영하여 중국 선수에게 사과를 받아줄 수 없으며, 우리 선수가 원하는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고 대응함.

-23일 22시 선수촌 3층 경기사무실에서 대한체육회, 김혜진 선수, 코치와 함께 대응방향에 대해 재논의함. 김혜진 선수가 중국 선수의 스포츠맨십에 어긋나는 폭행에 대해서 처벌을 원한다는 의사를 밝혀, 대한체육회는 24일 해당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를 OCA와 조직위원회에 요청하고 폭행 사실이 확인 될 시, 향후 비슷한 사건의 재발 방지를 위하여 적법한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