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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외할머니는 왜 '外할머니'인가요"…성차별 언어들,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송욱 기자 songxu@sbs.co.kr

작성 2018.09.08 09:00 수정 2018.09.08 15:39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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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리포트+] "외할머니는 왜 外할머니인가요"…성차별 언어들,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리포트+] '외할머니는 왜 '外할머니'인가요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단어 중에 '성차별 언어'가 있다는 것을 아시나요? 저출산, 유모차, 처남 등 일상에서 자주 사용해왔던 말들도 사실은 남성 중심의 성차별 언어입니다. 여성가족부(이하 여가부)는 지난달 31일, 양성평등 관점에서 가족 제도와 문화를 개선하는 내용을 담은 '제3차 건강가정기본계획'을 보완해 발표했습니다.

정부는 남편의 동생을 '도련님', '아가씨'로 높여 부르는 반면 아내의 동생은 '처남', '처제'로 낮춰 부르는 관행을 고쳐나갈 계획인데요. 또 지난 6월부터 여가부는 성차별 언어문화를 개선하기 위한 실태조사를 진행 중입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 자리 잡은 성차별 언어들,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바꿔나갈 수 있을까요?

■ 외(外)할머니는 '바깥 할머니'? 자연스럽게 썼던 가족 내 호칭, 알고 보니…

가족 내 쓰이는 호칭 중에는 남성 중심적인 표현이 많습니다. 남편의 집안은 '시댁(媤宅)'으로 높여 부르는 반면, 아내의 집안은 '처가(妻家)'로 부르는 것은 대표적인 성차별 용어 중 하나입니다. 또 양가의 조부모님을 부를 때도 남성 중심적인 분위기가 나타납니다. 아버지의 부모 호칭은 '친(親)할머니' 또는 아무것도 붙이지 않은 '할아버지'인 반면, 어머니의 부모를 부를 때는 '바깥 외(外)'를 붙여 외(外)할머니, 외(外)할아버지라고 구분 짓죠.
[리포트+] '외할머니는 왜 '外할머니'인가요남편이 아내를 '집사람', '안사람' 부르는 것도 '여성은 주로 집 안에 있는다'는 사고를 바탕으로 하는 호칭이기 때문에 성차별적인 호칭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가족 내 남성 중심 호칭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서울시여성가족재단 강경희 대표는 SBS 시사라디오 프로그램 '김성준의 시사전망대'에서 "우리에게 내재돼 있는 가부장적인 사고와 문화가 가장 큰 문제"라며 "이런 호칭을 바꾸려면 문화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 '유모차','처녀작' 일상에 퍼진 성차별 언어들…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가족을 벗어나 사회 곳곳에서 쓰이는 성차별 언어들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은 각종 직업에 여성을 의미하는 '여'를 붙여 사용하는 여직원, 여의사, 여군, 여경 등의 단어입니다. 일반적으로 남성이 해당 직업을 가진 경우에는 '남'자를 붙이지 않는데, 여성의 경우만 구분 지어 언급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지난 7월 서울시는 시민 공모를 통해 '성 평등 언어 사전'을 발표했는데요. 시민 의견 중에는 '일이나 행동 등을 처음 한다'는 의미로 단어 앞에 붙이는 '처녀'를 '첫'으로 바꾸자는 제안도 나왔습니다. '처녀작', '처녀출판'이라는 말은 있어도 '총각작', '총각출판'이라는 단어는 쓰지 않기 때문에 그냥 첫 작품, 첫 출판, 첫 출전으로 바꿔 써야 한다는 겁니다.

유모차를 유아차로 바꿔 쓰자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어머니 모(母)'만 들어가는 '유모차(乳母車)' 대신 평등 육아에 좀 더 가까운 '유아차(乳兒車)'로 부르자는 것이죠. 또 인구 문제의 원인을 여성에 맞추는 '저출산(産)' 대신 '저출생(生)'으로 바꾸자는 제안도 등장했습니다.

성차별 용어 중에는 특정 성이나 세대를 비하하는 언어들도 있습니다. '한남충'(한국 남자를 벌레에 비유한 속어), '개저씨'(중년 남성을 비하하는 뜻의 단어), '김여사'(운전에 서툰 여성을 비꼬는 용어) 같은 단어인데요. 이런 단어들은 사용 자체를 지양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 10여 년 전에도 '평등한 호칭 캠페인' 진행돼…"심도 있는 논의 필요"

사실 성차별 용어를 바꾸자는 논의는 10여 년 전에도 나왔습니다. 2006년에는 한국여성민우회에서 가족 내 평등한 호칭문화를 도입하자는 캠페인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대중의 관심과 부족했고, 먼저 나서서 호칭을 바꿔 부르는 실천 의지도 높지 않아 흐지부지됐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미투, 위드유 운동을 시작으로, 성 평등에 대한 관심을 넘어 성차별 언어를 줄이는 등 구체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지난해 국립국어원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남편의 동생은 '도련님', '아가씨'라고 부르는 관행의 개선 필요성에 대해 "개선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65.8%에 달했습니다.

언어뿐만 아니라, 여가부는 남성중심적 가족 문화를 평등하게 바꿀 수 있는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는데요. 아이의 의견에 따라 성 씨를 바꾸도록 하는 방안과 빨래, 청소 등 무급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를 평가하는 통계지표인 '가계생산 위성계정'도 마련할 예정입니다.
[리포트+] '외할머니는 왜 '外할머니'인가요(기획·구성: 송욱, 장아람 / 디자인: 감호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