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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여자농구 맏언니 임영희 "단일팀 잊지 못할 추억…실감이 안 나요"

주장 임영희가 들려주는 여자농구 단일팀 뒷이야기

[취재파일] 여자농구 맏언니 임영희 "단일팀 잊지 못할 추억…실감이 안 나요"
이번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여자 농구 남북 단일팀은 값진 은메달을 수확하며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남과 북이 힘을 합쳐 구기 종목 사상 첫 종합 대회 메달을 획득했습니다. 8월 2일부터 한 달 남짓이라는 짧은 기간 손발을 맞춘 점을 감안하면 값진 성과입니다. 성적도 성적이지만 하나로 똘똘 뭉쳐 나날이 발전해가는 과정 또한 아름다웠습니다. 그 중심에는 한국 나이로 올해 39살인(1980년생) 맏언니이자 주장 임영희 선수가 있었습니다. 남측 9명, 북측 3명 등 12명 선수 모두에게 그렇겠지만 임영희에게는 특히 잊지 못할 추억이었습니다. 아시안게임을 마치고 지난 4일 귀국한 임영희를 그 다음날인 5일 만났습니다. 지난 한 달 간 단일팀 여정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모습이었습니다.

"북측 선수들과 헤어진 게 아직 실감이 안 나요. 내일 운동 나가면 북측 선수들도 같이 있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이고. 그런데 오늘 진천선수촌에 들어가서 내일 훈련할 때 그 선수들이 안 보일 때 허전한 생각이 들지 않을까 싶어요."

임영희에게도 그동안 북한은 '미지의 세계'였습니다. 그래서 7월 평양에서 열린 통일 농구 대회, 8월 진천 선수촌에서의 합동 훈련, 그리고 아시안게임 출전까지 일련의 과정은 지금도 꿈만 같습니다.

"7월 평양에서 통일 농구 대회 할 때 그 때가 모든 게 처음이었어요. 북한을 방문한 것도 처음이었고. 북측 선수들을 작년에 인도에서 열린 아시아컵에서 보기는 했는데 서로 이야기를 하거나 교류를 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만나서 이야기했던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던 거죠. 7월에 평양에 갔을 때 얼굴을 많이 익혔어요. 3일 동안 있으면서 매일 저녁을 같이 먹었는데 일단 농구라는 공통분모로 만났던 자리여서 서로 대화도 잘 통했어요. 북한을 처음 접하고, 북한에 가서 신기한 것도 많았고 '아 이렇구나' 이런 게 많았는데 그래도 똑같이 사람 사는 곳이고, 특히 저희는 농구로 만나서 운동 얘기 많이 하고 금방 친해져서 잘 얘기하고 분위기가 좋았어요. 그래서 8월에 북측 선수들이 진천 선수촌에 선수들이 왔을 때 어색하거나 서먹함 없이 바로 잘 지낼 수 있었어요."

1980년생인 임영희는 북측의 막내인 김혜연(1998년생)과는 18살이나 차이가 났습니다. 그래도 격의 없이 지내며 벽을 허물었다고 말했습니다.
[취재파일]여자농구 맏언니 임영희 '단일팀 잊지 못할 추억..실감이 안 나요
"호칭은 당연히 언니라고 했는데. 처음에 왔을 때 장난으로 다들 이모라고 부르라고 장난했는데 다 언니 동생으로 잘 지냈어요."

Q) 북측의 로숙영, 장미경, 김혜연 선수는 각각 어떤 성격이었나요?

"세 명 다 착한데 숙영이 같은 경우 제일 순수했던 것 같아요. 혜연이는 제일 어린 선수였는데 경기 출장을 많이 안 했지만 저희랑 제일 장난을 많이 쳤고, 미경이는 당찬 스타일이었어요. 3명 모두 너무 잘 지내서 한 달 정도 밖에 안 됐는데도 굉장히 많이 친해졌어요. 셋 다 냉면을 좋아했는데, 진천선수촌에서 하루는 점심 메뉴로 냉면이 나왔어요. 세 선수 모두 너무 맛있다며 좋아하더라고요."

Q) 셋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선수는 누구인가요?

"세 명 다 너무 착하고 잘 따라주고 했는데, 혜연이가 가장 기억에 남네요. 마지막에 헤어질 때 제가 '혜연아 잘 가' 했더니 바로 울더라고요. 그래서 마음이 많이 쓰이더라고요. 혜연이가 막내인데 막내가 우니까 저 뿐만 아나리 다른 선수들도 다 마음 아파했어요."

Q) 북측 선수들과 농구 외적으로도 많은 대화를 나눴나요?

"저희가 7월에 평양 농구 대회에 가기 전에 교육을 많이 받았어요. 예를 들면 '북한'이라고 하면 안 되고 '북측'이라고 해야 한다, 호칭은 ○○○ 선생이라고 해야 한다 등이요. 그래서 처음에는 말을 조심스럽게 할 수 밖에 없었어요. 저희는 장난으로 얘기하지만 북측 선수들은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같이 지내면서 점점 개인적이고 소소한 얘기들도 편하게 나누게 됐어요.

제가 결혼했다고 하니까 숙영이가 제 남편 사진 보여달라고 해서 보여주고, 저도 숙영이한테 '남자 친구 있어?' 이런 것도 물어보고. 그리고 북측 선수들이 저희들이 스마트폰으로 언론 기사 보고 영상 보는 모습을 되게 신기해하더라고요. 이번 대회에서 로숙영 선수에 관한 기사가 많이 났잖아요. 그래서 숙영이한테 기사도 보여주고 인터뷰하는 영상도 보여주고 하니까 신기하고 재밌어하더라고요. 숙영이는 남측 방송사와 인터뷰하는 것을 처음에는 굉장히 꺼려하고 어색해했어요.

북측에서 곁에서 지켜보는 사람도 있고 인터뷰가 익숙하지 않아서요. 이문규 감독님과 코치님이 괜찮으니까 짧게라도 하라고 해서 인도네시아와 1차전 끝나고 한 거예요. 그 때 숙영이는 '오늘 멋진 경기 못 보여드려서 죄송합니다. 다음 경기에서 오늘보다 더 멋진 경기 보여 드리겠습니다.'라는 말만 연발했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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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진천선수촌과 자카르타 선수촌에서 북측 선수들과 생활을 어떻게 했나요?

"생활은 북측에서 온 선수들이 따로 충주에 선수들이 생활할 수 있는 곳이 마련되어서 그 곳에서 생활했어요. 아침에 진천선수촌으로 와서 오전, 오후 훈련을 하고 저녁에 돌아가고 이런 생활을 계속 했어요. 점심 정도만 같이 먹을 수 있었고 저녁은 돌아가서 북측 선수들끼리 먹고 그래서 운동 외적으로 얘기할 수 있는 시간이 없어서 그런 부분이 아쉬웠던 것 같아요. 자카르타 선수촌에서는 아파트 건물 7개 동이 있었는데 저희는 5동, 북측 선수들은 4동을 써서 건물이 달랐어요. 아침 먹을 때 식당 앞에서 만나 같이 밥 먹고 훈련 갈 때는 4동과 5동 중간에서 만나서 같이 훈련장으로 갔어요. 훈련이 끝나면 밥 먹고 헤어져서 각자의 방으로 가고 이렇게 했어요. 그래서 서로 방에 가서 얘기를 할 수 있는 여건은 안 됐어요. 훈련할 때랑 밥 먹는 시간 정도만 함께 할 수 있었어요."

Q) 북측 선수들과 작별 인사할 때 다들 눈물을 참는 모습이더라고요?

"헤어지기 전에 선수촌에서 마지막 점심 식사를 같이 했는데 그 때 미리 다 울었어요.(웃음) 그 때 다들 울컥했고, 우는 선수들도 많았어요. 그래도 한 달 후면 서울에서 열리는 통일 농구 대회에서 다시 볼 수 있기 때문에 울지 말고 웃으며 헤어지자고 했어요. 그런데 다음 달에 헤어질 때는 정말 슬플 것 같아요. 그 때는 언제 다시 만날지 기약이 없잖아요."

Q) 북측 선수들과 헤어지면서 선물은 주고 받았나요?

"저희도 솔직히 이거저거 선물도 많이 해주고 싶었는데 '이거하면 안 된다 저거하면 안 된다' 이런 제재가 너무 많더라고요. 그래서 간단히 양말 정도만 선물했어요. 그리고 북측 선수들이 자기네 유니폼에 싸인해달라고 해서 싸인해주고요. 그 정도 밖에 특별하게 해줄 것이 없어서 많이 아쉬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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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한 달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북측 선수들과 정이 참 많이 든 것 같아요?

"네. 진짜 많이 든 것 같아요. 저희가 몸으로 하는 스포츠다 보니까. 서로 말로만 이렇게 얘기하는게 아니라 저희끼리 훈련할 때도 몸을 서로 부딪히고 터치 이런 게 많고 그러다보니까 그런 걸로도 정이 많이 들더라고요."

Q) 주장으로서 팀을 하나로 뭉치게 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요?

"제가 특별하게 한 건 없다고 생각하는데 선수들이 잘 따라와줬어요. 저 뿐만 아니라 저희 남측 선수들도 북측 선수들이 진천에 왔을 때 우리 쪽으로 온 거기 때문에 저희가 더 많은 도움을 줘야 되고 더 많이 알려줘야 되고 이런 게 있다 보니까 저 뿐만 아니라 다들 진심을 다해서 알려주고 하나라도 더 알려주려고 노력했어요. 북측 선수들도 워낙 착하고 저희를 잘 따랐기 때문에 하나를 얘기해도 금방금방 알아듣고 이해하더라고요. 진심을 다해서 대하다 보니까 그게 하나로 뭉치는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농구 용어도 달라서 처음에 서로 배우려고 노력했어요. 저희는 거의 다 영어인데, 북측에서는 영어를 안 쓰잖아요. 그래서 메모지에 용어들을 적어서 외워서 했어요. 예를 들면 패스를 연락, 스크린을 차단이라고 하더라고요. 이문규 감독님도 설명할 때 북측 선수들이 못 알아들으면 북측 말로 다시 설명해주고요. 그래도 금방 적응을 해서 경기에서는 별 어려움이 없었어요.

Q) 이번에 단일팀으로 출전해서 따낸 은메달은 임영희 선수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

"4년 전 인천아시안게임에서 딴 금메달과 비교해봤더니 이번 은메달이 크기도 크고 더 무겁기도 하더라고요. 이게 노란색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요.(웃음) 시간이 흐른 뒤에 이 은메달을 봤을 때 다시 숙영이나 미경이나 혜연이가 또 떠오를 수 있는 시간이 될 것 같아서 저한테는 좋은 추억이 될 것 같은 은메달인 것 같아요. 정말 값진 은메달인 것 같아요."

내년이면 우리나이로 마흔이 되는 임영희는 WKBL 현역 선수 가운데 최고령입니다. 그래도 여전히 강철 체력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도 중국과 결승전에 거의 풀타임을 뛰며 24득점으로 최다 득점을 기록했습니다. 그래서 혹시 2년 후 도쿄올림픽에 또다시 남북 단일팀이 성사되면 출전할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는데, 손사래부터 쳤습니다.


"그 때는 제가 은퇴를 하고 WKBL에 없지 않을까 생각해요. 솔직히 도쿄 올림픽은 정말 생각도 안 해봤어요. 제가 팀 후배 박혜진한테 도쿄올림픽 나가면 언니가 응원갈게 이런 얘기를 했었거든요. 도쿄 올림픽까지는 정말 생각도 안 해 본 것 같아요. (웃음) 30대 초반에는 잘 못 느꼈지만 지금은 한 해 한 해 체력적으로 달리고 힘들구나 하는 것을 느껴요. 지난 시즌 끝났을 때도 은퇴를 고민했는데 위성우 감독님과 상의해서 1년 정도 더 해보자해서 계속하게 된 거에요. 그런데 2-3년 전부터 '1년만 하자' 이런 생각으로 지금까지 온 것 같아요. 딱 이번 시즌 끝나면 은퇴해야지 결정한 건 아니지만 작년에도 솔직히 작년 시즌 끝나고 은퇴하자 이런 생각으로 뛰었거든요. 올해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이번 시즌 끝나고 은퇴를 하게 될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2-3년전부터 그런 생각을 가지고 지금까지 온 것 같아요."

임영희는 인터뷰를 마치고 바로 진천 선수촌으로 향했습니다. 휴식도 없이 오는 22일부터 스페인 테네리페에서 열리는 여자 농구 월드컵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월드컵을 마치고 돌아와 다음달 초 서울 통일 농구 대회에서 북측 선수들과 반가운 재회를 하게 됩니다.

"이번에 헤어지면서 다음달에 서울에 올 때 맛있는거 많이 챙겨오라고 했어요. 숙영이와 혜연이 미경이도 그 때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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