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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DF X 김동식] 악한 사업 1편

D포럼, 김동식 작가 신작 단독 연재

[SDF X 김동식] 악한 사업 1편
※ SBS 보도본부는 지식나눔 사회공헌 프로젝트인 "SBS D 포럼(SDF)"의 연중 프로젝트 중 하나로, 김동식 작가와의 단독 단편소설 연재를 진행합니다.

SDF2018의 올해 주제는 "새로운 상식-개인이 바꾸는 세상".김동식 작가 본인이 이 주제에 부합하는 인물인 동시에 작품을 통해서도 같은 주제를 고민해온만큼, SDF는 11월 1일 오프라인 포럼 전까지 SBS 사이트를 통해 작품 10편을 소개할 예정입니다.


" 김남우가 이제 곧 깨어날 시간입니다. "

" 오늘 그가 과연 담배를 몇 대나 피게 될지 기대되는군요. "

한눈에 보아도 지구상에 존재하는 인테리어와는 다른 은빛의 회의실. 그러나 이곳은 지구가 맞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모조리 최첨단 스마트 기계로 이루어져 있을뿐.

이곳에 테이블을 두고 앉은 열댓 명의 사람들이 벽면 스크린에 집중하고 있다. 영상 속에는 이불을 제멋대로 덮고 자는 사내, 김남우가 있었다. 자신이 관찰당하는 줄은 꿈에도 모르고 코까지 골며 깊은 잠에 빠져있다.

여유로운 열댓 명의 사람 중, 혼자 긴장하고 있던 젊은 사내가 근처 중년 사내에게 물었다.

" 지구의 경제를 마음대로 좌지우지 할 수 있는 분들이, 왜 고작 이런 방식을 사용하는지 저는 아직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

하얀 수염을 멋들어지게 기른 아랍풍 차림의 중년 사내가 혀를 차며 답했다.

" 자네 아버지가 설명해주지 않던가? 쯧. 자네 아버지가 은퇴 준비 중이라더니, 급했군. "

눈살을 찌푸린 젊은 사내가 다시 말했다.

" 하지만 너무, 어이가 없지 않습니까? 여기 계신 분들의 면면들을 보면 지구가 몇 번은 뒤집어지고도 남을 분들이신데, 그분들의 5년이 고작 저놈이 피우는 담배에 걸려있다뇨? "

젊은 사내는 이 시스템을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 저 김남우의 머릿맡에 있는 담뱃갑에는 특수 담배가 들어 있었다. 담배 개비마다 각각 가문에서 원하는 이권이 걸려 있었는데, 김남우가 오늘 하루 동안 피운 담배의 주인들만이 앞으로 5년간 사업할 수 있었다. 아마존 밀림 벌목, 마약 유통, 석유 시세 조율, 탄소배출권, 아프리카 전쟁 등등, 이런 어이없는 도박에 걸기에는 너무나도 커다란 이권들이었다.

중년 사내가 사람들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 아마존 밀림 벌목이나 마약 유통이나 뭐나, 죄다 인류의 미래를 갉아먹는 사업들이야. 우리 모두 해서는 안 된다고 동의하지만, 그 막대한 이윤을 쉽게 포기할 수 있겠나? 불가능하지. 서로 몰래 노리는 걸 알아. 그런데 여기 어디 하나 만만한 사람이 있나? 우리가 괜히 힘 싸움을 한다면 서로에게 손해만 볼 뿐이야. 그렇다고 토론을 한다면 어때? 이 양반들이 서로 이권을 양보하겠어? 종일 결정이 안 날 거야. 전쟁을 할 게 아니라면, 결국 제비뽑기가 가장 좋은 방식이라는 결론이 난 거지. 이 비밀 모임이 생긴 이후로 내려온 전통이다. "

" 하지만 이런 방식은 너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왜 하필 저런 놈의 담배 따위에 거는 겁니까? "

" 모르는군. 저 별 볼 일 없는 놈이 아주 어마어마한 과정의 산물이야. 우연에, 우연에, 우연에, 우연을 거듭해야만 모두가 이건 운명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선택된 인간이지. 저놈이 피우는 담배로 결정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과정이 있었는지 아나? 특정 지하철의 지정된 자리에 44번째로 앉은 사람이고, 그 지하철은 전 세계에서 이 일주일간 두 번 사고가 난 유일한 지하철이었고, 44번째라는 숫자는 캘리포니아 어느 동물원의 거북이가 낳은 알의 개수고, 거북이는 일본 신문의 문학상 수상작 본문에서 가장 처음으로 나온 동물이 거북이였고, 그 신문이 정해진 건 이번 트럼프 스캔들을 100번째로 보도한 신문이었기 때문이고 등등...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는 우연의 끝에 정해진 운명의 사내가 바로 저 놈이다. "

" 으음. "

" 이 쟁쟁한 인물들이 납득하려면 그 정도의 운명 끝에 결정되어야만 하는 거지. 5년간 세상을 좀먹으며 떼돈 벌 기회를 얻으려면 말이다. "

중년 사내는 시가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며 웃었다.

" 사전조사에 의하면 저 친구가 하루 평균 반 갑의 담배를 피운다더군. 조금 아쉽지만, 생각해보면 재미있는 일이야. 오늘 평소보다 한 개비를 더 필까? 덜 필까? 담배 한 개비마다 천문학적인 금액이 왔다 갔다 한다는 걸 저 친구는 꿈에도 모르겠지. "

" 모르니까 더 불안하지 않습니까? 얼마가 걸린 이권인데 굳이 이렇게 "

" 간단히 생각해. 사실상 지구를 운영한다고 자처하는 양반들에겐 품위가 중요하거든. 어떻게든 쉽게 돈은 벌고 싶지만, 인류 지도층으로서 최소한의 양심을 지킨다는 모양새를 갖추고 싶은 거지. "

" 아, 음. "

시가를 빨아들인 중년 사내가 스크린 속 김남우를 돌아보며 말했다.

" 시간이 됐군. 사전조사에 의하면 이제 저 친구 깨어나자마자 담배 한 개비로 하루를 시작할 거야. 과연 누가 가장 먼저 당첨될까? 우리 전통으로 첫 번째 당첨자가 선물을 돌리기로 되어 있는데. 아, 시작됐군. "

스크린 속 김남우의 방에서 핸드폰 알람이 울리자마자 모두의 시선이 스크린으로 향했다. 한데 얼마 안 가 그들은 당황했다.

" 뭐야? 저놈 왜 안 일어나? "

간밤 야근에 철야까지 한 김남우가 깨어난 건 30분이나 지나서였다. 시계를 확인하며 사색이 된 김남우는, 씻지도 않고 대충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지켜보던 이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 이런 씨! 담배를 두고 갔잖아! "

" 저 저 망할? "

눈살을 찌푸린 젊은 청년이 옆의 중년 사내에게 말했다.

" 예상하셨던 아침 담배는 물 건너 갔군요. 그러면 만약, 저놈이 하루에 한 개비도 안 피우면 어떻게 됩니까? "

" 으음.... 앞으로 5년간 아무도 그 사업을 하지 못 하겠지. 5년간은 누구도 허락되지 않을 거야. "

" 그럼 안 되는 것 아닙니까? "

" 이 전통은 절대적 규칙이야. 그러나 그럴 일은 없을 거다."

악한 사업 1편 아이콘

[김동식 작가의 다음 소설은 9월 6일 오전 11시 30분 업로드 됩니다.]

김동식 작가 연재 소설 모두 보기 → http://www.sdf.or.kr/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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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식 작가 소개 바로 가기 → http://www.sdf.or.kr/story/wr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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