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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준의시사전망대] "108년째 안중근 유언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인터뷰 자료의 저작권은 SBS 라디오에 있습니다. 전문 게재나 인터뷰 인용 보도 시, 아래와 같이 채널명과 정확한 프로그램명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 방송 : 김성준의 시사전망대 (FM 103.5 MHz 18:05 ~ 20:00)
■ 진행 : SBS 김성준 앵커
■ 방송일시 : 2018년 9월 3일 (월)
■ 대담 : SBS 정성엽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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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중근 의사 "고국으로 이장해달라" 유언
- 144일 동안 뤼순 감옥 수감 생활
- 日, 안중근 의사 유해 비밀리에 매장…장지 항일 운동 성지 될 것 우려
- 안중근 의사 사형 집행 기록, 자세히 남아있어
- 당시 감옥 공동묘지 위치 관련 자료 없는 상황
- '둥산포' 유해 발굴 작업 안 해…현재 유일한 후보지
- 중국, 북한과 합의하면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 협조하겠단 입장


▷ 김성준/진행자:

어제(2일)가 안중근 의사 탄생 139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지난 1909년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뒤 안 의사는 뤼순 감옥에서 1910년, 31살의 젊은 나이로 순국했습니다. 죽음을 앞둔 보름 전에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 공원 곁에 나를 묻어뒀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면 고국으로 이장해 달라. 이런 유언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후손들은 지금까지 안 의사의 유해조차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올해 광복절에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한 공동발굴을 추진하겠다면서 다시 안 의사의 유해를 찾겠다는 의지를 보였죠. SBS 정성엽 베이징 특파원이 뤼순 감옥 현장을 최근 다녀왔습니다. 안 의사 유해 발굴 상황과 유해 발굴에 앞서 우선 해결되어야 할 과제는 무엇인지 알아보겠습니다. 정 특파원.

▶ SBS 정성엽 베이징 특파원:

네. 안녕하십니까.

▷ 김성준/진행자:

뤼순 감옥에 언제 다녀오셨습니까?

▶ SBS 정성엽 베이징 특파원:

지난 주말에 3박 4일 일정으로 다녀왔습니다.

▷ 김성준/진행자:

뤼순 감옥이 정확하게 중국 어디에 있는 거죠?

▶ SBS 정성엽 베이징 특파원:

북한 신의주 위쪽이 중국의 랴오닝성인데요. 랴오닝성 남단에 랴오닝 반도라고 있습니다. 우리가 역사책에서 요동반도라고 많이 얘기했던 지역인데. 그 쪽 바닷가에 다롄 시가 있고요. 뤼순은 행정구역상 다롄 시에 속해있는 지역인데. 다롄 도심에서 자동차로 1시간 정도 바닷가 쪽으로 더 가면 나옵니다. 뤼순은 지금도 중국의 해군기지로 이용되는 곳인데요. 이곳에 일본 제국주의의 뤼순 감옥이 당시 있었고, 지금은 역사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 김성준/진행자:

우리 독립문 앞에 있는 서대문 공원 같은 경우겠네요.

▶ SBS 정성엽 베이징 특파원:

그렇습니다. 비슷합니다.

▷ 김성준/진행자:

뤼순 감옥에서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 것을 우리가 정확하게 날짜와 사실관계까지 다 알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해를 찾지 못한다는 것에 대해 많이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있거든요. 설명 좀 해주시겠어요?

▶ SBS 정성엽 베이징 특파원:

안중근 의사는 1909년 11월 3일부터 1910년 3월 26일 순국하실 때까지 144일 동안 뤼순 감옥에서 수감 생활을 했었습니다. 사형 집행 날짜가 원래는 3월 25일이었는데, 그 날이 순종 황제의 생일이어서 하루 미뤘다는 기록도 남아있습니다. 당시 감옥법에 따르면 사형에 집행된 유해는 가족들에게 인도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당시 일본 제국주의는 안 의사 유해를 인도하지 않았고 비밀리에 매장해버렸습니다. 안 의사의 장지가 항일 운동의 성지가 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내린 조치라고 볼 수 있습니다.

▷ 김성준/진행자:

그렇다면 일단 안 의사의 행방은 모르지만. 일본 측에서 안 의사의 유해를 일부러 없앤 것이다, 일부러 숨긴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네요.

▶ SBS 정성엽 베이징 특파원:

그렇습니다. 안중근 의사 사행 집행 기록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당시 관동도독부 사형 집행 보고서가 남아있는데요. 이 보고서에 따르면 안중근 의사는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에 뤼순 감옥 내 형장에서 사형이 집행됐었습니다. 좀 더 정확하게 10시 15분쯤에 순국한 것으로 나오고요. 10시 20분쯤에 감옥 내 교회실이 있었는데, 이 안 의사 시신은 일반 사형수들이 할 수 있는 원통형 관이 아니라 네모난 층관에 안치해서 오후 1시쯤 감옥소의 묘지에 매장했다.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 김성준/진행자:

그 정도면 생각보다는 상당히 구체적인 자료가 남아있는 건데. 몇 시에 감옥에 있는 묘지에 매장했다. 거기 찾아보면 되는 것 아닌가요?

▶ SBS 정성엽 베이징 특파원:

안중근 의사의 시신을 감옥소 묘지에 매장했다는 기록은 제가 방금 말씀드린 사형 집행 보고서에만 나오는 것이 아니고요. 당시 많은 신문에도 똑같이 언급이 돼 있습니다.

▷ 김성준/진행자:

언론 보도까지 된 거예요?

▶ SBS 정성엽 베이징 특파원:

그렇습니다. 어떤 신문은 감옥소 묘지라고 표현하기도 했고요. 또 어떤 곳은 감옥 공동묘지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감옥소 묘지, 감옥 공동묘지가 어디 있는지만 특정하면 되는데. 문제는 당시 감옥 공동묘지가 어디인지 정확하게 사료적인 증거로 남아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사료가 남아있지 않느냐. 그 이유는 1945년 일본이 패망하던 날 뤼순 감옥의 마지막 형무소장이었던 타고지로라는 사람이 3일 동안 뤼순 감옥 전체 자료를 전부 다 불태워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뤼순 감옥 공동묘지가 어디인지 정확하게 확인하기가 어려워진 겁니다.

▷ 김성준/진행자:

아니, 우리가 고대 왕의 무덤도 찾아내고 이러는데. 이것을 감옥의 소장이 모든 자료를 불태웠다 하더라도. 그 감옥에서 수형 생활을 했거나, 그 감옥에서 간수로 일했거나. 이런 사람들이 한두 명이 아닐 텐데. 그 사람들을 찾아내서 한 명이라도 묘지의 위치가 어디인지 알아내는 게 그렇게 어려울까요?

▶ SBS 정성엽 베이징 특파원:

그런데 그 때 당시에 감옥에서 일했던 사람들은 이미 대부분 사망을 했기 때문에. 그래서 전해 들어서 조금씩 증언이 남아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런 증언들을 바탕으로. 우리 정부가 지난 2008년에 뤼순 감옥 뒤쪽 일대에 약 3,000제곱미터 정도 되는 지역을 정밀 탐사했었거든요. 대대적인 발굴 작업을 했었습니다. 당시 그 지점을 특정한 근거는 안 의사 순국 당시에 형무소장의 딸이 제공한 사진과 증언을 바탕으로 발굴 조사를 했었습니다. 그 사람이 제공한 사진을 보면 화살표 하나가 표시되어 있는데. 그 자리가 안 의사 매장지라는 증언을 하면서 그 일대를 정밀 조사했던 겁니다. 하지만 사람의 유골은 발견되지 않았고요. 그릇 몇 통 정도 발견되었을 뿐입니다. 당시 발굴 예정 지역을 다 조사하지 못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만. 그 조사 못 한 지역이 현재 가보니까 군부대 안이여서 조사를 더 진행하기는 어려웠고요. 또 요즘 뤼순 감옥에 한국 관광객들이 연간 많게는 3만 명 이상, 5만 명까지도 찾으신다고 하는데. 2008년 당시 발굴한 이 지역을 찾아가보신 분도 분명히 계실 겁니다. 그런데 그 지역이 지금은 아파트 단지가 세워져 있고요. 당시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는 상태입니다.

▷ 김성준/진행자:

그렇군요. 우리 쪽만 이렇게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찾기 위해서 발굴 작업을 벌이고 그랬던 게 아니라고 하던데요. 중국 정부도 관여를 했던 기록이 있는 모양이죠?

▶ SBS 정성엽 베이징 특파원:

그렇습니다. 중국 정부도 아까 우리 정부가 2008년 발굴한 지역을 일부에서는 위안바오 산이라고 하는데. 산까지는 아니고요. 위안바오 산 가는 길 정도로 보시면 되는데. 그 위안바오 산 쪽으로 더 들어가서, 도보로 1km 정도 더 들어간 것 같은데요. 그 지역을 중국 정부가 2008년도에 조사한 적이 있었습니다. 거기가 고려인 묘지가 있었다는 현지인의 증언에 근거해서 조사를 했었는데. 역시 아무 것도 찾지 못했습니다. 누구의 말을 전해 듣고 일대를 파헤쳐본다는 것은 아무래도 유해를 발굴할 가능성이 희박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 김성준/진행자:

이것 참. 시간이 흐를수록 그런 증언이라도 해줄 수 있는 사람들 숫자는 점점 줄어들 텐데 참 걱정입니다. 뤼순 감옥 공동묘지라고 불리는 곳이 따로 있었다는 얘기도 있었는데.

▶ SBS 정성엽 베이징 특파원:

뤼순 감옥에서 동쪽으로 1.2km 정도 가다보면 중국어로 '샹양공원' 이라는 표지석이 나오는데. 그 공원으로 들어가면 야산으로 들어가는 입구였습니다. 그런데 당시 사람들이 이곳을 둥산포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둥산포라는 의미가 동쪽에 있는 산 언덕이다, 이렇게 해석할 수가 있을 것 같은데요. 이 둥산포에 1907년부터 1942년까지 사용한 뤼순 감옥 공동묘지가 있었다는 겁니다. 이 야산이 660제곱미터 정도 되는 일대가 뤼순 감옥 묘지였고, 또 그 위쪽으로 깊은 산 쪽으로는 일반인들도 공동묘지로 썼다고 하는데. 실제로 산 곳곳에 일반인들의 묘지를 쉽게 발견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 다롄 시 문물관리위원회도 지난 2001년에 이 지역을 뤼순감옥구지묘지(旅順監獄舊址墓地), 즉 뤼순 감옥 옛 묘지터라는 비석을 동산 안에 설치하고 지정을 해놨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2008년도에 우리 정부가 발굴했던 당시에도 이 둥산포가 뤼순감옥구지묘지라는 표지석이 이미 세워진 상태였다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당시 발굴팀은 이 둥산포 지역을 그냥 지나쳤습니다. 아무런 조사를 하지 않고요. 그런데 문제는 이 둥산포가 아까 말씀드린 대로 안중근 의사의 사형 집행 보고서에 언급된 뤼순 감옥 공동묘지인지는 사료로써 증명된 게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안 의사 유해 찾기 운동을 펼치고 있는 전문가들도 선뜻 안 의사 유해가 반드시 이곳에 묻혀있다고 단언하지는 못 하고 있는 상태인데요. 다만 이곳이 유일한 후보지이기 때문에. 이곳을 아무 것도 조사하지 않고 그냥 넘어갈 수 있느냐. 반드시 조사해야 한다, 이런 입장이었습니다.

▷ 김성준/진행자:

어쨌든 이름이 그렇게 돼 있으면 제 생각에도 당연히 조사는 해봐야 될 것이고. 비석이 있을 테니까 비석 이름 중에서 안중근 의사가 아닌 사람들 묘를 제외하고 나머지를 찾아보면 되는 것 아닌가 싶은데. 제가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만. 어쨌든 중국 정부도 이토 히로부미를 일제강점기에 암살한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발굴하는 작업에는 협조적이죠?

▶ SBS 정성엽 베이징 특파원:

2008년까지는 중국 정부에서도 우리 정부의 발굴 조사에 협조도 했었고요. 또 아까 말씀드린 대로 단독으로 조사를 하기도 했었는데. 2008년 발굴 실패한 이후에는 안중근 의사 유해 행방에 관한 확실한 문건이 나오기 전까지는 협조하기 어렵다. 그래도 그 동안 외교적 노력을 계속 해와서 지금은 남북한이 합의에 의한 정확한 유해 매장 지역을 특정해 와라. 그러면 협조하겠다. 이런 정도의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안중근 의사의 고향이 황해도 해주 출신이고, 어찌 됐건 중국의 입장이 이렇기 때문에. 안 의사의 유해 발굴을 위해서 중국 측의 협조를 이끌어내려면 북한과의 합의가 필요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고요. 또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 공동 발굴을 추진하겠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발언입니다.

▷ 김성준/진행자:

북한과의 합의야말로 어느 때보다 지금 오히려 가능성이 더 높은 시점이니까 좀 더 서둘러야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알겠습니다. 여기까지 얘기 듣겠습니다. 지금까지 SBS 정성엽 특파원이었습니다. 수고했습니다.

▶ SBS 정성엽 베이징 특파원: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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