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조현병은 마음이 아니라 ○○의 병이다

임태우 기자 eight@sbs.co.kr

작성 2018.09.02 09:21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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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자 A 씨: "수돗물에서 설탕물이 나오고 있어요. 서울 수도 회사에 전화했더니 내부 문제라고 알아서 해결하래요. 지금 좀 도와주세요. 그리고 지금 제 휴대전화에 도청 장치가 설치돼 있는 것 같아요. 저를 따라다니는 남성 스토커도 있고요. 벌써 두 번이나 제 뒤를 쫓다가 도망치는 걸 봤어요."

● 환자 B 씨: "팬들이 자꾸 절 따라다녀요. 택시기사로 가장하기도 하고, 스토킹, 도청, 해킹까지 해가면서 제 개인정보를 빼가요. 이사해도 위치 추적까지 당했어요. 어떤 팬은 지금 이사한 곳을 알아내 절 쫓아오더니 머리카락을 뽑고 도망갔어요. 저를 사랑한다고, 닮고 싶다고 소리치고 도망간 팬도 있어요. 알만한 대기업 대표들이 다 제 팬들이에요. 그 때문에 연예 전문지 기자들조차 절 자꾸 따라다녀요."
[취재파일] 조현병은 마음이 아니라 ○○의 병이다조현병의 대표적인 두 가지 증상이 있습니다. 바로 망상과 환각입니다.

망상은 사실이 아닌 것을 확신을 가지고 믿는 것입니다. 누군가 나를 해치려 한다고 믿는 '피해망상'이나 지나가는 사람들이 내 얘기를 수군댄다고 믿는 '관계망상'으로 나타나곤 합니다.

환각은 다른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는 감각을 경험하는 겁니다. 여러 사람이 자신에 대해 얘기하는 내용의 소리를 듣는 '환청'이 가장 흔합니다.

이밖에 무더운 날에 옷을 여러 겹 껴입는 이상한 행동을 보이거나 갑자기 감정 표현이 없어지고 말수나 행동이 줄어드는 증상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최근 5년 진료비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조현병으로 진료를 받은 환자 수가 2012년 10만 980명에서 2017년 10만 7천662명으로, 약 7% 증가했다고 밝혔습니다.
성별로 살펴보면 남성은 2012년 48,751명에서 2017년 50,129명으로, 여성은 2012년 52,229명에서 2017년 57,533명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제공)얼핏 조현병 환자 수가 늘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그건 사실은 아닙니다. 통계상 환자 수가 증가한 것은 조현병 치료에 대한 인식 개선 등으로 의료기관에서 치료받은 환자가 늘어난 것으로 해석하는 게 타당합니다.

조현병은 지리, 문화적 차이에 상관없이 전 세계적으로 100명당 1명 꼴로 일정하게 나타납니다. 우리나라에는 50만 명의 환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중에 10만 명 정도가 치료를 받고 있으니, 나머지 40만 명은 아직도 스스로 조현병인 줄 모르거나 방치돼 있을 걸로 보입니다.

도대체 조현병은 왜 걸리고,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 것일까요?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의 이정석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에게 궁금증들을 물어봤습니다.

▷ 조현병이 대체 뭔가요?

▶ '조현병'은 2011년 정신분열병에서 이름이 바뀐 겁니다. 당시 정신분열병이나 정신분열증이란 병명이 사회적으로 이질감과 거부감을 준다는 이유에서 개명한 겁니다.

조현(調鉉)은 사전적인 의미로 현악기의 줄을 고르다는 뜻입니다. 조현병 환자의 모습이 마치 현악기가 정상적으로 조율되지 못했을 때처럼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인다고 해서 붙었습니다.

조현병은 망상, 환청, 와해된 언어, 정서적 둔감 등의 증상과 더불어 사회적 기능에 장애를 일으킬 수도 있는 질환입니다. 예후가 좋지 않고 만성적인 경과를 보여 환자나 가족들에게 상당한 고통을 줍니다.

▷ 조현병은 왜 걸리는 건가요, 발병 원인이 있나요?

▶ 대체로 생물학적인 원인이 큰 것으로 봅니다. 유전적인 경향도 있고, 뇌에서 구조적인 이상이 발견되기도 합니다. 충동, 감정, 욕구 등을 조절하거나 억제하는 전두엽이나 변연계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거죠. 도파민을 비롯한 신경전달 물질의 이상도 또 다른 원인으로 꼽힙니다.

따라서 조현병을 단순히 '마음의 병'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이정석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조현병을 '마음의 병'이라기엔 무리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조현병에 걸렸을 때 주로 망상이나 환각에 시달리는 이유는 뭔가요?

▶ 조현병 환자들은 대체로 쾌감과 활력을 느끼게 하는 뇌의 전달 물질인 도파민 수치가 높습니다. 필로폰을 맞으면 이 도파민이 치솟는데, 조현병은 그런 상태랑 비슷한 거죠.

도파민 농도가 올라가면 굉장히 예민해지고, 짜증도 납니다. 그런 상황에서 내 주변에 웃는 사람이 있으면 괜히 나를 비웃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런 식의 환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반복되면 점점 거대한 '망상'으로 발전하는 겁니다. 실제로는 전혀 없었던 소리를 듣는 환청도 생기고요.

▷ 기억이 남는 환자 사례들이 있다면요?

▶ 치료 시기를 늦춰서 망상이 굉장히 심해진 환자들은 가족들이 나를 해친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나를 성폭행했다고 믿는 환자도 있습니다.

피해망상이 심각한 환자들은 가족들을 폭행하기도 합니다. 언론에 나왔던 '묻지 마' 식의 폭력을 저질렀던 조현병 환자들도 이런 경우에 해당합니다.
2012~2017년 조현병으로 진료를 받은 여성 환자 수가 남성보다 많았습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제공)▷ 치료는 되나요? 완치율 같은 게 있다면요?

▶ 항정신병약물을 이용한 약물 치료가 기본입니다. 도파민의 불균형을 잡아주는 거죠. 환각이나 망상에 대한 인지행동 치료도 병행합니다.

가장 중요한 건 치료가 빠를수록 좋다는 겁니다. 일반적으로 15~25세에 발병합니다. 이 시기에 조기진단을 받고 치료하면 사회생활하는 데 지장이 없습니다. 환자에 따라서 편차가 크지만, 치료 기간으로 대략 1년 정도를 잡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골든타임을 놓치고 40대 이후에 치료를 시작하는 경우입니다. 늦깎이 환자들은 망상과 환각 증상이 이미 만성이 될 대로 된 상태라서 치료 효과가 굉장히 낮습니다.

조현병 탓에 적절한 나이에 취업이나 결혼을 못 한 경우가 많아서 사회생활 적응에도 상당한 어려움이 따릅니다. 심각한 경우 환자 동의하에 입원 치료를 하기도 합니다.

▷ 그렇다면 내가 조현병인지 어떻게 빨리 알 수 있나요?

▶ 제일 좋은 방법은 가족들이 환자의 초기 증상을 빨리 눈치챈 뒤 치료기관에 보내는 겁니다. 가족 중 누군가가 환청, 환각 증상을 겪었다면 바로 조현병을 의심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 정신의학회의 진단기준을 보면 망상, 환각, 와해된 언어, 와해된 행동이나 긴장 증적 행동, 음성증상의 5가지 중 2가지 이상 증상이 1개월 이상 존재하는 경우를 조현병으로 봅니다.

▷ 이미 사회적으로도 조현병 환자 관리는 큰 문제로 대두됐는데, 대책이 있을까요?

▶ 전국에 국가, 지자체가 운영하는 정신보건센터가 있습니다. 지금도 많은 환자들이 등록해 치료를 받지만, 상당수는 '이쯤 받았으니 괜찮겠지'라는 생각으로 치료를 중도에 그만둡니다. 그러면 십중팔구 재발하기 마련입니다.

현재 보건센터 인원이 적다 보니 1명이 관리해야 할 조현병 환자 수가 100명이 되기도 합니다. 그분들은 조현병 관리 외에 자살 예방 등 다른 업무들도 많습니다. 때문에 우리 사회가 조현병을 더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조기진단 및 조기치료가 가능하도록 하려면 보건센터 예산과 인원을 대폭 늘리는 게 중요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