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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헌재 결정 기다린다" 한발 물러선 복지부…낙태 수술 의사 처벌 논란, 어떻게 시작됐나

[리포트+] "헌재 결정 기다린다" 한발 물러선 복지부…낙태 수술 의사 처벌 논란, 어떻게 시작됐나
[리포트+] '헌재 결정 기다린다
지난 28일, 산부인과 의사들이 낙태 수술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앞서 정부가 불법으로 낙태 수술을 한 의사에 대해 한 달간 자격정지를 내리는 규정을 발표하자, 이에 반발해 '수술 전면 거부'라는 강수를 둔 건데요. 의사들과 여성단체의 거센 반발에 보건복지부(복지부)는 어제(29일)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위헌 여부 결정이 나올 때까지 자격정지 행정처분을 유보하겠다"며 한발 물러섰습니다.

낙태 수술을 시행한 의사를 처벌하겠다는 정부의 발표, 그리고 이어진 의사회와 여성 단체 반발. 이 논란은 어떻게 시작된 걸까요? 오늘 리포트+에서는 '낙태 수술 의사 처벌 논란'에 대해 정리해봤습니다.

■ 비도덕적 진료 행위 분류된 '낙태 수술'…논란의 시작은?

이번 논란이 시작된 것은 지난 17일입니다. 복지부는 비도덕적 진료 행위의 유형을 세분화하고, 그에 따른 처분 기준을 정비하는 등 현행 제도를 보완한 의료관계행정처분규칙 일부 개정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이 개정안에 따르면, '낙태 수술'은 비도덕적 진료 행위로 분류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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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낙태 수술은 이미 형법 제270조에 따라 불법 행위로 분류돼 있습니다. 정부의 이번 개정안은 '형법 제270조를 위반해 낙태하게 한 경우'를 비도덕적 진료 행위에 포함 시키고, 이를 어긴 의사에게는 한 달 동안 자격정지 처분이 내려진다고 명시한 겁니다. 산부인과 의사회가 "산부인과 의사를 비도덕적이라고 낙인찍고 처벌의 의지를 명문화한 것"이라며 복지부를 비판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 "비도덕적 의사로 낙인 찍는 행위", 낙태 '음성화' 시킨다는 여성 단체 목소리도 나와…

정부의 발표에 산부인과 의사들은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이영규 대한산부인과의사회 수석부회장은 SBS 시사 라디오 프로그램 '김성준의 시사전망대'와의 인터뷰에서 "이전까지는 낙태 수술을 한 경우, 형사고발을 하면 처분을 받았지만 개정안이 공표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며 "이제는 관계 기관에 낙태 수술 민원을 넣기만 해도 무조건 산부인과 의사들은 행정처분을 받아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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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단체 역시 정부의 발표에 낙태 위헌 여부에 대한 헌법소원 절차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논란을 부추기고 여성들의 자기 선택권을 침해했다고 비판했습니다. 또, 정부의 조치와 의사들의 낙태 거부로 '미프진' 등의 안전이 검증되지 않은 낙태약이 유통될 우려가 크다고 주장했습니다.

■ "사실상 의료계의 합의 받았었다"…1개월 자격정지, 이전과 달라지지 않았다는 정부

하지만, 복지부의 입장은 좀 다릅니다. 산부인과 의사회와 여성 단체의 반발에 복지부는 지난 2016년 9월, 의료법 개정 당시 비도덕적 의료 행위들을 법제화하면서 불법 낙태 수술을 이미 포함시켰고, 2년간 심의 과정을 거친 끝에 지난 17일 공표하게 됐다고 해명했습니다. 2016년 당시 자격정지 1년을 추진했다가 의료계 반발에 부딪힌 뒤, 한 달로 줄여 사실상 의료계의 합의를 받았었다는 겁니다.

또 복지부는 이번 개정안으로 인해 낙태 수술에 대한 처벌이 강화된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습니다. '진료 중 성범죄' 12개월, '대리 수술' 6개월, '일회용 주사기 재사용' 6개월 등 일부 비도덕적 진료 행위의 처분 기준이 강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낙태 수술의 경우 개정 전과 마찬가지로 자격정지 1개월을 유지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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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태 수술 거부 이어간다"는 의사회…갈등 장기화되나

복지부가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위헌 여부 결정이 나올 때까지 자격정지 행정처분을 유보하겠다고 밝혔지만, 논란은 쉽게 수그러지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30일) 김동석 직선제 대한산부인과의사회장이 "이번 문제의 본질은 행정처분 자체가 아니라, 정부가 모자보건법에 기대어 낙태 수술을 비도덕적 진료 행위로 규정한 것"이라며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낙태 수술 전면 거부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내놨기 때문입니다.

김 회장이 언급한 모자보건법에는 낙태 수술을 예외적으로 할 수 있는 규정이 마련돼 있습니다. 모자보건법 제14조에 따르면, 유전학적인 질환이 있거나 강간 등에 의해 임신인 경우, 인척간에 임신한 경우 등에 한해서만 예외적으로 낙태 수술이 허용됩니다.

하지만 이 법은 1973년 이후 45년간 단 한 번도 개정되지 않았고, 일각에서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습니다. 모자보건법의 예외 조항이 지나치게 협소한 데다가, 낙태의 기준을 국가가 선별하고 허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주장입니다.

실제로 여성정책연구원이 올 4월 낙태를 고려했거나 경험한 593명의 여성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낙태를 고려한 이유에 대해 "경제적으로 준비가 돼 있지 않아서"라는 답변이 29.7%로 가장 많았습니다. "계속 학업이나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서"라는 답변이 20.2%로 그 뒤를 이었고, "결혼할 마음이 없어서", "이미 낳은 아이로 충분해서" 등의 답변이 3, 4위를 차지했습니다.

이처럼 현행법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계속되자, 낙태죄 처벌에 관한 형법과 모자보건법은 위헌인지 가리는 헌법소원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지난해 말 청와대 역시 국민청원 답변을 통해 현행 법제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낙태죄에 관한 사회적 논의의 필요성을 인정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복지부가 이 시점에서 낙태 수술 의사 처벌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고, 산부인과 의사회 역시 수술 전면 중단 입장을 고수하겠다고 밝히면서 낙태를 둘러싼 논란과 갈등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입니다.

(취재: 임태우 / 기획·구성: 송욱, 장아람 / 디자인: 감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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