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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자원외교 1호 사업, '1조3천억' 투자하고 빈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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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탐사보도 팀에 끝까지 판다, 오늘(26일)부터는 이명박 정부 자원외교 1호 사업인 이라크 쿠르드 유전사업을 파보겠습니다. 석유공사가 이 사업에 무려 1조 3천억 원을 투자했습니다. 10년으로 정해졌던 사업 기간이 이번 달로 끝나는데 이 큰돈을 고스란히 날리게 됐습니다.

먼저 장훈경 기자입니다.

<기사>

이라크 북부 쿠르드 카밧의 화력 발전소입니다.

이달 말 완공 예정으로 현재 시운전 중입니다. 한국석유공사가 비용을 대 지었고 소유권은 쿠르드 자치정부에 있습니다.

석유공사가 공사비를 떠맡는 대신 쿠르드 내 탐사광구 8곳의 지분을 받아 원유를 뽑아 간다는 계약에 따른 겁니다.

지난 2008년 2월, 이명박 전 대통령이 당선인 신분으로 쿠르드 자치정부 총리를 만나 추진해 MB 자원외교 1호 사업으로 불립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 : (쿠르드 지역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석유 자원이 많은 지역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해서 유전 개발에 참여할 수 있도록.]

석유공사는 같은 해 11월 쿠르드 자치정부와 정식 계약을 맺고 사회간접자본 건설비와 광구 탐사비용으로 1조 3천억 원을 투자했습니다.

투자가 완료된 지금 성적표를 따져봤습니다.

석유공사가 투자한 탐사광구 8곳 중 4곳은 석유가 나오지 않아서 실패했습니다.

하울러 광구에서만 석유를 생산 중인데 여기서 석유공사 몫으로 돌아온 건 지금까지 6백만 달러, 67억 원뿐이었습니다.

생산한 원유는 한 방울도 한국으로 가져오지 못했습니다.

이라크 중앙정부가 법적 통제권을 주장하며 쿠르드 자치정부의 석유 수출을 막기 때문입니다.

[이라크 파견 건설사 직원 : 이라크가 반대하는 상황에서는 그러니까 이제 (쿠르드에) 파이프관이 있지 않습니까, 송유관. (이라크가) 이걸 잠그면 아예 그냥 유출할 수가 없어요.]

석유공사는 탐사광구에서 원유가 적게 나오면 쿠르드 정부로부터 석유가 나오는 생산광구의 지분을 넘겨받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보장받은 원유는 3천480만 배럴, 일종의 약속어음인 셈입니다.

그런데 계약 10년이 지났고 발전소와 변전소를 완공해 약속한 투자는 모두 끝났지만 석유공사는 보장 원유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원유를 받아 공사비를 충당할 수 있다고 계약 전에 이사회에 보고했던 석유공사 간부는 이제는 이렇게 말합니다.

[김 모 씨/前 석유공사 임원 : 가능성은 그때는 이제 상당히 좋은 광구였다니까요, 가능성이. 넓으니까 많이 나오고. 그게 옹호는 아니죠.]

석유공사는 보장원유 3,480만 배럴을 자산으로 잡아놓고 있어 받지 못하면 손실 처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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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석유공사나 외교부도 일이 이렇게 잘못될 수 있다는 걸 시작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저희가 입수한 정부 내부 문서를 보니까 당시 청와대가 이 계약을 밀어붙였던 거로 파악됩니다.

이어서 김지성 기자의 단독보도입니다.

<기사>

정식 계약 전인 2008년 8월 외교통상부가 주이라크 대사에게 보낸 비밀문서입니다.

쿠르드 유전 개발을 이라크 중앙정부가 승인하지 않은 상황에서 "사회간접자본 건설을 위한 대규모 자금 투입이나 정부 차원의 지급 보증은 곤란하다"는 부정적 평가를 전합니다.

이라크 중앙정부가 유전 개발과 수출 등을 통제하는 상황에서 쿠르드 자치정부와 직접 계약을 맺는 건 위험하다는 걸 정부도 잘 알고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9일 뒤 청와대에서 관계기관 회의가 열리더니 양상이 확 바뀝니다.

박병원 청와대 경제수석이 회의를 주관하고 외교부와 국토부, 금융위, 지식경제부 고위 인사들이 참석했습니다.

공기업 자체 투자 사업에 청와대가 직접 나선 겁니다.

[박병원/전 청와대 경제수석 : (이 회의에서 어떤 논의가 오갔는지 알 수 있을까요?) 10년 전 것을 그렇게 구체적인 내용까지 기억할 수가 있습니까.]

취임한 지 얼마 안 된 강영원 석유공사 사장도 회의 이후 건설비를 떠안고 유전을 개발하는 초유의 사업 방식을 추진합니다.

[김 모 씨/전 석유공사 임원 : 7월까지는 하여튼 (SOC 연계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는데, 강영원 사장이 오고 나서 흐름이 바뀌었다니까요. 그러니까 왜 바뀌었냐고, 그 양반이 누구한테 오더(지시)를 받았는지….]

공사 내부에서는 유전 개발 전문 회사가 사업 영역이 아닌 건설을 책임질 수 없다는 우려가 계속 나왔습니다.

그러자 9월 24일 지식경제부 담당 국장은 건설이 유전 개발을 위한 부대 사업이라는 공문을 전결 처리해 석유공사에 보냅니다.

당시 국장이었던 윤상직 의원을 만나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윤상직 국회의원/2008년 지식경제부 자원개발정책관 : 석유공사가 확실하게 자신감을 가지고 '부대 사업(SOC)까지 하게 해달라, 이거 아니면 도저히 안 되겠습니다'라고 하니 그러면 정부가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하지만 SBS가 입수한 석유공사 자체조사 결과를 보면 당시 공사 평가팀장은 "SOC 사업에는 관심이 없었고 지식경제부의 압박이 있었다"고 증언했습니다.

[김 모 씨/전 석유공사 임원 : 공기업 사장은 직제상 차관 대우에요. 강영원 사장에 지시할 수 있는 사람은 장관 아니면 BH(청와대) 아닙니까.]

석유공사 노사 개혁위원회는 외압이 있었다고 보이지만 강제 조사권이 없어 밝힐 수 없었다며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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