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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룸] 북적북적 152 : 올여름 휴가는 끝나지 않았다!? 뉴욕타임스 '작가님, 어디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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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한 번도 와본 적 없는 곳이란 걸 아는데도 길모퉁이가 왠지 눈에 익어보였다. 타쿠아리 가를 알리는 표지판이 눈에 띄었을 때 불현듯 생각났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단편 '알레프'에 이 이름 없는 거리의 이름 없는 건물 지하실이 우주의 "모든 다른 지점을 담고 있는 공간 속 '신비로운' 한 지점"으로 그려졌다는 사실이."

여름휴가 다녀오셨습니까. 엄청난 폭염이 덮쳤던 이 여름, 휴가도 제대로 즐기지 못하신 분들께는 죄송스러운 얘기지만, 이제 여름휴가가 끝난 직장인들은 "휴가도 갔다왔으니, 낙이 없다"는 농을 주고받는 시깁니다. (학생들은 "방학이 끝나서..." 겠죠^^)

그래서 골라봤습니다. 매력적인 동행과 책으로 짧게 떠나는 여행, '작가님, 어디 살아요?'입니다.

지난달 중순에 번역 출간된 이 책은 뉴욕타임스의 여행 섹션에 40년 가까이 연재되고 있는 코너, '풋스텝스(footsteps)'에 실렸던 글들 중에 38개를 모았습니다.

'풋스텝스(footsteps)'는 '발자국'이라는 말뜻 그대로, 세계적인 작가들의 삶과 작품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곳곳들을 찾아가는 코너입니다. 집필진도 대부분 유명한 작가거나,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여러 매체의 경력이 있는 기자들입니다.

그야말로 "네가 뭘 좋아할지 몰라서 전부 다~ 준비했어" 수준으로, 북미와 남미,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의 다양한 여행지가 나옵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빨간 머리 소녀 앤부터 롤리타에 이르기까지, 넓은 스펙트럼의 작품들과 그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고 영향을 미친 무대들입니다. 마크 트웨인, M.F.K.피셔, 예이츠, 쿤데라,
피츠제럴드, 뒤라스, 앨리스 먼로, 마르케스, 랭보, 잭 케루악...근현대에 삶과 작품이 모두 매력적이었던 작가들로 생각나는 웬만한 사람들은 거의 포함된 것 같습니다.

흥미로운 여행지를 내가 좋아하는 작가와 동행하며 새롭게 발견하는 기분으로, 하나씩 골라먹듯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북적북적을 위한 낭독으로는 이 38곳과 동행자 후보 가운데 '누아르의 남자' 대실 해밋의 샌프란시스코, 스페인에서 서구 문명의 대안을 찾았던 헤밍웨이의 마드리드, 그리고 마지막으로 온 지구상에서 우리나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땅! 

평범한 직장인의 일상 속에서 폭발하듯 강력하고 풍부한 환상과 매혹적인 우주를 창조했던 보르헤스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골라봤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누아르를 찾아나서는 작업 역시 미스터리를 낳기 마련이다. 텐더로인 끝자락에 서 있는, 옛풍으로 아름답게 복원된 저 아파트가 실제론 작가 대실 해밋의 것이 아니라 그의 피조물 중 가장 유명한 샘 스페이드의 것은 아닐까?
.....
저 건물 안으로 걸어 들어가던 젊은 작가의 모습은 분명 근사했을 것이다. 해밋은 큰 키에 몸피가 늘씬했다. 제1차 세계대전 중 자국 내 군대에서 폐결핵에 걸린 그는 평생 몸이 너무 마른 것을 근심해야 했다. 회색 올백 머리에 갸름한 얼굴은 미형이었다. 해밋은 글을 쓸 때 샌프란시스코 지리에 대해 거의 코믹할 만큼 집착했다.
"레번워스와 존스 사이 파인 거리" "부시가의 가필드 아파트" "캘리포니아가로 걸어가며" 따위의 지명이 화학방정식의 원소기호처럼 수없이 나열된다. 그러나 그중에 우리의 다음 기착지인 버릿가만큼 중요한 곳은 없다.
'몰타의 매'에서 샘 스페이드의 동료 마일스 아처가 팜므파탈 브리지드 오쇼네시의 총에 맞아 죽임을 당하는 곳이다."

"헤밍웨이는 담배 연기 자욱한 호텔 바에서 마티니 한두 잔으로 저녁을 시작했고, 이것은 1926년 소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후반부에 나온다. 소설의 주인공인 제이크와 브렛처럼 아내와 나는 바에 편히 기대앉아 마티니를 주문했다. 식당을 추천해달라는 질문에 바텐더는 산타아나 광장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거리마다 식당이 넘쳐난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내가 염두에 둔 식당은 따로 있었다. 소설 말미에 제이크와 브렛이 바 다음으로 들른 엘 소브리노 데 보틴이었다. 마요르 광장 뒤편 좁은 샛길에 위치한 보틴은 1725년에 문을 연, 세계에서 역사가 가장 오래된 식당이라고 하는 곳이다. 제이크와 브렛은 식당에 들어가 -헤밍웨이 자신이 자주 그랬듯이- 특식인 새끼 돼지 구이를 먹으며 리오하 알타 몇 병을 마셨다."

"보르헤스가 오후에 자주 찾던 길 맞은편 쇼핑몰의 서점 라 시우다드는 여전히 영업 중이다. 보르헤스의 작품 초판본 여러 권이 창가에 전시되어 있고, 의자에 앉아있는 그의 사진들이 마치 귀환을 기다리듯 지금도 서점에서 영예로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여든이 넘은 여주인의 기분이 좋아 보일 때면 그녀의 친구이자 가장 유명한 손님과 관련된 일화 한 토막을 들려달라고 조를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보르헤스가 유명한 문인일 뿐 아니라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실제로 살았던 평범한 주민이었다는 사실을 가장 강력하게 환기시키는 것은 지금도 주민들이 여권과 증명사진을 찍기 위해 찾는 파라과이 521번지의 사진관일 것이다. 그곳 창가에 전시된 마흔 장 남짓한 사진을 유심히 들여다보시길. 그러면 맨 윗줄 오른쪽 네 번째에서 보르헤스의 사진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이 너무 낯선 나머지 스스로 제 세상을 창조할 수밖에 없었던 이 사내가 여전히 질문을 던지는 듯 이쪽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사진을."


정신없이 더웠던 여름이지만, 막상 이 여름이 끝나가는 주말은 왠지 아쉽습니다.
책장 사이사이에 또 이렇게 기다리는 새로운 여행들과 함께, 떠나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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