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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대마는 그들에게 정말로 '마지막 희망'일까?

[취재파일] 대마는 그들에게 정말로 '마지막 희망'일까?
대마를 합법화해달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충만한 영감(?)'을 위해 필요했다는 일부 가수나 예술가가 아닙니다. 그들은 바로 '간질', 의학 용어로는 뇌전증을 앓고 있는 환자들입니다.

왜 그들은 대마 합법화를 주장하는 걸까요? 기존 치료제가 듣지 않는, 난치성 뇌전증에 해당하는 이들에게 대마가 효과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대마는 그들의 병을 낫게 할 '마지막 희망'일 수 있다는 거죠.

뇌전증 환자들은 대마로 뇌전증을 치료했다는 해외 기사나 동영상, 논문 등을 근거로 들고 있습니다. 기존 치료제는 독성이 강하고 심각한 부작용도 따르지만, 대마는 자연에 존재하는 물질이어서 그런 위험이 없다고도 주장합니다.

우리나라는 대마를 엄격히 마약류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치료 목적이라 하더라도 대마를 외국에서 들여오거나 임의로 처방하는 행위는 예외 없이 처벌 대상입니다. 그렇다보니 난치성 뇌전증 환자들은 대마를 처방받고 싶어도 방법이 없습니다. 한 어머니는 심각한 뇌전증으로 죽어가는 아들을 두고 볼 수 없어서 해외 직구로 대마를 구매했다가 체포되는 일도 있었습니다.
지난 10일 오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의료용 대마 합법화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습니다.
뇌전증 환자 가족들과 관련 시민단체는 수년 전부터 목소리를 높여 왔습니다. 의료용 대마의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홍보한 결과, 올해 1월 국회에서 대마를 의료용에 한해 허용도록 하는 내용의 개정안이 발의되기도 했습니다. 해당 법안은 올해 하반기 국회에서 논의될 것으로 보입니다.

나아가 이들 시민단체는 대마가 뇌전증 뿐 아니라 치매, 파킨슨병, 안구질환 등에도 효능을 보이므로 허용 범위를 대폭 확대해야 한다고도 주장하고 있습니다.

과연 대마는 이들 단체가 주장하는만큼 실제로 효능이 있는 걸까요? 효능이 있다면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 걸까요? 저는 그런 부분들에 궁금증을 갖고, 국내 뇌전증 분야에서 권위자로 알려진 세브란스 병원 강훈철 소아신경과 교수를 만나 물어봤습니다. 인터뷰 내용은 독자들이 읽기 쉽도록 일문일답 형식으로 재구성했습니다.
 

- 먼저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대마가 실제로 뇌전증에 효과가 있나요?

= CBD, 카나비노이드라고 하죠. 카나비노이드는 대마에서 추출한 화학 물질입니다. 사실 대마는 아주 옛날부터 뇌전증 치료를 위해 실제로 사용했던 물질입니다. 한 십년 전부터 외국에서 의사들보다 환자들 중심으로 이 CBD 오일을 복용하기 시작했고 효과가 있다고 입소문이 났습니다. 이후 사회적인 이슈가 되면서 뒤늦게 의사들이 검증에 나선 그런 물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대마의 효능에 대한 공식적인 연구는 어디까지 진행됐나요?

= 비교적 대마를 허용하는 편인 캐나다나 미국 같은 북미 대륙에서 객관적인 임상 연구가 먼저 시작됐습니다. 최근 10년 간 10여 차례 이상의 임상 연구가 진행됐고요. 연구 보고서를 보면 기존 약물이 통하지 않는 난치성 환자 10명 중 1명 꼴로 발작이 완전히 조절된다고 나와 있습니다. 나머지 환자의 절반가량도 발작 횟수가 감소하는 효과를 봤다고도 하고요. 반면, 부작용은 졸림이나 설사 정도로 아주 가벼운 수준에 그치고 있습니다. 이 정도 효능이면 한국도 임상 연구를 해볼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국내 뇌전증 분야의 권위자인 세브란스병원 강훈철 교수는 대마의 효능을 인정하면서도, 맹신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 대마가 효능이 있어 보이는데, 합법화해야 하나요?

= 주의할 점은 대마 외에도 뇌전증 치료를 위한 후보 물질들이 많거든요. 그런 약물들과 견줘볼 때 대마가 아주 특별하지는 않아요. 그런데도 언론이나 국민의 과도한 관심 탓에 대마의 효능이 과장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 대마가 거의 만병통치약처럼 여겨지는 것 같던데….

= 그게 참 걱정이에요. 제가 여태껏 많은 인터뷰를 했는데, 대마 효능을 말한 부분만 나가고 주의점을 말한 부분은 빠지더라고요 (웃음).

- 아까 대마가 검증을 받았다고 말씀하셨잖아요? 더 자세히 설명해주시면 좋겠습니다.

= ILEA라는 전 세계 뇌전증 관련한 의사들의 연맹이 있습니다. 이 연맹이 대마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기 때문에 상당히 객관성이 있습니다. 당시 연구에서 6백여 명의 환자가 대상이 됐어요. 그들은 기존 치료제 서너 개를 복용하고도 발작이 조절되지 않았던 환자들이고요. CBD를 복용했더니 그중 10퍼센트 정도가 완치됐습니다. 그런 점에서 대마가 나름 효과가 있는 건 맞아요. 하지만, 맹신하듯이 CBD를 복용하면 모든 환자가 다 나을 거라는 믿음은 잘못된 과신입니다.
공신력 있는 외국 논문은 대마가 난치성 뇌전증 환자의 10% 가량에 완치 효과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 취재해보면 영유아 환자들일수록 기존 치료제의 부작용으로 고생을 많이 한다고 들었습니다. 영유아들은 대마 처방이 필요하다고 볼 수 있을까요?

= 반은 맞고, 반을 틀렸습니다. 뇌전증은 생각보다 되게 흔한 병이에요. 아기들 발병률만 따져보면 1%, 우리나라에 50만 명 정도의 환자가 있고요. 종류도 다양해요. 40개 이상의 뇌전증이 있거든요. 대부분의 뇌전증들이 주로 소아에서 발병합니다. 일부 뇌전증은 아기를 바보로 만듭니다. 정신 지체를 유발하거든요. 전체 뇌전증 환자의 30% 정도가 그런 고통을 겪고 있어요. 그런 환자들을 위해 식이요법을 하거나 뇌를 잘라내는 수술을 하기도 하고, 정말 다양한 치료법이 있습니다. 이미 개발된 치료제도 30가지 정도 되고요. 지금도 더 효과적인 치료제를 개발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CBD는 그 여러 후보 약물들 중 하나일 뿐입니다.

- 대마를 좀 더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게 됐습니다. 마지막으로 의료용 대마가 허용된다면 어떤 식으로 다뤄야 할까요?

= 북미 대륙에선 대마로 만든 오일이 건강보조식품이어서 손쉽게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같은 동양권은 마약류에 대한 상당한 저항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CBD오일을 일반인들이 쉽게 살 수 있는 체계로 허용되진 않을 거고요. 의사 처방이 반드시 필요하도록 시스템을 갖출 가능성이 높습니다. 국가가 엄격하게 관리하는 방식이 저는 맞다고 봅니다.
 

인터뷰 내용을 정리하면 '대마는 뇌전증에 대해 효능은 있다. 그러나 맹신은 금물이다'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지난 7월 식약처는 의료용 대마 허용 방침을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넘어야 할 산이 있습니다. 관련 법 개정입니다. 의료용에 한해 대마 사용을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조항이 삽입돼야 하는 것입니다.

법 조항 하나를 고치는 일은 간단해 보여도 국회 소위원회에서 법제사법위원회, 본회의까지 검토를 거치는 등 절차가 복잡합니다. 올해 1월 초에 개정안이 발의됐는데 1차 관문인 소위원회조차 안건 상정이 안 된 상태입니다. 왜 오래 걸리나 취재해보니 검토할 안건이 많이 밀려서 해당 개정안은 하반기 국회 때에나 차례가 올 거라고 합니다. 치료용 대마 합법화를 기다리는 환자와 가족들에겐 하루 하루가 애타는, 피 말리는 시간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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