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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위안부' 영화 고작 36편…"'인생은 아름다워' 같은 영화 만들고 싶다"

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작성 2018.08.15 10:03 수정 2018.09.11 09:57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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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8월 14일. 고 김학순 할머니가 처음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공개 증언하고 나선 날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아시아 연대회의는 2013년부터 8월 14일을 세계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로 지정해 기념하고 있다. 한국 정부도 올해 2018년부터 국가기념일로 지정했다.

SBS 데이터저널리즘팀 [마부작침]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을 맞아 2018년 8월 현재 한국에서 만들어진 '위안부' 소재의 영화를 전수 조사했다. 8월 14일 개봉한 영화 <22>나 6월 27일 이미 개봉했던 <허스토리>를 비롯해 <낮은 목소리>, <귀향>, <아이 캔 스피크> 등 많은 영화가 나왔는데 몇 편이나 되는지, 흥행 성적은 어떠한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또 이제까지 정리된 데이터가 없다는 점에서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이후 첫 '위안부' 피해자 기림일에 해볼 만한 프로젝트라 판단했다.

● 한국 '위안부' 소재 영화 36편…극장 개봉은 20편뿐

결과는 놀라웠다. KMDb에 등록된 한국영화 2만 2,988편 중에서 2018년까지 한국에서 제작해 완성된 '위안부' 소재 영화는 단 36편에 불과했다. 개봉, 미개봉작 가리지 않고, '위안부' 문제를 중심으로 다루지 않고 그저 주변 소재로 활용한 영화를 모두 포함했는데도 더는 없었다.

*자료는 KMDb(한국영상자료원의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에서 '위안부', '정신대' 키워드로 검색한 결과에 미디어 보도와 관련 논문 등으로 참고, 보완해 정리했다. (TV용 드라마와 다큐멘터리는 제외하되, 드라마라도 극장판으로 재편집해 개봉한 <눈길> 등은 포함시켰다.)
상세 내용은 인터랙티브 페이지에서 볼 수 있습니다.'위안부' 소재를 활용한 한국 최초의 영화는, 액션영화의 대부로 불리던 정창화 감독의 <사르빈강에 노을이 진다>(1965)였다. 신영균, 김혜정, 남궁원 등 당대의 스타가 출연한 이 영화는(3선 국회의원에 재선 성남시장을 지냈던 이대엽씨도 출연했다.) 일본 군국주의에 동조하던 조선 청년이 태평양 전쟁에 참전하면서 전쟁에 회의를 느끼고 일본군에 대항하게 되는 내용이다. 여기에 '위안부'는 120분 영화 초반부에 4분 정도 나온다. 조선 출신 일본군 장교에게 약간의 고뇌를 더 안겨주는 요소이다. 그 뒤로 1991년까지, 26년간 제작된 영화는 <여자 정신대>, <에미 이름은 조센삐였다> 등 단 3편뿐이다. 전체 36편 중에 연소자 관람불가 등급을 받은 영화도 이 3편이 전부다.

정대협 창립, 고 김학순 할머니의 공개 증언, 수요시위 시작 등 일련의 흐름 속에 1995년 '위안부' 문제가 과거지사만이 아닌, 현재진행형임에 주목한 기념비적인 다큐멘터리가 나왔다. 변영주 감독의 <낮은 목소리-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1995)이다. 100번째 수요시위로 시작하는 이 다큐는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스스로 떨치고 나선 피해자의 현재를 담았다. 다큐 영화로는 사상 첫 '극장 개봉'이라는 기록도 남겼다. <낮은 목소리2>, <낮은 목소리- 숨결>까지 3부작은 세계에 '위안부' 문제를 알리는 계기도 됐다. 이후로도 줄곧 다큐멘터리였다. 흥행은 쉽지 않았다.

2016년 2월 24일, 영화 <귀향>이 개봉했다. 제작비가 부족해 촬영이 지연됐는데 시민 7만 5천 명이 후원해 25억 원 제작비의 절반을 충당했다. '귀향 보기' 운동까지 벌어지면서 358만 명이 봤고 제작비의 10배 넘는 수익을 올렸다. 2017년엔 영화 <아이 캔 스피크>가 뒤를 이었다. '위안부' 소재 영화 사상 최초의 코미디 영화였다. 이 영화도 328만 명이나 봤다. 영화 <군함도>는 '위안부'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뤘다고 보긴 어렵지만 '위안부' 피해자를 연기한 이정현 배우의 비중이 적진 않아 '위안부' 소재 영화로 분류했다. 659만 명으로 관객 수는 가장 많지만 제작비가 많이 들어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했다. 올해 6월 개봉한 영화 <허스토리>는 관객과 평단의 호평이 쏟아졌으나 관객 수는 33만 명을 약간 넘겼다. 이 관객 수로도 역대 4위에 해당한다. 그리고 2018년 8월 14일 '위안부' 피해자 기림일에 맞춰 영화 <22>가 개봉했다.

'위안부' 소재 영화 36편 중 극장 개봉한 건 20편에 불과하다. 절반 이상은 다큐멘터리, 저예산으로 제작하는 독립 예술영화이다. 이런 통계는, 한국에서 '위안부' 소재 영화를 만들어 수익을 낸다는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는 것, '위안부' 영화의 흥행 성공은 매우 어렵다는 걸 새삼 확인하게 한다.

● 원래도 어려운데 정부가 방해까지

여기서 등장하는 게 정부의 역할이다. 대한민국 정부, 문화체육관광부는 산하에 영화진흥위원회를 두고 문화다양성 강화를 위한 예술영화, 독립영화, 소수자 영화 등에 대해 지원하고 있다. 지난 정부는 그러나 '문제 영화' 리스트를 만들고 '배제 키워드'를 하달해 지원을 막았다. 고작 36편뿐인 '위안부' 영화도 대상이 됐다. 개봉 지원을 받기 위해 신청한 영화 <22>는 본 심사도 못 받고 서류심사에서 탈락시켰고 영화 <귀향>은 정부 산하 영화관에서는 상영을 금지시켰고 일반 개봉관 확보도 최소화하라는 지침의 대상이 됐다. 드러난 건 이 두 편이나 다른 영화들도 어떻게 영향을 받았을지 알 수 없다.

정부에 등록한 '위안부' 생존 피해자는 이제 28명 남았다. 여성가족부 집계를 보면 이들의 평균 연령은 91세에 이른다. 지난 7월에 별세한 김복득 할머니는 1918년생이었다. 2017년에 8명, 올해도 5명이나 사망했다. 김 숨 작가가 2016년에 펴낸 '위안부' 피해자 이야기를 다룬 소설 [한 명]은 공식 생존 피해자가 단 1명만 남는 상황을 가정했다. (정작 화자인 주인공은 등록하지 않은 생존 피해자, 또 다른 '한 명'이다.) 김 작가가 상상한 소설적 상황과 현실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다.

● "'위안부' 소재 영화, 찾아가 보고 싶은 영화로"

어떻게 해야 할까. 한 가지 참고할 만한 건 2차 세계대전에서 벌어진 최악의 전쟁범죄 '홀로코스트'이다. [마부작침] 조사 결과, '홀로코스트'를 소재로 한 영화는 685편이 제작됐다.(IMDb에서 주요 키워드 3개를 중심으로 검색한 뒤 해당 영화 정보를 일일이 확인해 관련성이 없거나 극히 적거나, 혹은 정보가 부족한 영화는 모두 제했다. 685편은 최소치라 할 수 있다.) 2차 대전의 전범 국가인 독일과 일본은 전쟁 범죄에 대해서만은 국제 사회에서 같은 지위가 아니다. '홀로코스트' 영화 등을 통한 끊임없는 환기와 촉구는 독일이 진정성 있는 반성과 사과를 하도록 하는 밑거름이 됐다. '위안부' 영화를 이와 일률 비교할 수는 없지만 '685 대 36', 이 차이는 꽤 크다.

'위안부' 영화를 제작하거나 연출한 이들을 인터뷰해보면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있다. 이 문제를 제대로 알게 되니까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위안부' 문제에 대해 우리는 과연 다 알고 있는 것일까. 영화만 36편일 뿐, 다른 문화·교육 콘텐츠는 다양하게, 폭 넓게, 많이 '위안부' 문제를 다루고 있을까. 그럴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2005년 이후 계속 '위안부' 영화 제작에 집중하고 있는 김영우 대표를 만났다. 잇따른 제작 실패로 자살 생각까지 한 적 있다는 김 대표는 '위안부' 영화를 평생의 사명으로 여기고 있다. 김 대표는 "할머니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또 개개인의 삶의 고충은 어떠했는지 소원은 무엇이었는지 이런 것들이 드라마적 구성으로 영화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소재는 무궁무진하다고 본다"면서 "앞으로 계속 만들어져야 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위안부 소재 영화이기 때문에 꼭 봐야 한다? 세상에 꼭 봐야 한다는 영화, 꼭 봐야 할 영화는 존재할 필요가 없다", "위안부 소재 영화인데 보고 싶은 영화로 만들어야 되는 것, 그래서 관객들에게 선택을 받는 것, 관객들이 좋은 영화고 아름다운 영화다라고 저절로 입소문이 퍼져서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스테디셀러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김 대표가 '롤 모델'로 삼고 있다는, '홀로코스트'를 소재로 한 색다르면서도 아름다운 영화였던 로베트로 베니니의 <인생은 아름다워>, '위안부' 소재로 만든 첫 코미디 영화로 웃음과 눈물을 함께 줬던 <아이 캔 스피크> 같은 영화가 앞으로 많이 나왔으면 싶다. 마지막 '한 명'이 남더라도 외롭지 않도록.

(그래픽: 김그리나)

*[마부작침] 여전히 '낮은 목소리' - '위안부' 영화의 현 주소 인터랙티브 페이지(http://mabu.newscloud.sbs.co.kr/201808murmur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