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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정치냐, 민생이냐 그것이 문제로다"…타이완 정치인의 고심 끝 결단

정성엽 기자 jsy@sbs.co.kr

작성 2018.08.08 17:00 수정 2018.08.09 08:32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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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푸젠성 최대도시 샤먼(厦門)시와 붙어있는 추엔저우(泉州)시에서 지난 5일 눈길을 끄는 한 행사가 진행됐습니다. 겉보기엔 평범해 보이는 송수관 개통식일 뿐인데, 류제이(劉結一) 전 UN주재 중국대사가 참석했습니다. 같은 시각 샤먼시 앞 바다 건너에 있는 작은 섬 진먼다오(金門島)의 한 저수지에도 3,500명의 진먼다오 주민이 모였습니다. 주민들은 저수지에 물이 차는 모습을 보고 있었습니다. 무슨 특별한 사연이 있는 물이길래, 섬 주민들이 이렇게나 모여 구경하는 걸까요?
진먼다오가 샤먼과는 13km 차이인데, 타이완 본섬과는 220km가 넘는다롱후호 수문이 행사는 추엔저우시 최대 호수인 롱후(龍湖)의 물을 바닷속으로 매설한 송수관을 통해 진먼현 저수지로 처음 보내는 걸 기념하는 자리였습니다. 샤먼시와 불과 13km 정도 떨어져 있는 섬인 진먼다오는 사실 중국 관할지가 아닙니다. 오히려 타이완 본토와 220km 이상 떨어져 있지만 엄연히 타이완 관할지입니다. 문자도 타이완처럼 번체자(繁體字)를 쓰고, 화폐도 타이완 달러를 사용합니다. 다시 말해 이번 송수관 개통은 중국 본토 호수의 물을 타이완 관할지인 진먼다오로 보내는 일을 시작했다는 의미인거죠.
중국 측 송수관 개통식 사진. 왼쪽에서 세 번째가 류제이롱후에서 진먼현까지 이어진 송수관은 지름 8m 크기로, 28km가 연결돼 있습니다. 재작년 6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꼬박 1년 반을 공들여 만든 겁니다. 그런데 이런 대공사를 성공리에 마무리하는 기념식 치고는 중국측 행사장과 타이완측 행사장 분위기가 사뭇 달랐습니다. 중국측은 지금은 국무원 타이완 업무를 책임지는 류제이 주임까지 참석해 본토와 타이완의 통수(通水)에 큰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반면 타이완 행사장에선 행정원 공무원이 중앙 정부의 입장을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가 야유를 받는 어수선한 분위기였습니다. 부족한 물을 받는 수혜 입장인 타이완쪽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는데, 이는 중국과 타이완, 이른바 양안(兩岸) 관계의 현실과 진먼다오의 역사적 배경이 함께 작용한 결과였습니다.

1958년 8월 23일. 마오쩌둥은 샤먼시에 주둔한 해안 포대에 진먼다오 포격을 명령했습니다. 타이완의 장제스도 진먼방위사령부에 즉각 반격을 지시했죠. 양측은 50만발의 포탄을 주고 받았지만, 미군이 개입하려고 움직이자 포격전 양상이 바뀌었습니다. 마오쩌둥은 진먼다오를 쓸어버리겠다는 포대장의 보고에도 불구하고 '미군 개입의 빌미를 줄 수 없다'고 주저했습니다. 장제스도 "미군이 개입하면 중국과 타이완이 영원히 분리된다"는 마오의 뜻을 헤아려 끝내 미군을 끌어들이지 않았습니다. 이후 샤먼과 진먼다오간 포격은 1971년 미중이 수교할 때까지 20년간 진행됐지만, 통상적인 전쟁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포탄이 바다를 향하거나 짝수날은 쉬는 희안한 포격전이었습니다. '하나의 중국'을 표방한 마오쩌둥과 장제스의 이심전심이 서로 통했던거죠.

'8·23 전쟁' 60년이 지난 지금은 샤먼시에서 간단한 출입국 절차만 밟으면 진먼다오를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습니다. 배로 30분이면 충분합니다. 마오쩌둥과 장제스의 이심전심은 2001년 우편·통신·상호 왕래 가능이라는 삼통(三通) 정책으로 이어졌습니다. 진먼다오 주민들은 샤먼시 친척 집을 자유롭게 방문하고, 많은 본토인들은 진먼다오 관광을 즐깁니다. 중국과 타이완의 정치적 관계가 우여곡절이 있을 때도 진먼다오 삼통 정책은 흔들림없이 유지됐습니다. 지난 2015년 시진핑 주석과 마잉주 타이완 총통이 싱가포르에서 만났을땐 '진먼고량주'를 나눠 마셨습니다. 그만큼 진먼다오는 양안 우호의 상징으로 여겨졌습니다.

강수량이 적고 증발량이 많은 진먼다오는 물 부족이 고질적인 문제였습니다. 쓰는 양에 비해 저장수가 턱없이 부족해 지하수를 끌어쓸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땅에 바닷물이 유입돼 더 심각한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더 이상 안되겠다 싶어 본토의 물을 끌어쓰자는 계획을 20년 전부터 추진했습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겠죠? 1t당 2위안(330원) 정도 비용을 지불합니다. 당장은 하루에 34,000톤을 받고, 나중엔 55,000톤까지 늘릴 계획입니다. 진먼다오 주민에겐 말 그대로 하늘에서 내린 단비같은 느낌 아닐까요?

하지만 순조롭던 물 공급 작전은 최근 급격하게 악화된 양안 관계로 인해 암초에 부딪쳤습니다. 시진핑 정부가 '하나의 중국론'을 지나치게 강력하게 몰아부쳤습니다. 그러다보니 타이완 민진당 소속 차이잉원 총통과 충돌이 잦아졌습니다. 급기야 중국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타이완이 유치한 국제대회 개최권까지 박탈시켜버렸습니다. 덩달아 중국인들도 과격해졌습니다. 타이완 출신 여배우가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나라로 타이완을 지칭했다고 뭇매를 던졌습니다. 

타이완을 독립국으로 인정하는거냐는 이유였습니다. 몇년 전 타이완 출신 걸그룹 소녀에게 가했던 우리에겐 너무 익숙한 폭력적인 방식 그대로였습니다. 무조건 힘으로 몰아부치는 중국의 일방주의는 타이완 사람들의 분노를 자아냈습니다. 급기야 차이잉원 정부는 진먼현 정부에 송수관 개통식을 연기하라고 지시했습니다. '하나의 중국'을 둘러싼 양안간 정치적 갈등이 양안 우호의 상징인 진먼다오 주민들 생활에 영향을 미친 겁니다.

당장 물이 필요한데, 중앙정부에선 연기하라니...난감할 수 밖에 없는 건 진먼현 정부였습니다. 중앙정부 지시대로 송수관 개통식은 잠시 연기한다해도 분위기상 언제 다시 재개될 지는 기약이 없어 보였습니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더니..이런 난감한 상황에 빠진 진먼현 현장인 천푸하이는 통수식을 예정대로 강행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정치냐, 민생이냐를 놓고 천푸하이는 민생을 택했습니다. 

양안간 정치적인 분위기나 이해관계 보다는 주민들을 힘들게하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던 겁니다. 그에게 친중 성향의 정치인, 중앙정부의 지시를 무시하는 정치인이라는 비난은 불가피했습니다. 천푸하이는 그대로 감당하기로 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송수관 개통을 마친 천푸하이는 "양안 평화 무드의 기폭제가 되길 바란다"고 소감을 남겼습니다. 진먼다오가 양안 우호 관계의 상징으로 계속 유지되길 바라는 그의 바람은 분단 국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그대로 전달되기에 충분해 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