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7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에서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을 만났습니다.
이란 외무부는 이날 회담이 끝난 뒤 "두 장관은 양국의 현재 상호관계에 만족하고 향후 우호를 증진하기를 희망했다"면서 "중동과 국제사회의 최근 상황과 양국의 이해와 관련한 사안을 논의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란 외무부의 발표는 구체적인 내용없이 포괄적이고 평이했으나, 양국이 처한 현재 상황을 고려하면 리 외무상의 이란 방문이 우연치고는 미묘합니다.
공교롭게 미국이 이날부터 이란에 대한 경제·금융 제재를 시작한 날이어서입니다.
일정만 보면 리 외무상이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참석한 김에 가까운 이란을 이어 방문했다고 할 수 있으나 북미 정상회담에 이은 미국의 대이란 제재 뒤 이뤄진 터라 시점상 정치적 해석이 분분할 수밖에 없습니다.
반미 진영의 전통적 우방인 양측은 한때 미국에 '불량 국가'로 지목돼 제재를 당하는 동병상련의 처지이지만 6월 북미회담을 기점으로 정반대 방향을 바라보게 됐습니다.
미국의 제재를 벗으려 하는 북한이 다시 미국의 제재를 받게 된 이란과 어떤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지도 복잡한 외교 방정식이 됐습니다.
최근 속도가 더뎌졌지만 북한은 비핵화의 조건으로 미국과 급속히 거리를 좁히고 있으나, 이란은 3년 전 핵합의로 다소 해빙됐던 미국과 관계가 미국의 핵합의 탈퇴에 이은 제재 복원으로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1980∼1988년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북한은 서방이 일방적으로 지원한 이라크에 맞선 이란을 도우면서 '혈맹' 수준으로 좋은 관계를 이어왔습니다.
제3세계 국가의 모임인 비동맹운동(NAM)의 주축일 뿐 아니라 북한과 이란이 탄도미사일을 개발하는 데 긴밀히 협력했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졌습니다.
일상적으로 양국의 우호를 확인하기에는 양측은 애매한 지점에 떨어진 상황입니다.
리 외무상의 방문을 두고 미국과 팽팽하게 비핵화 협상을 진행하는 북한이 '미국에 모두 걸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중국을 지렛대 삼는 것처럼 미국의 최대 적성국인 이란과 끈끈한 관계를 과시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옵니다.
이번 방문이 리 외무상의 요청에 따른 것이어서 더욱 이런 시각에 무게가 실립니다.
양측의 관계를 참작할 때 미국의 핵심부와 직접 접촉해 본 북한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등에 대한 모종의 정보와 북미 회담의 진행 상황을 건넸을 수 있습니다.
이런 해석대로라면 현재 미국과 이란의 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은 만큼 리 외무상의 이번 이란 방문은 북미 관계에 잘못된 신호를 보낼 수 있습니다.
북한과 이란 모두에 강경한 존 볼턴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은 6일 CNN에 "역사적으로 이란과 북한은 핵무기 운반 시스템인 탄도미사일에서 협력한 것을 잘 알고 있다"면서 북한의 2007년 시리아 원자로 건설을 예로 들며 "핵과 관련해서도 그들이 함께 일했을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고 주장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의 제재를 벗어나고 싶은 북한이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이란과의 긴밀한 군사·경제적 관계에 변화를 예고하는 방문으로도 보는 의견도 있습니다.
북한이 이란의 탄도미사일 개발에 협력했고, 친이란 예멘 반군에 무기를 밀수했다는 의혹을 받는 터라 북미 관계를 정상화하려면 이란과 관계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란은 6월 북미 정상회담 뒤 "트럼프는 집에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도 합의문을 찢을 수 있는 인물이다"라면서 우방 북한에 미국을 믿어서는 안 된다고 충고했습니다.
일각에서는 북한과 미국이 전쟁 직전의 대치까지 갔다가 극적인 정상회담으로 돌파구를 찾은 것처럼 현재 이란도 미국과 전격적으로 대화할 수 있다고 전망합니다.
트럼프 대통령도 최근 이란과 정상회담을 공개적으로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란은 자신들이 북한과 다르다면서 이를 일축했습니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6일 "제재하면서 대화하자는 것은 무의미하다"면서 미국이 핵합의를 복귀하고 대이란 제재를 철회해야 협상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리 외무상은 8일 로하니 대통령, 알리 라리자니 의회 의장을 만나고 돌아갔습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