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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마루타 알바'…'제약굴기' 중국의 위험한 함정

[월드리포트] '마루타 알바'…'제약굴기' 중국의 위험한 함정
베이징에 사는 38살 장치엔 씨(가명)는 요즘처럼 돈 벌기가 쉬운 적이 없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폭염 속에 에어컨 시설이 완비된 숙소에서 꼬박꼬박 챙겨주는 밥 먹으며 편히 쉬면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전문 의료인들의 세심한 건강체크도 받고 있는데, 돈을 내기는커녕 돈을 받고 있습니다. 단, 하루에 알약 하나씩, 5일 동안 먹어야 합니다. 총 스무 번 정도 혈액검사를 받고, 때마다 소변검사도 해야 합니다. 가끔 무기력해지는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이런 돈벌이가 어디 있나?' 싶어서 원래 하던 일까지 접고 2년째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장 씨가 하는 일은 신약 임상시험 지원 아르바이트입니다. 한국에서 '마루타 알바'라고 불리는 바로 그 일인 거죠.

중국엔 4,000여 개의 제약회사가 있습니다. 생각보다 엄청 많죠? 대부분 신약 제조보다는 복제약 판매 회사들입니다. 중국 의약품 제조 수준은 전 세계 마이너리그 수준이지만, 시장 규모만큼은 메이저 국가를 능가합니다. 중국인들의 전체적인 생활 수준이 높아질수록 의약품에 대한 기대치가 더 높아지고 있습니다. 중국 정부도 의약품 기술 개발과 시장 활성화를 위해 전폭적인 지원을 시작했습니다. 최근 인체용 광견병 가짜 물백신 제조 회사에 대해 정부가 가혹하리만큼 엄정 대처하는 것도 이런 의약품 시장 활성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점에 대한 문책이 포함됐다고 업계에서는 판단합니다.
중국 제약회사 내부
정부의 확고한 지원 의지와 엄청난 시장 잠재력을 갖고 있는 중국 의약품 시장은 점점 끓어오르는 형국입니다. 그러다 보니 신약 개발을 시도하는 회사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신약 임상시험 지원자가 많이 필요하겠죠? 여기에 중국의 독특한 룰이 있는데, 외국 제약사의 수입약도 원칙적으로 임상시험을 다시 해야 합니다. 최근 시장개방 일환으로 일부 예외 규정이 생기고는 있지만, 이미 본국에서 임상시험을 마친 신약이라도 중국에서 팔려면 다시 임상시험을 해야 한다는 얘깁니다. 즉 중국 신약, 수입 약 전부 다 임상시험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 임상시험 알바 시장은 활성화될 수밖에 없겠네요.

제약회사 입장에선 임상시험 지원자를 구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소셜미디어 플랫폼에서 지원자를 구한다는 공고를 올려놓으면 많은 지원자가 몰려듭니다. 위험부담 감수 비용이란 생각보단 비교적 편안하게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알바라고 생각하는 거죠. 지원자 중엔 신체 건강한 젊은 대학생들이 많습니다. 특히 카드값 변제 기한에 몰려 목돈이 필요한 대학생들은 굉장히 적극적입니다. 제약회사에서 임상시험 지원자를 구했다면 반드시 이를 등록해야 합니다. 등록된 인물정보는 관련 병원과 기관에서 공유합니다. 규정상 엄격한 신체검사도 진행하는데, 통과율이 20%가 안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하네요. 만일의 상황에 대비한 당연한 절차겠죠? 돈벌이에 급급하다 보면 무리한 알바 시도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지원자를 관리하는 시스템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월드리포트] '마루타 알바'…'제약굴기' 중국의 위험한 함정
제약회사나 지원자 모두 이런 절차를 부담스러워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선 필연적으로 브로커들이 중간에 끼게 마련이죠. 브로커들은 지원자들의 신체검사 통과를 위해 소변을 바꿔치기하거나 혈액검사 때 생기는 바늘 자국을 임시로 지워주기도 합니다. 비흡연자 대상인 실험에 흡연자가 지원하면 소변에 식초를 떨어뜨리는 방법으로 통과시켜준다는 증언도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게 가능한 방법인지 모르겠네요. 아무튼, 분명한 건 브로커들이 수많은 편법을 동원해 지원자들의 신체검사를 통과시켜주고 있다는 게 공공연한 현실이라는 겁니다. 임상시험 지원자 입장에선 이런 편법을 통해 짧은 기간 동안 여러 개의 고수익 알바를 진행할 수 있고, 제약회사 입장에서도 임상시험을 빨리빨리 진행할 수 있는, 서로 이해관계가 맞는 상황인 셈입니다.

"위험을 가져오는 건 약이 아니라 욕심이다" 임상시험 알바를 꽤 해봤다는 한 지원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무리한 임상시험 알바가 왜 위험한지를 알려주는 자아성찰적 발언이군요.실제 지원자들은 임상시험의 고수익만 생각할 뿐, 고위험은 애써 외면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중국 제약업계에선 건강한 사람이라도 석 달에 한 번 정도 임상시험을 하는 게 적절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습니다. 특히 잦은 임상시험으로 몸에 남아 있는 약의 잔존량이 다른 약과 섞이는 상황이 되면 훨씬 위험해진다고 의사들은 경고합니다. 실제 스무 살짜리 청년이 비염약을 반복적으로 테스트 복용하다 정작 몸이 아팠을 때는 전혀 약효가 들지 않았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월드리포트] '마루타 알바'…'제약굴기' 중국의 위험한 함정
무리한 임상시험이 개인 건강에만 위험을 주는 걸까요? 편법을 통한 임상시험은 정확한 실험 결과를 왜곡할 가능성이 크다고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고 있습니다. 약품의 안정성과 효과를 판단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데이터가 임상시험인데, 만일 이런 왜곡된 임상시험 결과를 바탕으로 승인이 난 약이라면 약품의 안정성과 효과를 어떻게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중국 당국도 이런 사정을 알고 있기에 임상시험 데이터 관리를 더욱 철저히 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이런 상황은 비단 중국만의 특수 현실은 아닐 겁니다. 우리도 중국과 시장 규모는 다를지 몰라도, 임상시험 알바는 고수익 알바로 성행하고 있는 건 똑같습니다. 단기간의 고수익을 바라는 과도한 욕망이 개인은 물론 공공사회에도 얼마나 큰 파장을 미치는지 심각하게 고려해야겠습니다.

(위 기사는 글로벌타임스 기사 내용을 참고했습니다)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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