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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한국당, 답정너, 그리고 꼰대

민경호 기자 ho@sbs.co.kr

작성 2018.08.03 15:06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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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무사 계엄 문건이 공개되면서 일각에서는 심지어 '내란음모 공범' 취급까지 받던 자유한국당이 반격의 포문을 열었습니다. 우선, 기무사 개혁을 주장하는 군 인권센터와 문재인 정부와의 유착 의혹을 꺼냈습니다. 일개 시민단체가 어떻게 군 기밀문서를 그렇게 많이 입수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두 번째 카드는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탄핵소추됐을 당시 기무사도 계엄 관련 문건을 생산했다는 것입니다.

두 주장 모두 일견 의구심을 가질 수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군 인권센터가 그동안 많은 군 내 부조리를 고발하는데 역할을 하긴 했지만, 이번 기무사 계엄 문건 공개 때만큼 자세하고 내밀한 자료를 공개해가면서, 그것도 정부의 발표와 타이밍 상 유기적으로 진행한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2004년 기무사 문건 의혹도 그렇습니다. 현재 일반에 공개되지 않은 상황이어서 검증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실제 문서를 본 한국당 의원들은 "당시 정치인과 언론인 등을 어떻게 관리할지 등 상황을 파악했다"고 말합니다. 두 사안 모두 분명히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어 보입니다.

그런데, 이런 자유한국당 주장의 본질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다른 부분에 관심이 쏠렸습니다. 다름 아닌 김성태 원내대표의 발언 때문입니다. 김 원내대표는 이런 주장을 하면서 지난달 31일, "임태훈 군 인권센터 소장이라는 분은 성 정체성에 대해서 혼란을 겪는 자로 군 개혁을 주도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습니다. 김 원내대표는 논란이 일자 "병역거부한 사람이 군 개혁 이야기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취지라고 설명했지만, "기자회견 하면서 화장을 많이 한 모습이었다"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 김성태, '기무사 계엄 논란' 맞불 놓으려다…비난만 자초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임태훈 군 인권센터 소장'김성태 성 정체성 혼란'이라는 키워드가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내리고 비판적 기사가 쏟아지면서 논란이 이어졌습니다. 급기야 김 원내대표는 점심시간을 30분 앞둔 오전 11시 반, 기자들에게 '점심 번개'를 요청했고, 한국당 공보실은 출입기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돌려 참석 여부를 타진하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전례 없이 이뤄진 '번개 간담회'에서도 김 원내대표는 임 소장의 '화장 많이 한 모습'을 강조하면서 임 소장에게 "사과할 생각 없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해프닝으로 끝날 수도 있던 일이 하루 종일 관심을 끄는 사안이 돼버렸습니다. 나름 날카로운 칼날이었던 '유출 경위', '2004년 기무사 문건'이란 키워드는 사라지고 '김성태 성 정체성 혼란'만 남았습니다.
[취재파일] 한국당, 답정너, 그리고 꼰대-검색어한국당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일각에선 김 원내대표의 이 발언을 긍정적으료 평가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부적절한 발언이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지지층을 결집하는 데에는 효과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응원 문자를 많이 받기도 했다고 합니다. '성 정체성', '군 복무' 등 보수적 가치를 선명히 할 수도 있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어쨌든 잘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부적절하다는 비판을 받으며 논란이 됐음에도 계속해서 '잘못한 것 없다'고 강조하고, 끝내 그 중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내 정당화하는 모습입니다. 한국당 일부의 모습이기는 하지만, 요즘 쓰는 말로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당이 '고루하다', '고여 있다', '답답하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도 이런 모습들과 관련이 없지 않아 보입니다.

'답정너'인지 아닌지는 '꼰대'인지 '꼰대'가 아닌지를 가르는 주요 요소 중 하나입니다. '답정너'의 정도가 심해지면 남의 생각을 듣지 않고, 자기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서 강요하고, 그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으면 종종 정도에 따라 폭력적으로 비춰질 수 있는 모습으로 이어집니다. 지난 1일, 김병준 혁신 비대위원장을 필두로 한국당 비대위가 비공개 현장방문을 나갔습니다. 그때 시민들에게 들은 비판이 '말 험하게 하지 마라', '정부·여당이 잘 한 것은 잘 했다고 하라', '대안을 내놓으면서 이야기하라' 등이었다고 합니다.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김병준 비대위원장은 취임 일성으로 '한국당 만의 가치를 만들겠다'고 했습니다. 비대위 내에 사안별 TF를 만들고, 그 TF 안에서 토론을 거쳐 올라온 내용을 바탕으로 가치 정립에 나서겠다고 합니다. '가치' 만드는 일의 시작을 '토론'으로 보는 것입니다. 누구나 아는 것이지만, 토론은 말하고, 듣고, 내 생각을 수정해 다시 말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답정너'의 태도로는 가치 창출, 가치 정립은 고사하고 토론을 시작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래서인지 김 비대위원장도 '성 정체성' 발언을 김 원내대표가 단독으로 생각한 '소신발언'이라고 선을 긋고, 본인의 견해는 따로 밝히지 않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당 안팎에서는 아직도 관성적으로 남아 있는 '답정너'의 모습, '꼰대'적인 모습이 한국당 혁신에 걸림돌이 되는 것이 아닌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