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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군 의료, '국가 책임' 강조한 대통령…귀 닫은 국방부 ①

[취재파일] 군 의료, '국가 책임' 강조한 대통령…귀 닫은 국방부 ①
"장병에게 신속한 치료와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해, 국가가 끝까지 책임진다는 믿음을 주게 하라." 지난달 27일 청와대에서 열린 군 주요지휘관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군 수뇌부에게 강조한 지시사항입니다. 끊이지 않고 발생하는 군내 의료사고와 무면허 불법 진료 등 부실한 군 의료시스템을 개혁하라는 취지에서입니다.
 
더욱이 당시는 대통령이 국방부로부터 국방개혁 2.0 보고를 받는 자리여서, 청와대 주요 실장과 수석은 물론 국방부 장·차관, 전군 주요 지휘관 전원도 함께 있었습니다. 그런 중요한 자리에서 긴 시간을 할애해 맺음말로 군 의료 개혁을 촉구한 것은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이 문제를 얼마나 심각하게 보고 있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 사안의 심각성을 파악하지 못한 국방부

대통령이 강조한 핵심은 결국 '국가의 책임'이었습니다. 나라를 지키는 장병에게 '국가가 책임지고 지켜준다.'라는 믿음을 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으로 대통령은 ‘군 자체 의료시스템의 획기적 향상’과 ‘민간의료와의 융합’을 제시했습니다. 군 의료진이 자체 실력을 키우면서 동시에 앞서 있는 민간 의료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받으라는 취지입니다.
 
이 같은 대통령 지시를 국방부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요? 저희 SBS 탐사보도팀은 국방부가 작성한 ‘군 의료시스템 개편 추진 TF 운영계획’을 확보해, 전문가 자문을 받아봤습니다. 내용을 본 전문가들의 반응은 한마디로 '실망스럽다.'였습니다. 한 예비역 장성 출신 의료전문인은 "국방부가 군 의료시스템을 개혁할 의지가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라고 혹평했습니다.
 
우선, 국방부가 작성한 안을 보면, 군 의료시스템 개편 추진 TF장은 '국방부 인사복지실장'이 맡는 것으로 돼 있습니다. 여기에 상근 현역장교 6명과 비상근 국방부 공무원 4명, 비상근 민간위원 10명 등 모두 20명이 TF에 참여하게 됩니다. 상근 현역장교는 의무사령부와 각 군에서 영관급 실무자를 파견 받아 운영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상 TF를 국방부 실장이 안을 짜고 장관이 결재하는 기구로 제한한 것입니다.
 
이 같은 인력 편성은 앞선 사례와 비교해보면 더 빈약해 보입니다. 지난 2005년 군에서 위궤양을 진단받고 위장약만 처방받았다가 제대 석 달 만에 위암 말기로 숨진 이른바 '고 노충국 씨 사건' 직후, 당시 노무현 정부는 범정부 차원의 '군 의료 발전추진위원회'를 구성했습니다.
 
국방부 차관과 민간위원이 공동위원장을 맡았고 군 의료 관련한 모든 정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했습니다. 국무조정실과 기획재정부, 보건복지부, 교육인적자원부 등 관련 부처도 대거 참여했으며 민간에서도 의료계는 물론 법조계, 언론계, 예비역, 시민단체까지 위원회에 참여했습니다. 실무지원단만 29명(현역장교+민간전문가)에 달했습니다. 정책 추진 과정은 청와대가 직접 관리·감독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국방부 실장을 TF장으로 고작 20명으로 꾸려진 이번 군 의료시스템 개편 TF는 초라하기 그지없습니다. 청와대 주요 핵심 참모들과 주요 군 지휘관 앞에서 직접 구체적인 구두지시를 내린 대통령의 입마저 부끄럽게 하는 수준입니다.
 
● 총체적 난국에 빠진 '군 의료시스템 개편 TF'
국방부
전문가들은 TF 규모뿐 아니라 추진 중인 정책도 문제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국방부는 국군의무사령부 기능을 국방부와 합참, 각 군으로 나누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정했습니다. 그 자리에 국방의료공단을 설립하고, 국군외상센터와 연계해 핵심 군 병원(수도, 대전) 2곳을 민간위탁 경영방식으로 운영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한마디로, 군 의료체계를 사실상 민간에 넘겨주겠다는 것입니다. 이는 평소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주장해온 내용으로, 그동안 군 의료 관련 전문가들이 국방부와 청와대 등에 건의한 내용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인사참모 출신 한 예비역 장성은 "전 세계 어느 나라를 보더라도, 군 의료시스템 자체를 민간에 그대로 이양한 사례는 없다. 기본적으로 군은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토대로 움직이는데, 군 의료시스템을 민간위탁방식으로 운영하면 '나라를 지키다 부상한 장병은 국가가 끝까지 책임진다.'라는 의미가 퇴색되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습니다.
 
군의관 출신 의과대학 의료원장도 "군 의료시스템을 민간으로 넘기는 것과 군 병원에 적을 두고 민간병원의 도움을 받는 것은 다른 얘기다. 만약 군 의료 시스템을 민간에 맡기면, 군 병원도 경제적으로 생존하기 위해 외부 민간병원과 경쟁하게 된다. 즉, 군 병원도 돈 버는 '장사'만 할 것이고 그러면 군 의료도 상품화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치료받다가 의료사고가 나면 국가 책임이 아닌 민간이 책임을 지는 꼴이 돼버린다. 과연, 어떤 국민과 장병이 이러한 제도를 달갑게 받아들이겠는가?"라고 일갈했습니다.
 
전문가들은 군 병원이 민간 환자를 받아들여 군 자체 의료 수준을 높이는 게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실제 미군이 군 외상센터에 민간 교통사고 환자를 꾸준히 받아들여, 민·군 협진을 통해 군내 의료진의 수준도 높이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국지도발과 전시 대량 환자 발생에 대비해 이국종 교수가 있는 아주대병원 외상센터 등과 연계해 군 의료진과 운영시스템 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조언도 나옵니다.
 
더 나아가 실력 있는 민간의사를 군 병원으로 영입할 수 있게 기재부와 인사혁신처 등과 협의해 보수체계와 법률을 정비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설명합니다. 그런 점에서, 현재 국방부 군 의료 개편 TF가 추진 중인 정책은 주객이 전도됐다는 비판이 제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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