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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라돈 침대 주민 반대, 결국 해법은 소통

[취재파일] 라돈 침대 주민 반대, 결국 해법은 소통
섭씨 35도를 넘나드는 폭염 속에 충남 천안의 대진침대 본사를 찾았다. 작열하듯 내리쬐는 햇볕과 함께 '라돈 침대 반입 결사반대'라고 적힌 현수막과 산처럼 쌓인 매트리스 더미가 취재진을 맞았다. 오랫동안 농성을 이어온 주민들은 더위에 조금 지친 기색이었지만 표정만큼은 한층 밝아 보였다.

이날(07.30) 천안에선 한 달 넘게 중단됐던 대진침대 해체 작업이 재개됐다. 건강에의 악영향 등을 이유로 침대 반입과 분리·해체를 반대해오던 지역 주민들과 '라돈 침대' 주무부처인 원자력안전위원회 측이 합의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지난 6월 26일 주민 반대로 해체 작업이 멈춘 지 정확히 35일 만이다. 대진침대 매트리스가 쌓여있는 야적장 한쪽에선 주민 대표와 강정민 원자력안전위원장을 비롯한 원안위 관계자들 그리고 지역구 국회의원인 더불어민주당 박완주 의원이 매트리스에 달라붙어 해체 작업을 진행했다. 침대회사 직원의 안내에 따라 침대를 자르고 잡아 뜯는 손놀림이 꽤나 그럴싸했다.

이렇게 해체된 매트리스는 방사성 물질인 모나자이트가 포함된 부분과 포함되지 않은 부분으로 분리돼 최종 처리를 기다리게 된다. 원안위와 대진침대 측은 해체가 중단되기 이전인 지난달 25일까지 처리된 매트리스 6,793개를 포함해 천안에 보관 중인 2만 4천 개를 가급적 다음 달 안에 모두 해체할 방침이다. 주민들은 해체 작업이 재개된 다음 날 농성을 풀었다. 천안의 경우, 어쨌든 한 달 넘게 이어져 온 사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은 셈이다.

● 당진항 매트리스 1만 7천 개, 아직 손도 못 대

반면 같은 이유로 주민 농성이 이어지고 있는 충남 당진은 아직 해결의 조짐이 없다. 지난달인 6월 16일, 우체국이 집중수거한 대진침대 매트리스 1만 7천여 개가 당진항에 쌓인 뒤로 주민들은 머리띠를 싸맸다. 이후 여러 차례 '주민 합의', '현장에서 해체' 등의 소식이 간간이 전해졌지만 실제로 이뤄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당진 주민들의 입장은 확고하다. 당진항에 쌓인 매트리스 이전 및 현장 해체 반대다. 지난 16일, 엄재식 원안위 사무처장이 당진시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주민을 설득해 현장에서 해체 작업을 실시하겠다"고 했지만 2주가 지나도록 손도 못 대고 있다. 천안의 경우 주민 반발 직전까지 6,793개를 해체하긴 했지만 당진항의 매트리스는 수거된 그대로 방치돼있다.
라돈 침대
처리는 요원하고 갈등은 오히려 처음보다 증폭됐다. 지난달 25일에는 주민 요구에 따라 천안 본사로 매트리스 이전을 시도했지만, 이번에는 또 천안 주민들이 반대하면서 고스란히 되돌아왔다. 지난 16일에는 홍남기 국무조정실장과 강정민 원자력안전위원장이 지역을 방문해 고대1리 주민들의 현장 해체 동의를 이끌어냈지만 이번에는 다른 인접 지역 주민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고대2리와 한진1, 2리 근처 초등학교 어머니회까지 나서 "논의에서 제외됐다"며 합의 무효를 주장하고 천막 농성에 들어갔다. 이후 논의는 여전히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고대1리를 제외한 다른 지역 주민들은 정부뿐 아니라 단독으로 합의를 진행한 고대1리 주민들을 상대로도 배신감을 토로하고 있다. 상황이 더 악화된 셈이다.

물론 당진과 천안 상황을 단순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천안 주민들이 현장 해체에 합의한 데는 더 이상 매트리스를 반입하지 않겠다는 중재안의 영향이 컸다. 당진 주민들이 매트리스 이전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는 만큼,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논의는 교착 상태에서 맴돌 가능성이 크다. 대진침대 본사가 있는 천안이 아닌 제 3지역으로의 이전은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시나리오다. 그 사이 당진 주민들은 여전히 뙤약볕에서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 천안과 당진, 조금 다른 '소통'의 풍경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지역의 풍경이 대조되는 건 사실이다. 주민들은 잘못이 없다. 대비되는 건 현안을 둘러싼 소통의 형태다. 천안의 경우 지자체와 지역 정치권이 적극적으로 합의를 중재하려는 노력이 이어졌다. 지역 주민들이 농성에 들어간 뒤 시·도의원이 날마다 현장을 찾았다. 주민 의견을 듣고 정부 입장을 전하며 갈등을 중재했다. 해결의 물꼬를 튼 건 지난 19일 간담회였다. 지역구 국회의원인 박완주 의원이 마이크를 잡고 정부 관계자들과 주민 대표들이 모인 자리에서 소통을 유도했다. 박 의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7월 말까지 반드시 해결한다는 데드라인을 잡고 서로 오해가 없도록 의견을 교환했다"면서 "사실상 이날 7~80% 합의했다"고 설명했다.

당진은 상황이 훨씬 복잡하다. 출발부터가 소통의 부재였다. 우체국 직원 3만여 명이 총동원돼 수거한 매트리스를 "군사작전 하듯"(당진 주민의 표현을 빌었다) 당진항으로 옮기는 동안 지역 주민들은 일체의 언질도 받지 못했다. 매트리스를 타 지역으로 반출한다는 약속은 없던 일이 됐다. 지난 16일 있었던 주민 총회에서 정부 측이 절차의 미숙함을 사과하고 안전성과 관련된 설명을 진행했지만 고대1리를 제외한 다른 지역 주민들은 배제된 것도 모자라 아무 전달도 받지 못했다. 주민들은 안전성에 대한 설명도 언론을 통해서만 들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라돈 침대
심지어 주민 간 불신도 고조되고 있다. 앞선 16일 총회에 다른 지역 주민들이 배제된 것과 관련해 고대1리 주민대표 측은 "언론의 지나친 관심을 따돌리기 위해서"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는 게 다른 지역 주민들의 전언이다. "언론에 너무 부각되면 부담이 될 수 있으니 언론을 따돌리기 위해 단독으로 회의를 가졌다"는 주장인데, 이는 "핑계에 불과하다"는 게 다른 지역 주민들의 의견이다. 지역 주민끼리 의견을 모으는 게 합의의 출발인데,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합의는커녕 대화조차 쉽지 않은 분위기다. 고대2리와 한진2,3리 주민들은 "누군가 중재하려는 사람도 마땅히 보이지 않는다"고 전했다.

● 당진의 복잡한 감정…결국 누군가 풀어야

사실상 당진 주민들이 갖는 반발심의 기저에는 상대적인 박탈감과 소외감이 강하게 깔려있다는 게 지역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가뜩이나 제철소나 발전소 때문에 환경 영향을 우려하는 주민들이 많은데 아무런 공지나 논의 없이 방사능 물질이 함유된 매트리스가 무더기로 들어오니 분통이 터졌다는 얘기다. 심지어 이후의 논의 과정조차도 매끄럽지 못했다. 약속은 번복됐고, 이에 대한 추가 설명이나 사과는 없었다. 원안위는 물론 SBS를 비롯한 언론에서도 야적장의 매트리스 보관 및 해체 작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적다고 여러 차례 설명했지만 효과가 떨어지는 것도 이로 인한 반발 정서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주무 부처인 원자력안전위원회도 물론 고충이 있다. 사전에 알려주고 동의를 구한다 하더라도 애초에 방사성 물질이 함유된 매트리스가 대량 반입된다는 데 손을 들고 반길 지역은 없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전국적으로 수거한 매트리스를 한꺼번에 가져다 놓을 곳도 마땅치 않았을 것이다. 당진이 적재 장소로 선정된 배경에는 "천안 대진침대 본사와 가까운 곳에서 넓은 부지를 찾다 보니" 그랬다는 게 원안위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러나 결국 갈등을 중재하고 사태를 원만히 해결하는 게 원안위를 비롯한 정부·지자체 관계자들의 할 일이다. 한 달 넘게 이어진 논란과 갈등이 접점을 찾기는커녕 더 꼬이고 증폭된다면 누군가는 책임을 미루고 게을리하고 있다는 뜻이다. 적어도 이번 문제에 있어서 배상금과 같은 복잡한 이슈가 대두된 것도 아니다. 처음 합의의 절차가 잘못됐다면, 다른 마을 주민들도 찾아가 양해를 구하고 충분히 설명했어야 한다. 설득의 대상도 많지 않다. 고대1리를 제외해도 기껏해야 3개 마을과 1개 학부모 단체다. 복잡하게 꼬인 실타래가 과학적 사실에 관한 오해든, 실무적 절차든, 주민의 감정에 관한 문제든, 결국은 누군가 나서서 풀어야 할 문제다.
라돈침대 야적장
● 소통 미숙이 키운 '라돈 침대'…앞으로도 반복될 것

애초 라돈 침대 사태 초기 혼란이 커진 데는 정부 측의 미숙한 소통도 한몫했다. 섣부른 1차 발표와 번복, 명쾌하지 못한 정보 공개가 사태 초반 국민의 혼란을 키웠다. 소관 부처인 원자력안전위원회가 대민(對民) 기관이 아닌 원자력 관련 규제기관이며, 그런 면에서 부족함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것이 면죄부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이 미숙함이 반복된다는 점이다. 지금 현장에서 빚어지는 혼란만 봐도 그렇다. 비단 한 기관만의 책임은 아니다.

'라돈 침대' 사태는 현재진행형이다. 아직 수거조차 되지 않은 매트리스도 7천여 개에 달한다. 최종 처리 방안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최종 처리 방안이 확정되면 해체된 매트리스를 또 옮겨야 한다. 어제는 다른 침구류에서도 문제가 확인됐다. 그때마다 이 난리통을 반복할 것인가. 힘이 들더라도 세밀하고 끈질기게 풀어나갈 수밖엔 없다. 참 흔하고 뻔한 단어가 '소통'이지만 그래도 결국 답은 '소통'에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게 나랏일을 하는 많은 이들의 이야기였다.

▶ [8뉴스 리포트] '라돈 침대' 해체 재개했지만…손도 못 대는 침구 '산더미' (2018.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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