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골룸] 북적북적 148 : '모단 껄' 강주룡이 을밀대 지붕 위로 올라간 날- '체공녀 강주룡'

▶ 오디오 플레이어를 클릭하면 휴대전화 잠금 상태에서도 들을 수 있습니다.
-오디오 플레이어로 듣기


"등을 곧추세운 채로 발소리를 맞는 것이야말로 굶주린 이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가장 나중 된 저항의 몸짓이라 여겼다. 오늘만은 그럴 수 없을 것 같다고, 주룡은 뒹굴며 생각한다. 그럴 수 없을 것 같다고 정한 것은 누구지. 그럴 수 없다, 가 아니라 그럴 수 없을 것 같다, 고 하는 것은 누구지. 강녀야. 강녀야. 주룡은 부들거리는 팔목으로 바닥을 민다."

을밀대상의 체공녀, 라고 혹시 들어보신 분 있나요? 우리나라 처음으로 고공 단식 농성을 했던 여성 노동운동가, 강주룡을 인터뷰한 1931년의 월간지 '동광' 무호정인 기자의 '여류투사 강주룡 회견기' 제목입니다.

7월 18일에 출간된 따끈따끈한 신간 <체공녀 강주룡>은 그 '여류투사' 강주룡의 실제 인생을 바탕으로 한 신인작가 박서련의 장편소설입니다.

실은 이번 주 '북적북적' 녹음을 하루 앞두고 우연히 읽게 됐는데, 그야말로 '심봤다'....싶었습니다. '와 이거다!' 하고 뿌듯하게 마음이 달아올라 급하게 출판사에 낭독을 허락해 달라고 요청하고 이번 주의 녹음 계획을 몽땅 변경해 읽었습니다.

강주룡이란 이름을 저는 이번에 처음 들었습니다. (부끄럽지만, 을밀대도, 몇 년 전까지는 마포에 있는 냉면집 밖에 몰랐습니다.)
1931년 평원고무공장에서 일하던 여성 노동자 49명의 파업을 주도하며 공장을 점거했던 강주룡은 당시 일제 경찰에 무력으로 쫓겨난 뒤에 (냉면집 말고) 평양에 있는 고구려 유적, 평양성 을밀대의 지붕 위로 올라갑니다.
그때 그 모습이 동광의 그 인터뷰 기사에 사진 한 장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 소설의 맨 뒤에, 부록으로 실렸습니다.) 
화질이 물론 좋지 않고 얼굴은 제대로 보이지도 않습니다. 사진을 찍고 있는 기자를 못마땅한 듯 뒤돌아 째려보는 당시 일본 경찰의 얼굴이 오히려 훨씬 더 크고 자세하고 보이는 사진입니다만, 이 소설을 읽고 나면, 보이지도 않는 그 강주룡의 눈빛이 그 날에 온통 가득차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나의 고향은 평북 강계입니다. 열네 살까지는 집안이 걱정 없이 지냈으나 아버지의 실패로 가산을 탕진하야
내 나이 열네 살 적에 서간도로 갔습니다. 거기서 농사하면서 7년 동안 살았는데 스무살 나든 해에 통화현에 잇는 최전빈이라는 이에게 시집갔습니다.

남편은 그때 겨우 15세의 귀여운 도련님이었습니다. 나는 남편의 사랑을 받았다기보다도 남편을 사랑하였습니다. 첫눈에 아조 귀여운 사람 사랑스런 사람이라는 인상을 얻었습니다. 부부의 의도 퍽 좋았습니다. 동리가 다 부러워하였답니다. 시집 간 지 1년 후부터 우리 부부의 생애에는 큰 변동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남편이 OO단 수령 백광운(지금은 그이도 죽었습니다.)씨의 제2중대에 편입된 것입니다. 물론 나도 남편과 같이 풍찬노숙하며 OO단을 따라 다녔습니다. 6, 7개월 OO단을 따라다녔는데 나중에는 '거치장거려서 귀찮으니 집에 가 있으라'는 남편의 명령을 받고 나는 본가에 도라 와 있었습니다.

남편이 백광운 씨의 제2중대에 편입된 지 1년 만이었습니다. 그때는 내가 본가에 돌아온 지 5, 6개월 후였는데우리 본가에서 100여 리나 되는 촌락에서 남편의 병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갔을 때는 벌서 틀렸습디다. 손가락을 잘라서 피를 먹였더니 좀 정신을 차렸었으나 그날 밤으로 죽었습니다.
밤에는 단지 나 혼자 그를 간호하고 있었는데 잠간 새에 숨이 끊어졌습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몰라서 바늘로 살을 찔러 보고야 아주 죽은 줄 알았으나 기위 죽은 사람이라 시신 옆에서 한잠 자고 이튿날 아침 병문안 왔던 사람들의 손으로 묻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시집으로 돌아갔었습니다. 좀 창피한 이야기지만은 시집에서는 나를 의심하야 남편 죽인 년이라고 중국 경찰에 고발하야 1주일이나 갇혀서 고생했습니다. 하도 원통하고 또 돌봐주는 이도 없어서 1주일을 꼬박 굶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사흘쯤 단식이야 쉽지 않아요?)
서간도서 귀국한 것은 내가 스물네 살 되든 해였습니다. 처음에는 사리원에서 1년쯤 지냈는데 부모와 어린 동생을 다리고 내가 밥벌이를 하면서 아들 노릇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평양 온 것이 벌서 5년째 됩니다. 처음부터 고무직공으로 밥벌이를 했지요. 고무직공 조합에는 작년 파업이 일어나기 바로 전에 입회했습니다."

<'동광' 1931년 5월호, 40~41쪽>


'체공녀 강주룡'은 이 인터뷰를 뼈대로, 박서련 작가가 살과 근육과 영혼을 붙여 탄생했습니다. 박 작가는 20살부터 30살까지의 주룡이를 과함도 모자람도 없이 생생하게 되살려냈을 뿐, 픽션의 휘광이 무리하게 덧씌워진 곳은 한 군데도 없다, 는 생각이 듭니다.

남편이 귀여웠다고, 내가 남편을 더 사랑했다고 말하는 1931년의 시골 여자.
죽어가는 남편을 오랜만에 만나 제 손가락을 찢어낸 피를 먹이고, 아무리 남편이라지만 그 시신 옆에서 하룻밤을 혼자 지새는 사랑과 배포를 지닌 여자.
아무리 비통이 지나쳤다 한들 며느리를 살인범으로 모는 시가로부터 쫓겨나 친정 식구들의 가장 노릇을 하다 노동자, 그리고 노동운동가가 된 여자.
그렇게 모진 삶을 술회하면서 남편을 잃고 일주일도 굶어봤는데, 사흘 단식쯤이야 쉽지 않아요? 대찬 농담 한 마디 덧붙이는, 그런 사람.

강주룡의 삶은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들 만큼 곡절많은 것 같지만, 우리의 할머니, 엄마, 이모, 고모들... 중에-우리가 그 얘기를 제대로 들어본 적 없을지언정-실은 그렇게 비슷하게 살았던 사람이 하나 둘씩 이상은 꼭 있는, 바로 그 여자입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나 태도가 정말이지 1931년의 여자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도,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선입견이고, 1931년에라고 여자들이 그렇게 얼굴없고 성격없는 존재들이었을 리가 없었으리라는 생각이 들어 문득 제 자신이 더욱 부끄러우면서도, 문득 가슴에 무언가가 벅차오릅니다.

이 책에 나오는 모든 남자들은 실존 인물입니다. 강주룡의 남편 최전빈은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습니다.
독립군 운동가로 유명한 백광운 장군, 그리고 고무공장에서 강주룡이 만나게 되는 정달헌 같은 남자들 모두 역사에 남았습니다.

그렇지만 박서련 작가가 다시 불러낸, 얼굴도 이름도 모두 잊혀졌던 주룡의 엄마 동무 친구들, 그리고 이렇게 기사 두 세 개로만 남은 강주룡도 거기 있었지, 새삼 사무쳐 다시 한 번 흑백사진 속, 잘 보이지 않는 그 얼굴을 들여다 봅니다.

"좌우간 모단 껄은 학생 아니면 기생이다. 바삐 움직이던 직공들의 손이 멈춘다. 늬들이 학생이니? 조용하다. 반장은 코웃음을 친다. 기럼 느이가 모단 껄 행세하려면 기생밖에 더 있네? 허파에 헛바람들이 가뜩 들어가지고 일은 하는 둥 마는 둥. 뉘기든 모단 껄 되고 싶은 사람은 내게 오라. 모단 껄 만들어주마. 반장이 나간 다음에야 주룡은 허리를 펴고 일어난다. 반장이 아무렇게나 구겨놓은 그림들을 주워서 펴가지고 제 품에 넣는다. 우는 사람은 아마도 삼이겠거나 했는데 일어나서 보니 짐작한 대로다. 저를 달래러 오려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저어 보이고 주룡은 다시 작업대 앞에 앉는다. 넘어져 아픈 것은 곧 괜찮아질 것이고, 구겨진 그림은 주인네서 인두를 빌려 펴면 된다. 돼먹지 못한 인간이 한 고약한 말은 잊으면 그만이다. 누가 나더러 모단 껄이 아니라 했다고
내가 정말 모단 껄이 아닌 것은 아니다. 자기가 모단 껄이 아니라는 것, 모단 껄 되고 싶은 심정이 언감생심으로 보이리란 사실은 주룡 자신이 가장 잘 안다. 언제나 그것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있으니 도무지 모를 수가 없다.
그렇지만 그것이 반장 때문은 아니다. 반장 같은 것은 모단 껄 되기에 요만큼도 방해가 될 수 없다. 구남성의 박해를 받았으니 이는 도리어 모단 껄 되기의 제일보에 진입한 것이다. 주룡은 그런 생각으로 남은 업무를 버티고, 기어이 집에 가서 울음을 터뜨린다."

"곳곳에서 말들이 솟는다. 주룡은 삼이가 울먹이는 것을 본다. 생각거니 저들은 우리를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 거이 분명합네다. 우리가 사람인 것을, 그것도 저들보다 강한 힘을 가진 사람들인 것을 우리 손으로 보여주자면
저 강덕삼이 형님이 말씀하신 바와 같이 우리의 단결된 뜻을 총파업으로 보여주어야 됩네다. 내래 이레인가 여드레인가 조합원 교육 배워놓은 거이 다인 햇병아리지마는 감히 힘주어 말하고자 합네다. 총파업 선봉에 이 강주룡이가 설 것입네다. 내 동자, 내 동무, 나 자신을 위하여 죽고자 싸울 것입네다."


국립중앙도서관 디지털컬렉션에서 국사편찬위원회 김대호, 장용경 두 위원은 "강주룡이 을밀대 지붕 위에 올라 관철하려던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지만, 정달헌이 해방 이후까지 살아남아 역사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것에 비하면, 이름 없었던 한 여성 투사의 삶과 죽음은 초라하게까지 느껴진다"고 강주룡 소갯글의 끝을 맺었습니다.

인텔리가 아닌 진짜 공장 출신의 여성 노동운동가를 역사는 오랫동안 잊었습니다. 그러나 2018년의 이 소설이,
당시 인텔리 아무도 생각지 못했던 방식의 고공 농성을 먼저 생각해 내고, 을밀대 지붕에 올라가 앉아 "내가 배와서 아는 것 중에 대중을 위하야서는...(중략) 명예스러운 일이라는 것이 가장 큰 지식입니다. 이래서 나는 죽음을 각오하고 이 집중 우에 올라 왓습니다." 외치던 서른 살 체구 작은 여자의 마음 속에 가득했던 그 우주를 소환했습니다. 그리고 그 강주룡들은 2018년 지금도, 여전히, 있습니다.

이 여름, '체공녀 강주룡'을 한 번 만나보시라고, 지붕 위에 혼자 앉은 주룡이의 손을 한 번 잡아달라고, 뜨겁게 권하고 싶습니다.

* 낭독을 허락해 주신 '한겨레출판'에 감사드립니다.


▶ <골룸: 골라듣는 뉴스룸> 팟캐스트는 '팟빵'이나 '아이튠즈'에서도 들을 수 있습니다.
- '팟빵' PC로 접속하기
- '팟빵' 모바일로 접속하기
- '팟빵' 아이튠즈로 접속하기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