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핵화의 첫 단추라고 할 신고 대상을 어디까지 할 지와 비핵화의 실행 과정을 담은 시간표, 그리고 북측의 실천 의지를 가늠할 실험장 파괴를 요구한 것이다. 여기서 눈에 띄는 것은 비핵화 시간표(timeline)이다.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핵 등 대량파괴무기(WMD)와 탄도 미사일의 1년내 폐기' 시간표를 꺼낸 바 있지만 국무부는 '우리는 시간표를 내놓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어왔다.
그런데 방북 시 요구사항을 보면 미국이 북한에 ‘너희가 먼저 시간표를 제시해 봐라’고 역제안을 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폼페이오 장관은 지난 8일 일본 도쿄에서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을 한 뒤 열린 공동기자회견에서 '비핵화 시간표에 대한 진전이 어느 정도 이뤄졌느냐'는 질문을 받고 "시간표와 관련해 많은 시간 이야기를 나눴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확한 시간표가 어떻게 짜일지를 정립하려면 여전히 많은 일이 남아있다"고 덧붙였다.
회담 당시 공개된 발언으로도 김영철 부위원장이 "분명히 해야 할 것들이 있다"고 말한 데 대해 폼페이오 장관이 "나 역시 분명히 해야 할 것들이 있다"고 답하는 등 양측의 신경전은 팽팽했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폼페이오 장관이 회담에서 ‘북한이 비밀 우라늄 농축시설을 가동 중이며, 함흥 미사일 공장을 확장 공사하고 있다는 정보가 있다’며 사실 여부를 추궁했다고 보도했다. 폼페이오 장관이 떠난 뒤 북한은 외무성 담화를 통해 "미국 측은 싱가포르 수뇌 상봉과 회담의 정신에 배치되게 CVID요, 신고요, 검증이요 하면서 일방적이고 강도적인 비핵화 요구만을 들고나왔다"고 추가로 비난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회담 후 “생산적인 대화를 했다”고 했지만 외교 용어로 생산적이라는 말은 ‘서로 할말을 다했고 합의는 이뤄지지 않았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미 행정부가 한국 원내대표단에게 기밀 사항으로 분류될 수 있는 북미 회담 발언을 공개한 것은 비판 여론에 대한 대응 성격이 크다. 앞에서도 언급했듯 폼페이오 3차 방북을 놓고 ‘빈손 방북’과 ‘양보만 했다’는 비판이 미국 안팎에서 제기된 바 있다. 그러기에 ‘미국은 비핵화와 관련한 정당한 요구 사항을 명확하게 전달했지만, 북한이 이에 불응하고 있다’는 틀과 그 근거를 제시한 것이다. 외교 소식통은 “한국 사정에 정통한 국무부가 원내대표단에게 이런 말을 전했을 경우 당연히 보도 가능성을 염두에 뒀을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