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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미 "괴물, 10년 전에 썼어야할 시…'괴물 주니어' 넘쳐난다"

최영미 "괴물, 10년 전에 썼어야할 시…'괴물 주니어' 넘쳐난다"
시 '괴물'을 발표해 국내에서 '미투 운동'이 들불처럼 번지는 데 기여한 최영미(57) 시인이 "여성성을 팔지 않아도 생존할 수 있는 사회가 되려면 미투 운동이 더 전진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3일 서울시 성평등상 대상을 받은 최 시인은 서울시청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오랫동안 존재했던 악습이 갑자기 사라지지는 않는다"며 "당분간 조심하는 분위기가 조성됐으니, 미투 운동을 지속적으로 이어가야 보수적 한국 사회의 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시 한 편으로 시끄러워졌다는 것 자체가 이 사회가 변할 준비가 돼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며 "한국 사회가 변화를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올라왔다"고 '더 깊은 변화'를 기대했습니다.

원로 시인 고은 씨의 상습적 성추행을 폭로한 '괴물'은 최 시인이 지난해 9월 인문교양 계간지 '황해문화'에서 원고 청탁을 받고 쓴 세 편의 시 중 하나입니다.

당시는 미국에서도 미투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기 전이었습니다.

시 '괴물'은 "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 / 문단 초년생인 내게 K시인이 충고했다 / 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 / K의 충고를 깜박 잊고 En선생 옆에 앉았다가 / Me too / 동생에게 빌린 실크 정장 상의가 구겨졌다"라는 내용으로 시작됩니다.

최 시인은 "'괴물'을 썼을 때는 오늘 같은 날이 오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는 술술 써내려간 시를 보내기 직전 고민에 빠졌었다고 토로했습니다.

본문의 'En'을 'En'으로 쓸지, 'N'으로 쓸지를 놓고서였습니다.

결국 'En'을 택했습니다.

그러고선 친구들 앞에서 시를 암송하며 발표해도 좋을지 의사를 물었습니다.

최 시인은 "제가 쓴 시를 다 외우지는 못하는데, 마음으로 우러나와 쓴 시는 외우겠다고 작정한 것도 아닌데도 외워진다"고 했습니다.

친구들 대부분이 발표하라고 힘을 줬습니다.

그렇게 '괴물'은 작년 12월 세상에 나왔습니다.

올해 2월부터 본격적으로 주목받으며 국내에서 미투 운동이 들불처럼 일어나게 한 '촉매제'가 됐습니다.

최 시인은 "너무 늦게 써서 미안하다는 생각을 하며 시를 썼다"며 "10년 전에 써서 (문단 성폭력 문제를) 청소해야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제가 등단할 무렵에는 여성 시인을 기인 취급하고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분위기가 있었다"며 "지금은 조금 나아졌겠지만, 아직 '괴물 주니어'들이 넘쳐난다"고 말했습니다.

'괴물'을 몇십 년간 방치하며 그를 흠모한 남성 문인들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문단 내 성폭력 문제를 추가 폭로할 계획은 없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최 시인은 "괴물과 싸운 것만 해도 힘에 부친다"며 "지난 2월 언론 인터뷰에서 '판도라의 상자를 다 열지 않았다'고 언급한 것은 경고성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이제 여성들에 대한 공공연한 성추행과 성폭력을 묵인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됐기 때문에 굳이 판도라의 상자를 열 필요는 없다"며 "반성해야 할 분들은 스스로 그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최 시인은 고은 시인의 시를 굳이 교과서에서 뺄 필요는 없다는 견해를 밝혔습니다.

"그의 시가 생명력이 있다면 교과서에서 빼든 안 빼든 살아남을 것"이라며 "오로지 시간만이 말해줄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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