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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양심적 병역거부'는 어떻게 7년 만에 다수 의견이 되었나

[취재파일] '양심적 병역거부'는 어떻게 7년 만에 다수 의견이 되었나
● 그래서 '양심적 병역거부' 처벌은 위헌일까 합헌일까

"헌법재판관님들께 박수한번 쳐주세요. 감사합니다. 만세!"

헌법재판소의 결정 직후 환호성이 터졌다. 헌법재판소 앞에는 '합헌' 쪽 보수단체들과 '위헌' 쪽 병역거부자들, 시민단체 등이 맞서고 있었다. 먼저 환호성이 터진 쪽은 보수단체였다. 병역법 88조 1항에 대해 합헌이라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를 면밀히 들여다보면 보수단체 쪽이 좋아할 결정은 결코 아니었다.

헌법재판소 2층 브리핑룸에서 선고 결과를 실시간으로 보고 있던 기자들도 당황했다. 병역법 88조 1항에 대해서는 4(합헌) 대 4(일부 위헌)대 1(각하) 의견으로 합헌. 병역법 5조에 1항 대해서는 6대3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이 결과가 어떤 의미를 뜻하는지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연출됐다. 헌법재판소의 결과는 칼로 자르듯 단순하지 않았다. 그래서 헌법재판소는 '양심적 병역거부' 처벌에 대해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을까, 반대 결과를 내렸을까.

● 대체복무제 도입 - 6:3으로 "헌법불합치"

헌법재판소가 위헌 여부 판단을 내린 조항은 두 개다. 병역의 종류를 규정한 병역법 5조 1항('병역종류조항')과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는 88조 1항('처벌조항')이다.

먼저 병역 종류 조항에 대해 헌재는 6(헌법불합치) 대 3(각하)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한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라는 결정이다. 2019년 12월 31일까지 국회가 입법을 하도록 시한을 둬서, 2020년 1월 1일부터는 위헌 요소가 있는 병역 종류 조항이 법적 효력을 잃게 했다. 헌법재판소는 2004년 헌재 결정을 통해 국회에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대안을 검토하라고 권고했지만, 14년 동안 입법적 진전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14년이 지난 이상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으니 국회가 2020년 전에는 반드시 대체복무제를 만들도록 결정을 내린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대체복무제 도입의 근거로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숫자가 적다는 점을 들었다. 한해 5,6백 명 수준의 대체복무가 발생해도 병역자원의 감소를 논할 정도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또한 양심의 자유가 제한되는 현재 상황을 기본권 침해로 보고, 군사훈련을 수반하지 않는 대체복무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한국의 특수한 안보상황을 이유로 도입을 미루는 것이 정당화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 양심적 병역거부 처벌 - 4:5로 합헌? 6:3으로 '사실상 위헌'

문제는 병역법 88조 1항, '처벌조항'에 대한 해석이다. 이 조항에 대해 4명의 재판관은 일부 위헌이라 판단했지만, 4명은 합헌, 1명은 각하 의견을 내렸다. 6명 이상의 재판관의 동의를 얻지 못해 합헌 결정이 내려졌다. 7년 전 헌재의 합헌 결정처럼 이번에도 헌재는 똑같이 합헌 결정을 내린 것일까.

표면상으로는 합헌이지만, 재판관들의 의견을 들어보면 헌재가 처벌조항에 대해서도 '사실상 위헌' 결정을 내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재판관 4명(이진성, 김이수, 이선애, 유남석)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는 것이 위헌 소지가 있다고 일부 위헌으로 판단했다. 그런데 합헌으로 판단한 4명의 의견을 들여다보면 2명과 2명으로 나눠진다. 재판관 강일원, 서기석은 합헌 의견에서 "대체복무제가 없는 상황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처벌하는 것은 헌법에 위반"된다고 밝혔다. 처벌조항의 '정당한 사유'에 양심적 병역거부가 해당되므로, 법원은 무죄 선고를 내려야 한다는 결정이기도 하다. 일부 위헌 4명과 합헌 중 2명(강일원, 서기석)을 합쳐 총 6명의 헌법재판관이 양심적 병역거부 처벌은 위헌이라고 봤다.

한 헌법재판관은 이번 결정을 '양심적 병역거부자 처벌은 유지'라고 해석한 것에 대해 "헌재 결정의 취지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며 "만약 법원이 판례 변경을 하지 않고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 유죄를 선고한다면, 헌재 결정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전했다.

따라서 헌법재판소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뿐 아니라 '단순 병역기피자'를 처벌하는 법률 조항 자체는 그래도 두되, 국회 입법(대체복무제 도입)과 법원 해석(무죄 선고)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 박시환, 이정렬 판사…'하급심의 반란'

1년 6개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정찰제처럼 내려지는 선고다. 1년 6개월 이상 전과자는 병역 의무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1심 법원이 무죄를 내리거나 집행유예, 1년 6개월 미만의 형을 선고해도 소용이 없다. 1년 6개월 미만의 형을 받은 병역거부자들에게는 다시 입영 통보가 온다, 1년 6개월 실형을 살 때까지. 이런 상황을 아는 판사들도 자신의 판단과는 무관하게 어쩔 수 없이 '양심적 병역거부=1년 6개월' 형을 내려왔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에서 다른 결정을 내리지 않는 한 하급심의 판단은 실질적으로 소용이 없었다.

그럼에도 헌재와 대법원의 최종 결정에 '반기'를 드는 판사들은 있었다. 2002년, 당시 남부지법 판사였던 박시환 전 대법관은 헌법재판소에 이 문제에 관해 위헌법률 심판을 제청했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형사 처벌하는 병역법 조항에 위헌 소지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어서 2004년 이정렬 당시 남부지법 판사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 첫 무죄 선고를 내렸다. 하지만 2004년과 2011년의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7대2 의견으로 이들 하급심 판사들의 문제제기를 덮었다.

2011년의 최종 결정 이후에도 '하급심의 반란'은 계속되었다. 오히려 최근 몇 년 사이에 더 거세졌다. 헌재 결정 뒤 6곳의 1,2심 법원에서 위헌심판 제청을 했고, 무죄 선고 수는 2015년 6건, 2016년 7건에서 지난해 45건, 올 상반기에만 28건으로 급증했다. 헌법재판소의 최종 결정에도, 전국 곳곳의 재판정에서 판사들은 신념을 이유로 형사처벌을 받아서는 안 된다며 목소리를 냈다.

● 변화된 헌법재판관 구성…퇴임 앞둔 시기에 결정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재판관 9명 중 6명의 동의를 얻어야 위헌 선고가 가능하다. 병역거부 진영에서는 보수 성향 3명(안창호, 조용호, 김창종)의 재판관은 합헌 의견을 낼 것으로 봤다. 나머지 6명이 위헌 쪽으로 판단해야 승산이 있다고 보았다.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는 2명(김이수, 유남석) 재판관과 지난해 11월 헌법재판소장으로 취임한 이진성 재판관은 대체복무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합헌 3명과 위헌 3명으로 갈린 것으로 예측되는 상황에서 나머지 재판관 3명의 의중에 결정이 달렸다. 중도로 분류되는 강일원, 이선애 재판관과 상대적으로 보수 성향인 서기석 재판관은 입장이 알려지지 않거나 위헌과 합헌 사이에서 고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헌재가 선고 날짜를 잡은 시기도 변화된 결과를 예측해 볼 만 했다. 하급심 무죄 선고가 잇따르자 대법원이 8월 말, 14년 만에 전원합의체 공개변론을 열기로 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다. 대법원이 전향적인 선고를 내리기 전에 헌법재판소가 먼저 나서 결정을 내리려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5명의 헌법재판관이 퇴임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서둘러 선고를 잡은 이상, 이전과 같은 판단을 내리진 않을 거라는 관측도 나왔다.

실제로 보수 성향으로 분류되는 재판관 3명은 병역 종류 조항에 대해 각하, 처벌 조항에 각하 및 합헌 의견을 냈다. 나머지 6명은 병역 종류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의견을 냈다. 처벌조항에 대해서도 4명의 일부 위헌과 2명의 (법원의 무죄 선고를 전제로 한) 합헌 의견을 냈다. 병역거부 진영에서 예상했던 3명을 제외한 6명의 재판관은 변화가 필요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각각 2017년 3월과 11월에 새로 임명된 유남석, 이선애 헌법재판관이 이번 선고에서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낸 점도 돋보였다. 낙태죄 폐지 등 앞으로 있을 헌법재판소의 주요 결정에서도 변화된 결과가 나올지 예측해 볼 만하다.

2011년의 헌재는 "양심적 자유가 제한되는 것보다 국가안보 및 병역의무라는 중대한 공익 실현이 더욱 중요하다"라고 봤다. 2018년의 헌재는 "특수한 안보상황을 이유로 대체복무제 도입을 미루는 것이 정당화되지 않는다"며 "양심의 자유라는 기본권이 침해되는 상황에서 국가가 문제 해결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라고 판단했다. 헌법재판소는 7년 만에 변화된 결정을 내렸다.

2011년 합헌 당시 헌법재판소가 "사회적 여론이 비판적"이라는 이유도 든 만큼, 변화된 시민들의 인식("대체복무제 찬성" 70%, 2016년 국제앰네스티 여론조사)이나 최근 남북 간 평화 분위기도 결정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예상된다.

● 여호와의 증인, 오태양, 전쟁없는세상…10년 만의 변화

2004년과 2011년의 위헌이 2018년의 헌법불합치로 바뀌는 건 쉽게 오지 않았다. 10년 넘게 때때로 따가운 시선을 받거나 오랫동안 무관심을 받으며 변화를 이끌어낸 이들이 있었다.

본인이 병역거부로 실형을 살았고, 병역거부에 관한 저서 <삼켜야 했던 평화의 언어>를 쓰기도 했던 임재성 변호사는 헌재 결정이 나자 헌법재판소 앞에서 소회를 밝혔다. 그는 "길이 없던 들판에서 길을 만들면서 갔던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 옆에서 같이 걸어갔던 사람들이 오늘의 결정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 숫자의 대부분은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이지만, 해당 종교와는 별개로 자신의 평화주의 신념 때문에 사람을 죽이는 총을 들 수 없다며 병역을 거부한 사람들도 있다. '1호 양심적 병역거부자' 오태양 씨가 2001년, 입대 당일 공개적으로 병역거부 입장을 밝히며 이 문제는 사회에 크게 알려졌다.


(왼쪽부터) 이용석 전쟁없는세상 코디네이터, 임재성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변호사, 오태양 '1호 양심적 병역거부자'
2003년에는 병역거부자와 그들을 후원하는 사람들이 모여 평화단체인 '전쟁없는세상'이 만들어졌다. '전쟁없는세상'은 15년 동안 병역거부자를 지원하고,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여론을 환기시켰다. 분단이라는 특수 상황, 군대라는 힘든 경험에서 오는 반발심으로 병역거부운동은 광범위한 지지를 받기 힘들었고 오히려 손가락질받기 일쑤인 척박한 환경에서 이들은 활동을 꾸준히 해왔다. '전쟁없는세상'은 이번 결정을 "다양한 양심을 존중하고 인권을 보장하는 성숙한 사회로 나아가는 결정이며, '군대가 아니면 감옥인 사회'를 바꿀 평화의 문을 연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숫자만으로 보면 몇 백 명 수준인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처분이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관계없는 이야기일 수는 있다. 하지만 소수자를 대하는 태도는 그 사회가 얼마나 민주적인지, 건강한지 보여주는 가늠자가 되기도 한다. 헌법재판소는 이번 결정문을 통해 "'소수자'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이를 반영하는 것이 관용과 다원성을 핵심으로 하는 민주주의의 참된 정신을 실현하는 길이 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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