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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선제적 대북 군사 완화 조치들…타당한가

[취재파일] 선제적 대북 군사 완화 조치들…타당한가
북한 비핵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 한미 군 당국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사실상 취소된 한미연합훈련이 벌써 2건입니다. 북한이 성의를 가지고 비핵화에 임하면 한미연합훈련을 더 중단하겠다는 약속도 했습니다.

정부는 북한이 시비를 건 적 없는 훈련도 연기했거나 취소할 태세입니다. 여권 일부에서도 "이해하지 못하겠다" "자발적으로 전투태세를 약화시킬 필요가 있느냐"는 반발이 나오고 있습니다.

정부, 청와대와 막역한 유력 시민단체는 한발 더 나아가 선제적 군축이라는 파격적인 주장까지 내놨습니다. 북측을 믿고 남측이 먼저 군비를 축소하자는 발상입니다. 역사상 이런 군축의 유례가 있는지도 불분명합니다.

북한은 풍계리 핵 실험장 폭파 이후 비핵화 행동을 멈췄는데 한미가 너무 앞서 나가는 건 아닌지 조금씩 우려됩니다.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손을 대야 할 데가 산더미인데 북한에게 너무 일찍 그리고 너무 많이 당근을 내주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 한미연합훈련 유예…패싱 또 패싱

유예된 한미연합훈련은 프리덤 가디언과 케이멥(KMEP)입니다. 두 연합훈련이 유예되는 논의 과정의 공통점은 '한국 패싱'입니다. 대형 한미연합훈련인 프리덤 가디언은 지난 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기자회견 때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단을 예고했습니다. 트럼프의 깜짝 발언에 청와대와 군은 "진의를 파악해보겠다"는 반응을 내놨습니다. 트럼프의 한미연합훈련 중단 발언을 사전에 몰랐다는 방증입니다. 곧 북한이 "북미가 연합훈련을 중지하기로 했다"고 발표했습니다.

한미연합훈련은 한미 동맹의 가장 강력한 안보 수단입니다. 연합훈련의 중지 같은 중요한 결정은 동맹 내부에서 결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미 동맹이 적으로 상정하고 있는 북한과 미국이 논의해서 결정했습니다. 한국은 소외됐습니다. 한미 동맹이 무색해지는 장면이었습니다.

한미 해병대의 연합훈련 케이멥은 미 국방부가 지난 23일 새벽 우리 국방부에 유예 결정을 통보했습니다. 국방부 관계자는 "소규모 훈련인 케이멥을 유예할지 예측 못했다"며 "게다가 갑자기 통보할지는 상상도 못 했다"고 털어놨습니다. 프리덤 가디언은 북미가 중지를 합의한 이후 한미 간에 협의하는 시늉이라도 했지만 케이멥 유예는 한미 군 당국이 협의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완벽한 패싱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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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동맹은 초강대국 미국과 지역 국가 한국의 동맹입니다. 초강대국과 지역 국가가 동맹을 통해 얻고자 하는 바는 다릅니다. 미국으로서는 북한에서 장거리 미사일과 핵폭탄만 제거하면 일단 안심할 수 있습니다. 한국은 북한의 재래식 전력과 공격 의도까지 누그러뜨려야 평화를 얻습니다. 가능한 한 북미 협상의 과정과 목표를 한국의 이해와 맞춰야 하는데 시작부터 패싱입니다.

동맹의 차원이 아니더라도 연합훈련은 대단히 무거운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빈센트 브룩스 주한미군 사령관은 그제(27일) 한 강연에서 한미연합훈련의 잇단 중단에 대해 "칼을 칼집에 넣어둬도 칼 쓰는 법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사람 좋은 브룩스 사령관이지만 언짢은 심기를 살짝 드러낸 것 같습니다. 칼을 칼집에 넣어둔 채 칼 쓰는 법을 아무리 떠올려 봐도 검법과 칼은 녹슬기 마련입니다. 대책이 필요합니다.

● 북한이 신경 안 쓰는 단독훈련도 유예 태세

연합훈련 유예야 미국이 요구했으니 고민 없이 수용했다 칩시다. 그런데 정부는 단독 훈련인 을지연습도 중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칼집에 칼을 넣고 아예 봉인을 해버릴 작정인가 봅니다.

을지연습은 한미연합훈련 프리덤 가디언과 합쳐 을지 프리덤 가디언 훈련을 형성하는 한국군과 정부의 훈련입니다. 북한의 침공뿐 아니라 천재지변에 대응하는 훈련입니다. 북한이 뭐라 하지 않았는데 청와대는 "연기할 수도 있다"고 밝혔습니다.

태극연습이라는 단독훈련도 연기됐습니다. 현역 의원인 범여권의 안보 전문가는 "북한이 위협을 느낀다며 시비를 거는 훈련도 조금씩 조금씩 못 이기는 척 중지해야 하는데 북한이 관심도 안 갖는 훈련까지 싹 다 내주고 있다"며 "어떤 상황에서도 군은 훈련을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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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북한이 이행해야 할 비핵화 조치는 참 많습니다. 핵 관련 시설만 해도 40개 안팎입니다. 미사일 기지도 북한 전역에 산재했습니다. 사거리별 미사일, 미사일 생산 시설, 발사차량 생산 시설, 미사일 시험장은 더 많습니다. 핵폭탄도 최소 20개입니다. 모두 없애야 합니다. 불가역적 비핵화를 위해서는 핵과 미사일 과학자들 관리도 해야 합니다. 북한을 꾸준히 행동하게 하려면 전략적으로 밑천을 아껴야 합니다.

이런 사정인데도 한미연합훈련 유예 발표에 덧붙여 참여연대는 선제적 군축을 요구했습니다. 참여연대는 단순한 시민단체가 아닙니다. 참여연대 출신들이 청와대와 정부의 요직에 포진하고 있어 영향력이 막강합니다. 그런 단체에서 “군사비 축소라는 기조 아래 방위력 증강 계획을 전면 재검토할 시기”라고 지난 19일 성명을 냈습니다. “한반도 평화의 시대가 선제적인 긴장 완화 조치와 과감한 군축을 통해 더욱 앞당겨질 것”이라며 선제적 군축론을 폈습니다.

군축의 교과서, 헬싱키 프로세스의 군축도 관련국들이 서로 마주 보며 한계단 한계단 오르는 방식이었습니다. 누가 먼저 앞서 가지 않습니다. 상호 안전보장을 위해 동량(同量) 동질(同質)의 원칙에 따라 균등하고 균질하게 군비를 축소하는 겁니다. 신뢰는 그런 과정에서 쌓이기 마련입니다.

또 군비를 무작정 줄일 수도 없습니다. 총칼 녹여 쟁기 만든들 이웃 강국 중국과 일본이 한반도의 평화에 감복해 군축에 동참할 리 없습니다. 북한과 군사 회담 경험이 풍부한 한 협상 전문가는 "늑대 피하면 하이에나, 호랑이가 기다리고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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