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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금융위원장의 삼 세 번 대답과 두 개의 개정안

2월 2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자료를 보고 있다.
지난 2월 27일, 20대 국회 제356회 정무위원회의 한 장면.
 
○제윤경 의원: 지난번에 은행들의 가산금리 부과와 관련해서 질의를 드린 바가 있습니다. 당시에 위원장님께서는 ‘은행들의 가산금리 산정하는 과정에 있어서 불합리한 점을 특별히 발견한 것이 없다’ 이렇게 답변하셨는데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금융위원장 최종구: 예, 최근에도 특히 작년 말에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상한 후에 저희들이 특별히 더 은행들의 대출금리 결정 과정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거의 매일 모니터링을 하고 있습니다.
 
○제윤경 의원: 가산금리 결정하는 데 있어서 은행들의 목표이익률이 굉장히 중요한데 (...) 목표이익률 상승폭 자체가 기업에 비해서 가계가 32배나 높습니다. (...) 이런 부분을 좀 꼼꼼히 챙겨보셨나요?
○금융위원장 최종구: 말씀드린 것처럼 금리 동향 중에서도 조달 금리는 거의 정해져 있는 거고 은행이 임의로 조정하는 가산금리 부분에 대해서는 저희들이 면밀히 보고 있습니다.
 
○제윤경 의원: 가산금리를 마음대로 좌지우지하는 것이, 책정 방식 과정에 있어서 상당히 불투명한 것 같다. (...) 어떻게 관리를 하는지가 조금 더 명확해져야 될 것 같고요.
○금융위원장 최종구: 가산금리 책정과 관련해서는 저희도 매일 모니터링하고 있습니다만 (...)

은행 가산금리 책정 과정과 감독 당국에 대한 금융 최고수장의 ‘무한 신뢰’가 불과 반년도 채 지나지 않아 민망할 정도로 무색해졌다. 은행업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가산금리 산정 과정에서 무더기 조작 의혹이 불거진 것이다. 들끓는 여론에 ‘자진 납세’를 선택한 은행 세 곳이 고객에게 잘못 거둬들였던 이익을 돌려주겠다고 밝혔다. 27억 원에 이른다.
 
그중에서도 경남은행은 2013년 4월부터 2018년 3월까지 전체 점포의 과반이 넘는 곳에서 부당 산정이 이뤄졌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환급 금액만 25억 원이다. KEB하나은행은 2012년 1월부터 2018년 5월까지, 한국씨티은행은 2013년 4월부터 2018년 3월까지 부당 수취한 이득이 각각 1억 5800만 원, 1100만 원으로 조사됐다.
 
금융권 전체에 대한 신뢰가 바닥까지 추락하고 있는 상황임에도, 엉뚱한 곳에서 공분이 일었다. 문제가 된 은행에 대한 제재 방안에 대해 얼버무리는 감독 당국의 태도가 문제였다. “처벌할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적발된 은행이나 대출 종류에 대한 정보도 전혀 공개되지 않았는데 한 걸음 더 나아가 ‘면죄부’를 상정한 금융당국에 비난이 쏟아졌다.

● 뒷짐 진 금융당국…소비자만 ‘분통’
은행 대출금리 조작 사태
이 ‘처벌할 근거가 없다는 입장’의 근거는 2016년 개정된 ‘금융기관 검사 및 제재에 대한 규정’이다. 그중에서도 제27조 여신업무 관련 제재 운영에 따르면 금융기관의 여신업무와 관련해,

1. 금융관련법규를 위반한 경우(2016년 3월 22일 개정), 2. 고의 또는 중과실로 신용조사 또는 사업성검토 및 사후관리를 부실하게 한 경우, 3. 금품 또는 이익의 제공, 약속 등의 부정한 청탁에 따른 여신의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 한 제재할 수 없다.
 
다시 말해 개정된 법률에 따라 1. 법규 위반에 해당하는 ‘불공정 영업행위’에 ‘부당한 금리 산정’ 항목이 들어있지 않기 때문에 제재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는 말이다.
 
금리 산정은 은행 자체 내규에 해당하기 때문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직원들은 자체 징계를 받게 될 공산이 크다. 그렇지만, 그나마 ‘자수’한 은행들마저도 고의성을 강력하게 부인하고 ‘단순 실수’로 주장하고 있는 마당에, 자체 징계도 어느 정도로 엄정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 ‘처벌할 근거 없다’는 입장, 어디서 왔을까?
은행 '대출 이자 바가지'
금융 당국이 뒷짐질 수 있게 해 준 문제의 ‘법률 개정’ 과정을 알아보자. 때는 바야흐로 금융소비자 보호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진 2011년. 이 법률에 유의미한 한 차례의 개정이 이뤄졌다.
 
당국이 금융기관을 제재한 사실을 더 구체적으로 명시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시행 방안의 취지는 공개 수준을 확대함으로써 금융소비자의 알 권리를 강화하고 금융회사의 위법, 부당행위를 사전에 예방한다는 것.
 
이전에는 상대적으로 약한 ‘주의’ 조치를 받은 기관과 임직원은 공개하지 않고 제재 사실과 조치 내용을 요약할 뿐이었지만 이때의 개정을 통해 ‘모든 자료의 전면 공개주의 원칙’이 도입됐다. 기관과 임직원에 대한 주의 조치뿐 아니라 경징계 조치까지 공개하도록 한 것이다.
 
당시 금융위 보도자료에 따르면 이처럼 공개수준을 확대할 때 ‘금융소비자가 금융회사의 모든 제재 현황을 알 수 있게 되어 알 권리가 크게 증대되고 금융회사가 제재사유를 명확히 파악할 수 있게 돼 금융회사가 스스로 준법관리를 강화할 수’ 있다.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한 큰 진전이었지만 금융위는 3년 뒤인 2014년, 공개 대상이 되는 ‘제재’ 권한을 스스로 축소했다. 당시 신제윤 4대 금융위원장 하의 금융위(제19차)는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여신 관련 불명확한 제재에 대한 개선방안’을 의결했다.
 
개정안은 명백한 제재 대상을 제외하고 모두 면책하는 네거티브 방식을 택했다. 박근혜 정권 하 신 위원장이 취임 일선에서 가장 강조했던 이른바 ‘금융 개혁’의 일환이었다.
 
원래 금융기관의 직원이 저지른 부당 행위에 대해 각 금융기관 장에게 즉시 통지하고 징계 등 정해진 조치를 취하게 했던 규정은 ‘금융기관장이 조치 대상자와 조치 수준을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바뀌었다.
 
특히 대출 관련 규정이 눈에 띈다. ‘취급한 대출이 사후 부실화되더라도 법규 위반, 고의 중과실 등의 귀책사유가 없는 한 모두 면책’하도록 했다는 놀라운 문구도 있다. 이를 통해 위반 내용과 귀책 정도를 알고 있는 금융사가 자체적으로 책임자와 징계 수준을 정해 자율성을 제고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여신에 대한 귀책은 ‘자체 내규’를 따르게 되었다.

● 누구를 위한 ‘금융소비자 보호’인가?
은행 대출 금리
한국은행이 지난 20일 국회에 제출한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빚 갚을 능력이 취약한 고위험가구는 2015년 29만 7천 가구에서 2016년 31만 2천 가구, 2017년 34만 6천 가구로 껑충 뛰었다. 가계 전세자금 대출은 올해 3월 말 기준 72조 2천억 원으로 2014년 말의 2배를 넘어섰다.
 
논의의 시작이 된 은행권 가산금리 부당 산정과 언뜻 관련이 없을 것 같은 수치를 이렇게 제시한 건 당시 금융위가 밝힌 ‘자체 내규화’ 개정안의 기대효과가 바로 이러했기 때문이다.
 
“여신 담당자들이 사후부실에 따른 제재 두려움을 덜어 담보와 보증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관행을 개선하면서 보다 적극적인 대출 결정을 유도.”
 
빗발치는 비난 여론에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고의성’과 ‘반복성’을 따져 제재 방안을 찾겠다고 한 걸음 물러난 건 공교롭게도 ‘가계부채관리점검회의’에서였다. 위원장이 발언한 다음 날 은행 세 곳이 부당 금리 산정 내역을 실토했다.

가계 부채 해결에 사활을 거고 있는 지금 금융팀이 이러한 전사를 가진 '법률 개정안'을 핑계로 뒷짐을 지고 있는 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어처구니 없는 이번 사태의 책임은 '빚 권하는 사회'를 방조한 당국에게도 명확하게 있다.

금융권에 대한 신뢰를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이번 사태는 금융당국의 존재 이유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금융위는 금융소비자보호국을 신설한 조직 개편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여신 약정서 등을 확인해 소비자 스스로 피해내역을 확인하라거나, 이미 잘못을 저지른 은행들의 ‘자체 검사’ 결과를 기다려보라는 현재의 태도는 진정 '금융소비자 보호'에 부합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게 한다.

신뢰를 다시 세우기 위해서는 일말의 의심도 남지 않아야 한다. 소비자들의 피해가 명백한 상황에서 더 이상 '제도'라는 핑계는 상임위 회의록에 기록된 금융위원장의 ‘무한 신뢰’만큼이나 유효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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