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리뷰] '마녀', 신인 배우가 영화를 살렸다

[리뷰] '마녀', 신인 배우가 영화를 살렸다
영화 '마녀'는 박훈정 감독이 '신세계'(2013) 이후 차기작으로 염두에 뒀던 작품이다. 결과적으로 '대호'(2015),'V.I.P'(2017)를 먼저 선보였지만, '마녀'는 감독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결국, 돌고 돌아 감독의 창작욕은 해소될 수 있었다.     

수많은 이들이 살해된 현장에서 도망친 여자아이는 시골의 한 농장 앞에 쓰러진다. 농장 주인은 피범벅인 꼬마를 발견하고 집으로 들인다. 그로부터 10년 후, 아이는 '자윤'(김다미)이라는 이름의 고등학생으로 성장한다. 아픈 엄마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자윤은 전국 규모의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가게 되고 신출귀몰한 능력으로 화제를 모은다.

그즈음 자윤의 주변에서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오디션을 보러 가는 기차에서 자신을 '마녀 아가씨'로 부르는 수상한 남자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온 날 밤에는 괴한들의 습격을 받는다. 어린 시절 기억을 잃은 자윤과 그런 자윤을 마녀로 부르는 '귀공자'(최우식), '닥터 백'(조민수), '미스터 최'(박희순)와의 만남이 이어지며 뜻밖의 진실이 고개를 든다.
이미지
'마녀'는 한국판 '공각기동대'라 불리며 기획단계에서부터 화제를 모았다. '신세계', 'V.I.P' 등을 만들며 '마초 영화 전문'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박훈정 감독이 처음으로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이기도 하다. 베일을 벗은 영화는 '한나', '아키라', '킬 빌' 등의 영화가 떠오르는 하드코어 액션물이었다. 

박훈정 감독은 '마녀'를 기획한 이유로 '인간 본성에 대한 호기심'을 꼽았다. 그의 말대로 자윤이 가진 미스터리는 인간 본성에 관한 근원적인 호기심과 연결된다. 선천적인 선과 악이란게 존재하는지 그렇다면 학습된 폭력성과 악성은 본성과 어떻게 충돌하는지를 자윤이라는 인물을 통해 보여준다.

감독의 야심은 원대했지만, 연출력 면에서는 아쉬움을 드러낸다. 영화는 한 시간이 넘도록 드라마를 쌓는 데만 집중한다. 자윤의 드라마틱한 과거는 중반 이후부터나 만나볼 수 있다.

최근 한국 영화에서 보기 드물었던 역동적이고 파워풀한 액션이 휘몰아치듯 이어져 영화를 보고 났을 때 강렬한 잔상을 남기긴 한다. 하지만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는 구성을 띤 탓에 다소 루즈한 드라마를 한 시간 이상 견뎌내야 한다.
이미지
게다가 초중반, 자윤과 자윤을 둘러싼 인물들이 펼치는 드라마는 다소 낡았다. 구어체와 문어체를 오가는 듯한 대사도 몇몇 배우들의 독특한 연기 톤과 맞물려 옛스럽다는 느낌을 준다.

후반부는 강렬한 속도감으로 폭주하다시피 한다. 그러나 자윤의 과거와 비밀이 앞에 깔아놓은 드라마와 유기적으로 어우러지는 것은 아니다. 자윤과 귀공자를 제외한 인물들은 지나치게 평면적이다. 

자윤이라는 캐릭터와 이 캐릭터의 매력을 극대화한 연기는 흥미롭다. 이런 류의 액션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주인공이 감정에 발목 잡히는 시시한 결론으로 치닫지 않는다. 자윤이 생존을 향한 본능을 동물적으로 드러내는 순간부터 영화는 매력적으로 보인다. 다만 인물이 품은 반전 요소가 캐릭터들의 입에서 입으로 설명되는 경향이 강해 긴장감을 떨어뜨린다. 

몇몇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강점을 지닌 영화다. '아저씨'(2010)로 액션의 신기원을 열었던 박정률 무술 감독의 타협 없는 액션신 구성이 돋보인다. 공중으로 솟구쳐 오르며 칼을 쓰고, 가공할만한 힘을 발휘해 주먹으로 벽을 내리찍는 듯한 액션은 할리우드 히어로 영화처럼 화려하고 역동적이다. 
이미지
'마녀'는 매력적인 신예가 영화를 완전히 장악한다. 1500:1의 경쟁률을 뚫고 캐스팅된 신예 김다미는 타이틀롤을 맡아 무시무시한 존재감을 뽐냈다. 중반까지 순수하고 순진한 고등학생의 면모를 보여주던 김다미는 자윤의 본성이 고개를 든 순간부터 놀라운 카리스마를 발산한다.

중반 이후 폭주하는 영화의 흐름과 맞물려 김다미는 관객의 목덜미를 끌고 가는 듯한 몰입력 넘치는 연기와 화려한 액션을 보여준다. 최근 몇 년간 신인이 주연을 맡은 영화에서 이렇게 집중도가 높은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게다가 김다미는 노출 없이 매력과 존재감만으로 영화를 빛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데뷔작 '거인'(2014)에서 눈부신 연기력을 보여주며 주목받았던 최우식도 '귀공자' 역할을 맡아 성공적인 변신을 보여준다. 열등감을 가진 살벌한 악역을 개구지게 연기해내며 묘한 긴장감을 부여한다. 

'마녀'는 한국 영화계에서는 이례적으로 시리즈로 기획된 영화다. 타이틀에 'Part 1. The Subversion'(전복)이라는 부제가 붙었다. 감독에 따르면 두 번째 에피소드의 부제는 '충돌'이다.
이미지
시리즈로 기획된 영화답게 첫 번째 에피소드인 '마녀'는 이야기를 여는 프롤로그 같은 인상이 강하다. 초월적 능력을 지닌 인간 병기의 등장이 주는 임팩트에 집중했다. 그녀를 존재하게 한 배후 세력의 실체는 속편에서 본격적으로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속편은 제작자나 감독의 의지가 아닌 관객의 호응이 있어야 만들어질 수 있다. '마녀2' 제작의 전제조건은 흥행일 것이다. 이 영화의 손익분기점은 240만 명이다. 후반부 유혈이 낭자한 폭력신이 집중 배치됐음에도 15세 관람가 등급을 받았다. 운이 좋게도 관객 수용 폭을 넓히는 데는 성공했지만, 등급 적합성에 관한 논란의 여지는 있다. 

6월 27일 개봉, 상영시간 125분, 15세 이상 관람가. 

        

(SBS funE 김지혜 기자)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