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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룸] 북적북적 143 : '버스 파'세요 '지하철 파'세요? 버스에서 들어주셔도 좋겠습니다…'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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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선 운전은 배운 적이 없으니 멀리 우주까지는 못 가더라도 시내버스를 몰고 나가 목숨 걸고(마스크 벗고)주변의 지속가능한 별을 찾아봐야겠다."

'버스 파'세요? '지하철 파'세요?

저는 단연 '버스 파'입니다. 지하철보다 기동성이 좀 떨어지지만, 일단 땅 위로 다니는 게 좋습니다. 창문을 살짝 열어서 바람을 맞을 수 있는 것도 좋고, 햇빛이 좋은 날은 햇빛이 좋은 대로, 비가 오는 날은 차창에 맺히는 빗방울 구경하는 재미로...아무튼 압도적으로 버스타는 걸 더 좋아합니다.

대학 때는 특히, 저희 집에서 다니던 학교까지 버스로 다니는 게 마침 제일 편하게 돼 있어서 주로 버스를 이용했습니다. 그런데, 4학년 때 발을 다쳐서, 목발을 짚긴 애매하지만 발에 부목을 대고 다닌 기간이 3개월 정도 있었습니다. 그때, 버스에 대해서, 그렇게 타고 다니면서도 몰랐던 걸 많이 알게 됐습니다. 제 발을 보고 제가 자리에 앉을 때까지 기다려 주시는 기사님의 버스를 타는지, 그렇지 않은 기사님의 버스를 타게 되는지에 따라 제 하루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부목을 댔지만 그냥 걸어다닐 수 있던 저조차도 버스를 은근히 피하게 됐는데, 인구의 10%에 달한다는 장애인들은 이렇게 버스에선 하나도 보이지 않고, 정말 어디서 어떻게 이동을 하고 있는 걸까 좀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지난달에 나온 따끈따끈한 새 책,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는 전북 전주의 시내버스기사 5년차, 허혁 기사님의 데뷔 에세이입니다. 제가 탔던 그 버스들, 다리를 절던 대학생의 착석을 기다려 주셨던, 혹은 기다려 주시지 못했던 버스기사님들의 마음과 처지에 대해서 얘기해 주는 책입니다. 가구점을 운영하다가, 장사는 더 이상 못하겠다, 접은 뒤 운전대를 잡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며 격일로 하루 18시간씩 버스를 몰다 보니 "세상에 하고 싶은 얘기가 쌓여서" 이렇게 책으로 나왔다고 합니다.

"이런저런 상념에 젖어 달리다가 갑자기 눈앞에 마이산의 두 귀가 쑥 들어왔다.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선글라스로 눈을 가리고 이를 악물고 울었다. 울음이 터져 나와 이를 악물 수도 없어서 입술을 앙다물고 울고 또 울었다. 뜨거운 눈물이 멈출 줄을 몰랐다. 그 귀로 그날 왜 그렇게 슬피 울었는지 차분히 생각해 보았다. 별것 없었다. 내가 대견해서 그렇게 울었다. 가게 팔고 반년도 안 돼 관광차 물고 시골 아주머니 아저씨들 원 없이 춤추고 놀게 해준 내 자신이 너무 멋져서 그렇게도 울었다."

"하루는 농수산시장 종점에 있는 제과점에서 이천 원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 들고 차 안에서 몰래 먹고 있었다. 평소 존경해마지않는 형님이 본인 몫으로는 자판기 커피를, 내 몫으로는 시원한 캔 식혜를 뽑아들고 오셨다. 갑자기 쑥 들어오는데 스마트폰 보면 막 컵을 들다가 용코로 걸려 민망해서 죽는 줄 알았다. 배차 시간이 맞아서 저녁에 오천 원짜리 밥 샀다."


고된 육체노동과 감정노동 한가운데서 무례한 승객들에게 맞욕설을 했다가 "민원이 들어간 적도 여러 번"이고,
'신경증'이 있고 화가 많아 아침에 한 다짐을 지키기가 힘들다고 고백합니다. 장애가 있고 시내버스만 타는 딸을 생각하면서, '친절기사'로 뽑히기를 포기하고 틱 장애가 있는 승객의 스스로 어쩌지 못하는 소음을 가려주기 위해 미사곡을 커다랗게 틀어버리는 '사나이'입니다. 최저임금 인상 속도와 근로시간 단축에 대해서 많은 의견들이 오가는 요즘, '허 기사 가족'의 삶은 꼭 한 번 들어볼 만한 또 하나의 의견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하루는 나도 사거리 횡단보도를 건너며 신호대기에 걸려 있는 버스에게 공손하게 사인 보낼 일이 있었다. 얼핏 보니 앞문이 닫혀 있기에 조금만 기다리면 버스는 또 오니까 다음 차를 탈까도 생각했는데 웬걸, 내 마음은 일각이 여삼추다. 같은 버스기사인 나도 잠시를 못 기다려서 닫힌 앞문을 열게 했는데 이런저런 사정을 알 리 없는 제 갈 길 바쁜 승객은 당연 문을 두드리지 않겠는가! 나에게 큰 깨달음을 주려고 그랬는지 마침 화에 사로잡혀 있던 기사님이 세상에서 제일 썰렁한 표정으로 앞문을 따주셨다. 역시나 고맙다는 인사에 아무런 대꾸도 없이 먼 산 보기를 하고 있었다."

"시내버스 삼 년이면 예측의 모눈종이가 촘촘해진다. 많은 데이터가 축적되어 승객들의 온갖 비정상이 단번에 읽힌다. 예측 이전에 느낌이 있다. 알파고가 바둑은 이겼지만 인간의 느낌만큼은 흉내도 못 낸단다. '왠지 모를' '뭔가 싸한' 그 느낌 말이다. 분명 저 승객이 정중하게 인사까지 하며 올라왔고 전주 시내버스에서는 보기 드문 금테 안경에 젊고 깔끔한데, 수고하신다는 인사말에 교만이랄까? 뭔가 이상한 이 느낌은! 예측을 통해 닥쳐올 불행에 미리 대비해야 할 상황으로 인식된다. '저 금테 안경이 어떠한 반전을 도모한다 하더라도 결코 화내지 않고 모두 수용하리라!' 아니나 다를까 잠시 후 운전 중인 기사에게 고요히 다가와 목소리를 쫙 깔고는 나지막이 뇌까린다.

(뭐라고 했을까요? 들어보시면 압니다...^^)"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 라는 책 제목이 참 좋습니다. 우리는 모두, 그냥 00입니다. 우리 대부분이 이렇게 자신의 입장 속에서 말 못할 것들을 삼켜가면서, 또는 그냥 00인 상대방을 이해한다고 생각했는데, 폐를 끼치거나, 나는 미처 알지도 못하는 새에 행복한 순간을 만들어주기도 하면서 살아가는 거겠죠.

좀더 서로의 뒷모습을 이해하는, 우리 모두 좀더 행복한 00으로 살아갈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역시 몸과 삶에서 나오는 글은 당할 수 없다, 는 생각도 새삼 여러 번 했습니다. 그리고, '버스 파'로서 은근히 궁금했던 것, 알아둬야 하는 것들에 대해서도 답을 많이 얻었습니다.

버스에서 들어주셔도 좋겠습니다. 

(출판사 '수오서재'의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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