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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으로 전해지던 '아라가야 왕성' 실체 첫 확인

입으로 전해지던 '아라가야 왕성' 실체 첫 확인
▲ 함안 가야리에서 확인된 아라가야 토성벽

대가야·금관가야와 함께 가야 중심세력을 형성했고 신라·백제·왜와 교류했다는 고대 국가인 아라가야 왕성 실체가 처음으로 확인됐습니다.

아라가야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등에 '아나가야', '아야가야', '안라' 같은 다양한 이름으로 등장하지만 자체 기록은 없습니다.

사료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아라가야의 토목기술과 방어체계, 생활문화를 볼 수 있는 획기적인 고고학 자료가 나온 것입니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오늘(7일) 그동안 문헌과 구전을 통해 아라가야 왕궁터로 지목된 경남 함안군 가야읍 가야리에서 5∼6세기 축조한 것으로 추정되는 대규모 토성과 목책(울타리) 시설을 찾아냈다고 밝혔습니다.

이번에 확인한 토성 유적은 가야 권역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규모가 크고 축조기법이 정교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토성 높이는 8.5m, 상부 폭은 20∼40m, 조사 구역에서 드러난 성 길이는 약 40m입니다.

흙으로 성벽을 축조하는 과정에서 나무기둥을 설치하고, 차곡차곡 흙을 쌓아 올리는 판축기법을 쓴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성벽 상부에는 방어시설인 목책으로 추정되는 2열 나무기둥이 확인됐습니다.

백제 왕성으로 확실시되는 풍납토성 높이가 13m이고, 몽촌토성 높이가 6m라는 점을 고려하면 가야리 토성도 왕성급 유적이라는 것이 연구소의 설명입니다.

토성 안에서는 목책과 함께 건물터·구덩이, 유구(건물의 자취)가 발견됐습니다.

특히 기반암을 인위적으로 파서 만든 가로 5.2m, 세로 3.4m, 높이 0.5m 구덩이가 이목을 끌었습니다.

구덩이 내부에는 아궁이 위에 솥을 거는 부뚜막으로 추정되는 시설이 있는데, 무덤을 비롯한 의례 공간에서 출토되는 통형기대(원통모양 그릇받침)와 손잡이가 달린 주발, 붉은색 연질토기도 나왔습니다.

아라가야의 전성기인 5세기 중반∼6세기 중반에 제작한 토기 조각도 나왔습니다.

연구소는 "이번에 나온 토성은 아라가야에 대규모 노동력을 동원할 수 있는 강력한 정치권력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며, "그동안 아라가야 유적 발굴은 고분 중심으로 이뤄졌는데, 왕성 유적이 나오면서 최고지배층의 생활상을 유추할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습니다.

(사진=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제공/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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