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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룸] 책영사 31 : 무라카미 하루키와 이창동이 만나서 '버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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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책영사: 책과 영화 사이]에서는 이창동 감독의 8년 만의 신작 '버닝'과 그 원작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헛간을 태우다'에 대해 이야기 나눕니다.

'버닝'은 영화제 공식 매체인 '스크린 데일리'에서 최고점을 받으며 2018 칸국제영화제에서 국제비평가연맹상과 벌컨상을 수상했습니다.

'버닝'은 두 남녀와 미스터리한 남자 사이의 비밀스러운 관계를 다룬 영화입니다.

유통회사 직원인 종수(유아인)는 우연히 어릴 적 동네 친구인 해미(전종서)를 만나고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가까워집니다.

그러던 중 해미는 종수에게 고양이를 부탁하고 아프리카로 여행을 떠납니다.

귀국한 해미를 마중 나온 종수에게 해미는 아프리카에서 만났다며 벤(스티븐 연)을 소개합니다.

미묘하게 얽힌 세 사람의 관계는 불씨에 휩싸이고 천천히, 그리고 별안간 타오르게 됩니다.

원작 '헛간을 태우다'에서 인물들의 연령대와 배경 등을 조금 바꾸는 등의 변화는 있었지만 세 사람의 관계를 다룬다는 점에서 '버닝'은 원작과 비슷한 구조를 취하고 있습니다.

'헛간을 태우다'가 좀 더 추상적이고 음산한 기운을 준다면 ‘버닝’은 시각, 청각적으로 긴장감을 조성하며 날카롭게 파고듭니다.

'헛간을 태우다'를 지배하는 문학적 메타포는 '버닝'에서 영화적 기법을 활용해 그 힘을 발휘합니다.

귤이 있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없다고 생각하면 된다는 해미의 말에서 시작되는 메타포는 영화 내내 변주되며 종수의 마음에 불씨를 붙입니다.

해미의 고양이 보일이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흔적은 남아있습니다.

해미는 어릴 적 집 근처 우물에 빠졌을 때 종수가 해미를 구해줬다고 회상하지만 동네 사람들은 해미 집 근처에 우물이 없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오래 떨어져 지낸 종수의 어머니는 우물이 존재했다고 말합니다.

"그래도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는 거야"라는 해미의 말처럼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하는 것들의 메타포는 종수에게 혼란으로 다가옵니다.

두 달에 한 번씩 비닐하우스를 태우는 취미가 있다는 벤은 해미보다 더 활동적인 스토리텔러입니다.

그가 "나는 여기에도 있고 저기에도 있다, 나는 파주에도 있고 방배동에도 있다, 서울에도 있고 아프리카에도 있다"며 말하는 '동시존재'는 벤을 초월자처럼 느껴지게 합니다.

소설가 지망생이지만 제대로 된 소설을 쓰지 못하고 있는 종수는 두 스토리텔러의 메타포에 혼란을 느낍니다.

정말 고양이 보일이가 존재하는지, 해미의 집에 우물이 존재하는지, 벤은 종수 집 근처에서 비닐하우스를 태웠는지, 진실은 이미지로 증명되지 않고 연약한 판단력을 더욱 흐려지게 만듭니다.

해미와 벤이 집을 다녀간 후 종수는 집 근처의 비닐하우스들을 모두 둘러볼 수 있는 최적의 루트를 짭니다.

그리고 매일 아침 그 루트로 달리며 탄 비밀하우스가 있는지 확인합니다.

벤이 이미 비닐하우스를 태웠다고 말한 뒤에도 매일 달립니다.

발버둥 쳐도 나아질 기미가 없는 현실 속에서 원인도, 대상도 없는 분노를 품고 있는 청춘들은 현실과 허상, 진짜와 가짜, 사실과 허구의 경계에 혼돈하며 목적 없는 달리기를 이어갑니다. 

(글 : 인턴 한지은, 감수 : 이주형, 진행 : MAX 출연 : 남공·안군·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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