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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판다] "뇌출혈인데 감기약 먹였다"…21살 일병의 억울한 죽음 (2일차 다시보기)

[끝까지판다①] 뇌출혈 병사한테 '감기약'…국가의 부름 뒤 억울한 죽음

<앵커>

SBS 탐사 보도팀은 불법 의료 행위를 지시하고 또 묵인하는 군 병원의 실태와 그래서 민간병원을 더 찾을 수밖에 없는 현실을 어제(30일) 고발했습니다. "군대 갈 때만 국가의 아들이고 군대에서 아플 때는 당신의 아들이 된다. 때문에 군에서 아프면 안 되고 자기 몸은 스스로 지켜야 한다." 군에서 소중한 자식을 잃은 부모님들의 한탄입니다.

저희는 오늘 군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숨진 21살 청년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군 복무 도중에 뇌출혈과 백혈병 증세를 보이던 병사가 숨질 때까지 군 병원이 쥐여준 건 두통약과 감기약, 그리고 두드러기약이었습니다.

먼저 박하정 기자입니다.

<기자>

군 생활에 잘 적응해 특급전사가 되겠다는 말을 자주 했다는 고 홍정기 일병의 생전 모습입니다.

군대 체력 검정에서 특급 내지 1급을 받을 정도로 건강했습니다. 그런데 입대 7개월여 만에 민간 병원으로 후송됐습니다.

[故 홍정기 일병 어머니 : (병원에 도착해 보니) 이미 아이는 정신이 없었고 말 한 번도 못했고 중환자실에 들어가 있었던 거죠.]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뇌출혈 때문에 홍 일병은 수술을 받고 이틀 뒤 숨졌습니다.

홍 일병이 왜 이렇게 갑자기 죽음에 이르게 됐는지 군 검찰의 조사 보고서를 바탕으로 살펴봤습니다.

사망 11일 전, 홍 일병은 뇌 이상의 영향으로 보이는 구토를 시작했는데 군의관은 두드러기약을 처방했습니다. 까닭 모를 멍이 계속 생겼고 두통도 점점 심해졌는데 의무대에서는 감기약을 줬습니다.

고통을 견디다 못해 홍 일병이 부대 밖 병원 진료를 호소했고 인솔 상관과 함께 개인 의원을 찾았습니다. 민간인 의사는 홍 일병의 상태를 보고는 혈액암 가능성이 있다며 즉각 큰 병원에서 혈액 검사를 하라고 권했습니다.

하지만 인솔자는 다음날 군 병원에 예약이 돼 있다며 그냥 부대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날 밤 홍 일병은 더욱 심해진 두통과 구토에 시달렸고 자정쯤 사단 의무대로 후송됐지만 응급상황은 아니고 병실이 없다는 이유로 그냥 되돌려 보내졌습니다.

[故 홍정기 일병 어머니 : (사단 의무대에) 침상이 없으니까 연대로 다시 돌려보낸 거예요. (군의관이) 처방해서 두통약만 줬다고 얘기를 하더라고요.]

밤새 이어진 구토와 헛구역질에 고통을 겪다 홍 일병은 내무반 바닥에 쓰러지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다 오전 9시가 돼서야 누군가의 부축을 받고 다른 외진 환자들과 함께 규모가 큰 군 병원으로 가는 버스에 태워졌습니다.

[故 홍정기 일병 어머니 : 그 9시간을 애가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얼마나 두려웠을까요. 그 생각하면요. 지금도 피가 거꾸로 솟아요.]

군 병원은 백혈병 가능성이 높다는 진단과 뇌내출혈 의증 진단을 내렸지만 홍 일병을 수용할 수 없었고 민간 병원으로 후송 조치했습니다.

하지만 손을 쓰기에는 너무 늦었고 2016년 3월 홍 일병은 숨졌습니다.

고 홍정기 일병은 군 복무 중 '자신에게 군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민국 같은 좋은 나라에서 태어난 운을 보답하는 곳'이라고 썼습니다.

[故 홍정기 일병 어머니 :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게 운 좋은 나라에서 태어났다고 했는데, 그죠? 그걸 보답하겠다고 하는데 보답을 국가에서는 이런 식으로 해준 거잖아요. 저렇게 자랑스러운 나라라고 했는데…]

(영상취재 : 조창현, 영상편집 : 유미라, VJ : 김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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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판다②] 뇌출혈인데 복부 X-레이…"살릴 기회 3번, 군 병원이 다 놓쳤다"

<앵커>

숨진 홍 일병의 경우만 봐도 우리 군 의료 체계의 문제점은 곳곳에서 드러납니다. 의료 기록을 검토한 법의학 전문가는 홍정기 일병을 살릴 수 있는 기회가 3차례나 있었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어서 김종원 기자입니다.

<기자>

혈액암 가능성이 있다는 민간 의사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그냥 부대로 돌려보내진 고 홍정기 일병은 그날 밤 몸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습니다.

의무대로 급하게 옮겨졌지만 홍 일병을 맞은 건 당직 군의관이 아니라 의무병이었습니다.

의무병이 어디가 아픈지 물었고 또 다른 의무병을 오라고 해서 엑스레이까지 찍게 했습니다.

당시 홍 일병의 구토와 헛구역질은 뇌출혈에 따른 증세였던 것으로 보이는데, 의무병은 토하는 모습만 보고 배 부위를 엑스레이로 촬영했습니다.

그러고 나서야 당직 군의관이 나타났습니다.

군의관은 혈액학적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으면서도, 두통약만 처방해 홍 일병을 부대로 돌려보냈습니다.

[당시 당직 군의관 D씨 : 별거 아닌 걸로 만약 (상급 군 병원에) 이송 보냈다 그러면 또 이제 상부에서 안 좋은 피드백이 올 수도 있거든요. 뭐 이런걸로 (이송을) 보내느냐고.]

홍 일병은 뇌출혈이 진행되면서 밤새 구토를 하며 괴로워했지만 아무런 병원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이곳 자신의 부대로 돌아와 밤새 방치됐습니다.

그리고 아침이 돼서야 상급 군 병원으로 또다시 옮겨졌지만 군 병원은 그를 소생시키지 못했습니다.

탐사 보도팀은 법의학자에게 홍 일병의 의료 기록과 군 검찰의 조사 보고서를 보여주고 군 병원의 조치에 대한 의견을 물었습니다.

법의학자인 유성호 교수는 홍 일병이 처음 구토 증상을 보여 의무대를 찾았을 때 곧바로 백혈병을 의심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유호성 교수/서울대 의대 법의학교실 : (당시 기록을 보면) '부딪힌 적도 없는데 멍이 생긴다'라고 보여주고 이런 기록이 있단 말이에요. 의대 본과 3학년, 4학년 학생들이라면 딱 증 상만 얘기해 줘도 '일단 (혈액 관련) 검사해야 할 거야, 뭐 뭐 뭐' 이렇게 하는 건데.]

8일 뒤 홍 일병이 다시 의무대를 찾았을 때는 몸에 크고 작은 멍과 혈종이 선명했지만, 이때도 군의관도 혈소판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면서도 응급상황은 아니라며 감기약만 처방했습니다.

[유성호 교수/서울대 의대 법의학교실 : 의사라면 이 정도의 꽤 오랫동안의 두통, 창백함, 여러 전신의 출혈, 그러면 굉장히 두려운 진단을 먼저 떠올리는 게 일반적인데 왜 (상급 병원에) 보내지 않았을까?]

당시 군의관을 찾아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는 오판을 인정했지만 간단한 혈액 검사 장비도 없고 무자격 의무병만 있는 의무대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합니다.

[당시 군의관 E씨 : 혈액 검사를 했다면, 민간 병원에 갔다면 바로 (백혈병이라는 게) 나왔을 거예요. 사실 이 증상만 가지고도, 그날 밤 있었던 구토하고 어지럽고 정신 못 차리는 증상만 가지고도 홍 일병은 그때 사실 이미 진단이 됐어야 해요. (그러나) 저는 백혈병이란 진단이 뭔지 알았지만 (전공이 달라서) 직접 접해본 적은 거의 없었고 (검사 장비도 없어서 판단하지 못했어요.)]

유성호 교수는 홍 일병을 살릴 기회가 3번 있었지만 군 병원이 모두 놓쳤다고 판단했습니다.

[유성호 교수/서울대 의대 법의학교실 : (민간 병원이었다면) "갑자기 멍이 들어요." 이러면 병원에서 식겁하죠. 빨리 큰 병원에 가라. 갔으면 지금쯤 항암 치료를 받고 있겠죠.]

당시 군의관 2명은 각각 감봉 1개월과 감봉 3개월의 징계를 받았고 부대 지휘관 징계는 없었습니다.

(영상취재 : 조창현, 영상편집 : 이승진, VJ : 김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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