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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수시로 건네진 '호의'

[취재파일] 수시로 건네진 '호의'
● '차용증' 없이 건네진 3억 5천만 원

구청에서 일하는 A팀장은 지인의 소개로 B를 만납니다. B는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누구나 아는 한 기업의 고문. 얼마 뒤  A팀장은 큰돈이 필요하다고 B에게 말합니다. 만난 지 한 달밖에 안 됐지만 B는 3억 5천만 원을 A에게 건넵니다. 그런데 얼마 뒤, 그 돈은 순식간에 7억 원을 넘어섭니다.

A는 서울 중구청 공무원 임 팀장. B는 임우재 전 삼성전기 고문입니다. '선뜻' 7억 원을 건넸다는, '선뜻' 믿기 어려운 이야기. 이 이야기는 두 사람의 수사기관에서 한 실제 진술 내용입니다. 

● 믿기 어려운 '동화' 같은 이야기…"증거 없어 무혐의"

서울 중구청 공무원 임 팀장은 건축 인허가를 대가로 업자들에게 뇌물을 받은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었습니다. 외벌이 공무원이었던 임 팀장 관리 계좌에서 발견된 수상한 돈은 3억이 넘었습니다. 대부분 임 팀장의 부인이 ATM을 이용해 5백만 원에서 2천만 원까지 돈을 입금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경찰은 돈의 출처를 따져 물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때 임우재 전 고문이 바람처럼 등장합니다. 여기서부터 '동화' 같은 훈훈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임 팀장이 가지고 있던 돈은 임 전 고문이 빌려준 돈이라는 겁니다. 두 사람은 경찰 조사에서 "빌려준 돈, 빌린 돈이 맞다"라고 진술했습니다. 뒤늦게 자신들이 작성했다는 차용증도 경찰에 제출됐습니다. 임 전 고문이 빌려줬다던 돈은 3억 5천만 원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수사를 진행하면서 임 팀장 관리 계좌에 들어있던 돈이 7억 5천만 원까지 늘어난 겁니다. 경찰은 다시 두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3억 5천만 원이 아니라 7억 2천만 원을 빌려줬다." 두 사람은 진술을 바꿨습니다. 경찰은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리합니다.

● 임 팀장 끝내 구속…진실은 저 너머로

수사팀의 머리가 복잡해졌습니다. 임 팀장의 계좌에서 7억 원이 넘는 '수상한' 돈이 발견됐는데, 뇌물이 아닌 지인 간 돈거래라는 주장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경찰은 끝내 뇌물 수수 혐의로 임 팀장을 구속했습니다. 업자들로부터 "임 팀장에게 뇌물을 준 것이 맞다"는 진술을 어렵게 확보한 것입니다. 임 팀장은 업자들에게 1억 5천만 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습니다.

이렇게 임 팀장의 '수상한' 돈 7억 5천만 원 가운데 1억 5천만 원의 출처가 드러났지만, 6억 원의 실체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ATM을 이용해 현금 입금이 이뤄진 이번 사건의 특성 때문입니다. "내가 뇌물을 준 것이 맞다", "내가 뇌물을 받은 것이 맞다"는 진술 없이는 현금 출처를 밝히는 게 사실상 불가능했습니다.

● 진실 또는 거짓…"어느 쪽이든 믿기 힘들어"

경찰은 임 전 고문이 임 팀장에게 실제로 돈을 주지 않았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임 팀장이 뇌물을 받은 사실을 숨기기 위해 선의의 거짓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공무원 신분인 임 팀장의 계좌에서 수 억원이 발견됐고, 이 돈은 뇌물이 아니라 임 전 고문 자신이 빌려준 것이라는 주장을 펼친 것입니다.

임 전 고문이 '선의의 거짓말'을 했다는 결론을 내린 이유는 이렇습니다. 당시 임 전 고문은 상당액의 채무(사건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했을 때, 수십 억 원 대)가 있었습니다. 수억 원을 빌려줄 만한 사정이 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임 전 고문의 계좌를 모두 살펴봤지만, 그런 거액이 빠져나간 흔적은 없었습니다. 임 전 고문이 임 팀장에게 돈을 줄만한 이유도 없었고, 현금을 건넨 장소와 시간에 대해서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라고 진술했습니다.하지만, 일부 수사팀 관계자는 "어느 쪽도 믿기 어려운 이야기"라고 말합니다.

● 왜?

그렇다면 하나의 질문이 남습니다. 임 전 고문이 선의의 거짓말을 했다면 왜일까? 뚜렷한 이유가 없습니다. 임 전 고문은 이번 일로 계좌 추적을 당했고, 집과 사무실엔 경찰이 들이닥쳐 압수수색을 했습니다. 수시로 경찰서에 불려 와야 했고, 중간에 진술을 번복한 일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만난 지 한 달 밖에 안 된 임 팀장을 위해 이 모든 수고로움을 감수했습니다. 두 사람이 만난 지 한 달 만에 이처럼 빠른 속도로 친해진 계기는 무엇일까요? 경찰은 임 팀장이 임 전 고문과 임 전 고문의 주변에 편의를 제공한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모든 질문의 답은 임 전 고문과 임 팀장만이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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