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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산모 제왕절개 수술 받고 있는 곳에…"우리 병원 시설 좋아요" 병원 투어

[취재파일] 산모 제왕절개 수술 받고 있는 곳에…"우리 병원 시설 좋아요" 병원 투어
● "아내가 제왕절개 수술 중인 제한구역에 관광객 수십 명 몰려와"

"아내 출산 중에 관광객 수십 명이 들이닥쳤어요. 너무 화가 납니다"

한 통의 메일을 받았습니다. 제왕절개 수술로 둘째를 출산했다는 산모의 남편이었습니다. 그런데 수술 도중 관광객이 난입했다는 너무나 황당한 이야기라 쉽게 믿기지 않았습니다. 직접 찍었다는 영상을 받아 보니 실제로 수술실과 분만실이 위치한 제한구역 안으로 수십 명이 우르르 들어가는 모습이 담겨 있더군요. 제보자를 직접 만나보기로 했습니다.

산모는 당시 제왕절개 수술 도중 지혈이 안 돼 긴급 수혈을 받으며 위급한 상황을 넘기고 있었다고 합니다. 보호자 중에서도 사전 허락을 받은 일부만 들어오도록 돼 있는 제한구역에는 산모의 어머니가 들어가 있었고 남편은 바깥에서 대기 중이었다고 했습니다. 관람객으로 너무 시끄러우니 수술하던 의사가 나와 "조용히 좀 하라"고 주의를 줬다고도 말했습니다.

산모의 어머니는 감염 가능성을 우려했습니다. 영상에서도 수십 명이 손 소독 절차 없이 파란색 덧신만 신고 제한구역으로 몰려갔습니다. 산모 어머니는 "독감에 걸렸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온몸에 미세먼지를 잔뜩 묻히고 신생아가 갓 태어나는 장소를 무방비로 돌아다닌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토로했습니다.
산모 유치 위한 산부인과 병원 투어
투어에 직접 참가해 실태를 확인해보기로 했습니다. 마침 곧 투어 일정이 있었습니다. 공지된 시간에 로비로 갔더니 간호사가 관람객들을 데리고 제한구역으로 올라갔습니다. 영상처럼 소독 절차나 환복 절차는 없었습니다. 출산을 앞둔 산모도 분만대기실에 있었지만 투어는 진행됐고, 대기실을 보여주겠다는 간호사에게 산모가 거부 의사를 밝히는 상황도 벌어졌습니다. 수술실도 투어의 대상이었습니다.

문제가 심각해 보였지만 해당 병원 측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수술방에서 수술하는 장면을 보여주지는 않았고, 제한구역에 들어온 것 자체는 문제가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환기가 잘 돼 다른 병원보다 위생적이라며 문제를 제기한 산모 보호자를 '예민한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 감염 전문가 "산모·신생아는 면역 저하 상태"…수술실·수술대기실은 출입 제한구역

하지만 감염 전문가의 이야기는 달랐습니다. 이재갑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오염과 감염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병원에선 수술실과 수술 대기실 등을 제한구역, 준제한구역으로 두고 출입 인원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특히 수술실이 위치한 제한구역은 수술 중이 아니더라도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마스크를 쓰고 최소한의 인원만 들어가는 게 원칙이라고 말했습니다.

산모와 신생아의 감염에 대한 보호자의 염려도 근거 없는 게 아니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교수는 "신생아와 출산 후 6개월까지 산모는 면역저하 상태라고 표현한다"며 "호흡기 감염이나 여러 감염병에 취약한 상태"라고 말합니다. 관람객들의 기본적인 건강 상태도 체크하지 않으면서 마스크도 없이 제한구역, 준제한구역을 돌아보게 한 것은 매우 경솔했다는 지적입니다.
산부인과 병원 투어
취재 결과, 이른바 '병원 투어'를 하는 곳은 이 병원뿐만 아니었습니다. 저출산 경향이 심해지면서 과다 경쟁에 내몰린 산부인과들이 우수한 시설을 구비하고, 외부인에게 이를 홍보하는 마케팅 전략을 마련한 겁니다. 철저한 위생 관리와 감염 예방, 정작 중요한 산모와 신생아의 건강은 뒷전이 됐습니다.

설마 내 일이 될까 싶지만, 한번 병원 내 감염이 발생하면 그 고통은 고스란히 산모와 아이가 짊어집니다. 지난해 결핵 확진 판정받은 신생아실 간호사 때문에 신생아 100여 명이 집단 잠복 결핵 진단을 받은 서울 노원구 모네여성병원 사태가 있었지요. 부모들은 최근 배상 책임을 지지 않는 병원을 상대로 몇 년이 걸릴지 모르는 어려운 민사 소송을 시작했습니다. 갓 태어난 아이에게 독한 결핵약을 먹이며 여전히 마음 졸이는 부모도 많다고 합니다. 감염 관리에 경각심을 늦춰선 안 되는 이윱니다.

● 정부, 관련 규정 신설 추진·병원 투어 자제 공문

병원 내 감염을 막기 위해 정부는 그동안 어떤 노력을 하고 있었을까요? 취재해보니 관련 규정은 없었고, 2015년 메르스 사태 때 내놓은 병원 방문객 권고 사항이 전부였습니다. 준제한구역과 제한구역 설정도 의료기관 인증기준을 통과해야 하는 대형병원이 아닌 이상, 각 병원이 자발적으로 설정하도록만 되어 있었습니다. 아예 설정하지 않거나, 내규로 정해놓고 위생 기준을 지키지 않더라도 법령이나 지침 위반이 아니었던 겁니다.
(사진=연합뉴스)
"나의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잊고 사는 의료인이 많을 때 세상엔 너무도 큰 비극이 벌어집니다. 모든 걸 의료진의 양심에만 오롯이 맡길 수는 없습니다. 감시와 제도적 보완이 필요합니다. 보도 이후 해당 병원은 투어를 중단했고, 보건복지부는 투어 자제 공문을 전국에 내려보내는 한편, 제한구역과 준제한구역 설정을 의무화하는 고시 제정을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앞으로도 비극을 예고하는 작은 단서들을, 눈 크게 뜨고 지켜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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